3개월 전 농부가 됐다. 지난 5월, 부지런한 농부들이 이미 파종을 마쳤을 때쯤 나와 내 친구는 뒤늦게 텃밭에 꽂혔다. 넓게 보면 코로나로 말미암은 일이었다. 친구는 집콕 기간 동안 실내 가드닝에 빠졌다. 열정의 ‘식집사’는 집 밖에서도 식물을 길러보고 싶다고 했다. 주말마다 집에 갇혀 있던 나는 어디든 나가고 싶었다.
주말농장 몇곳에 전화를 돌린 끝에 “딱 한 자리 남았다”는 말을 낚아챘다. 그렇게 어영부영 봄과 여름의 밭을 경험한 초보 농부로서 한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농사란 나 같은 초보 도시 농부가 ‘오늘은 이럴 거야’라고 함부로 재단할 일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사장님이 잡초 정리하고, 새 모종 심고, 미리 심어놓은 상추 좀 따가면 된대.” 농사 첫날이었다. 친구가 텃밭 사장님에게 듣고 전한 ‘오늘의 할 일’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땅은 대략 10㎡(약 3평), 느긋하게 밭 상태를 파악한 뒤 인근 화훼단지에 모종을 사러 갔다. 텃밭에서 상추, 고추, 치커리, 가지, 토마토 모종을 무료로 나눠준다고 했지만 어쩐지 그건 너무 평범한 것 같았다. 로즈메리, 바질, 루콜라 등 허브 모종을 추가로 샀다. 먹는 작물만 키우는 건 낭만이 없는 것 같아 안개꽃, 라벤더 모종도 한아름 샀다.
다른 밭의 작물들이 부지런히 자랄 때 뒤늦게 심은 꼬마 모종.
콧노래를 부르며 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0분 만에 예측 못 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니, 고작 3평인데 김매는 일이 이다지도 힘들단 말인가. 잡초는 억세고, 끈질기고, 많았다. 조금 전 내뱉은 “이렇게 이쁜데 왜 잡초라고 불릴까?” 따위의 한가한 소리는 쑥 들어갔다. 집요하게 내리쬐는 5월 봄볕에 마스크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함께 간 우리 집 어린이는 머리 위에 아이스팩을 얹은 채 “엄마, 집에 언제 가?”를 연발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30분. 한낮의 태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그늘 한점 없는 곳에서 밭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 뒤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시곗바늘을 5시간쯤 앞으로 돌리거나 멀리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서 밀짚모자라도 빌려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한달쯤 지났을까. 잡초와의 전쟁은 밭의 식물들이 제법 키를 키우니 끝나는 듯했다. 잡초를 제치고 부지런히 자라는 작물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후, 이제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하지만 나의 잔잔한 마음과 달리 이번엔 작물들이 전투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봄의 작물이 성장을 위해 시동을 거는 모습이었다면, 여름의 작물은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절정을 향해 질주하는 듯했다. 숲을, 아니 정글을 이룬 작물들이 정신없이 뒤엉켰다. 처음에는 책에서 본 대로 필요 없는 순을 꺾고, 지지대를 세워 가지를 정리했지만 식물들은 주 1회 방문하는 농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한나절 보고 있으면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일 것도 같았다. 물론 너무 더워 그럴 순 없었지만.
밭에서 보내는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렀다. ‘잠깐만 들러 정리 좀 하고 가야지’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도 1~2시간은 훌쩍 갔다. 티피오(TPO, 시간·장소·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중시하지만, 밭에 갈 때는 늘 실패했던 이유다. 검정 원피스를 입고 외출한 어느 주말, 동선이 맞아 밭에 들렀다 맛본 뜨거움을 잊을 수 없다. 정말로 잠깐 고추와 가지가 얼마나 영글었는지 보고, 잡초나 좀 뽑고 오려던 차였다. 하지만 밭일이라는 건 의외로 중독성이 있다. 금방 끝내고 가야지, 하다 고개를 들면 한나절이 지나곤 했다. 그날 나는 어릴 적 돋보기 아래 펼쳐 태우던 검정 색종이가 된 기분이었다.
준비성 없는 농부는 밭에 나갈 때마다 땀에 흠뻑 젖고, 난감하고, 곤란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 한번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다. 밭에서 돌아온 어느 저녁 책 <정원의 쓸모>를 읽다 무릎을 쳤다.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일을 하다 보면 녹초가 될 수 있지만, 내면은 기이하게 새로워진다. 식물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을 돌본 듯 정화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맞아, 몸은 고되지만 마음 한가득 초록의 기운을 얻어온 것, 다가올 가을 농사가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이유지.
글∙사진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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