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아오자이가 긴 장대 끝에서 깃발처럼 펄럭인다. 2010년 개봉한 영화 <하얀 아오자이>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굴곡진 베트남 현대사 속 여성의 생을 그린 작품이다. 원래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고, 한국에는 이 책이 1986년 <사이공의 흰옷>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영화 속에서 하얀 아오자이는 베트남 여성의 고결한 품성과 모성애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쓰였다. 베트남 여성의 강인한 정신을 보여주는 듯한 아오자이지만 뜻밖에도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아오자이의 전통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한복도 그랬지만 베트남 전통의상도 시대에 따라 변했는데, 오늘날과 같은 아오자이는 베트남 최후의 통일왕국을 세운 응우옌 왕조 때 기본형이 만들어졌다. 이후 프랑스 식민지배기인 1930년대에 여성의 상체에 딱 붙는, 허리부터 옆이 트인 긴 상의에 나팔바지처럼 폭이 넓어진 바지를 입는 서구식 디자인이 가미되었다. 그러다 보니 호찌민이 아오자이를 입지 말자고 할 정도로 새로운 아오자이는 구시대, 식민체제, 봉건의 상징으로 여겨져 북베트남에서 한동안 백안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조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통일이 된 뒤에도 얼마간 유지됐다. 베트남의 전통복식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하는 쪽과 서구화된 아오자이를 멸시하는 쪽이 공존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하얀 아오자이>에 나오는 것처럼 아오자이가 학교 교복이나 국영기업의 유니폼으로 선정되면서 다시 아오자이는 베트남 민족정신을 드러내는 전통의 상징이 되었다. 베트남 국영 항공사 여성 승무원의 유니폼 역시 아오자이에 기반을 둔 디자인이다.
전통복식에 바탕을 둔 동남아 항공사 승무원복은 베트남항공만이 아니다. 1968년 처음 소개된 싱가포르항공도 비슷하다.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끝에 위치한 만큼 말레이시아와 지리적·문화적으로 가깝다. 싱가포르항공 여성 승무원의 복장 역시 말레이 전통복식인 사롱 크바야에 기원을 둔 것이다. 유니폼의 천과 무늬도 말레이·인도네시아 고유의 바틱에서 나왔다. 싱가포르항공사의 유니폼은 5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았는데 이를 처음 디자인한 피에르 발맹은 뒷날 디자인을 고쳐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입고 벗기 편하도록 일부만 손질한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그만큼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우아한 복식으로 더할 나위 없다는 뜻이었다. 싱가포르항공 승무원복도 프랑스 디자인을 만나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현대적 변형이 이뤄지긴 했지만 말레이시아항공의 승무원복은 색과 디자인, 무늬가 모두 싱가포르항공과 차이를 보인다. 둘 다 사롱 크바야라는 점은 같지만 말이다. 말레이시아 국영항공사의 승무원복은 약간 어두운 청록색 바탕에 핑크색 꽃이 그려진 직물에 앞섶을 여미는 방식의 옷이다. 색의 조합이 마치 프라나칸(페라나칸) 도자기를 보는 듯하다. 굳이 따지자면 전통적인 사롱 크바야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의 전통복식이다. 말레이 문화권의 여성 의상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국영항공사인 가루다 인도네시아의 여성 승무원도 유니폼으로 사롱 크바야를 입는다. 색과 무늬는 달라도 말레이시아항공과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 승무원 의상의 디자인이 비슷했던 것은 이들 승무원 복장이 모두 사롱 크바야의 변형이었던 까닭이다.
2019년 가루다 인도네시아는 국내선 자카르타~스마랑 구간에서 더욱 전통적인 크바야로 여성 승무원의 복장을 바꾼 바 있다. 가루다 쪽은 이에 대해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그리고 인도네시아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크바야를 지키겠다는 약속”이라고 밝혔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일상복으로서의 크바야 착용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어난 에스엔에스(SNS) 캠페인 ‘#슬라사 브르크바야(#SelasaBerkebaya, Kebaya Tuesday)’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복주간을 만들고, 한복 입기 운동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말레이권 여러 나라에서 사롱 크바야를 전통의상으로 간주하다 보니 인도네시아가 ‘크바야의 종주국’임을 강조하려는 움직임일 수도 있다.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의 승무원들. 가루다항공 제공
사롱(사룽)은 남녀 구분 없이 입는 하의인데 지역마다 입는 방식이나 천의 직조, 무늬 등은 다르다. 보통 직사각형의 천을 따로 재단하지 않고 허리에 두른다. 때로 앞쪽 중앙에서 차곡차곡 여러 겹으로 접어 주름을 잡기도 한다. 크바야는 여성들이 입는 블라우스다. 크바야 역시 전통이 아주 오래됐다고는 보기 어렵다. 원래 인도네시아 자바에 있었던 마자파힛 왕국의 왕실 여성들이 입었던 옷에서 기원했다고 하지만 그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변화를 겪었던 탓이다. 자바 왕족들이 입던 옷을 네덜란드 지배기에 유럽에서 온 여성들이 정장으로 입기 시작하면서 옷에는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크바야라는 이름이 아랍어 카바(kaba)에서 왔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카바는 서아시아, 인도 북부의 이슬람 지배층이 입었던 겉옷인데 길고 헐렁한 재킷을 말한다. 이것이 동남아로 전해지면서 17세기께에는 신분이 높은 남녀 귀족들이 입게 됐다는 것이다. 18세기께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 살던 네덜란드인과 유라시안(주로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 혼혈) 여성들이 인도에서 수입한 직물로 만든 흰색의 긴 크바야에 풍성한 치마를 입으면서 크바야가 여성의 상의로 보편화되었다. 대략 이 무렵에 인도 고아로부터 레이스를 만드는 기술이 동남아에 전해지면서 크바야도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에는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흰색 크바야에 고급 바틱 사롱을 입는 것이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크바야와 비슷한 상의로 바주 판장이 있다. 크바야가 앞으로 여미는 블라우스 방식이라면 바주, 바주 판장은 긴 튜닉 형태의 가운 같은 옷을 말한다. 바주는 페르시아어로 팔을 뜻하며 역시 긴 치마와 함께 입었다. 크바야가 좀 더 화려하고 여성스러움이 강조된 짧은 옷이기는 하지만 지역에 따라 크바야와 바주 판장을 섞어서 부르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말을 쓰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동남아에서 면화, 면직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종종 나오지만 실제로 근대 이전까지 면직물은 인도 특산이었다. 따라서 크바야건 바주 판장이건 직물 자체는 화학섬유가 나오기 전까지 면직 아니면 실크였다. 사롱은 바틱이나 격자무늬의 면직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 후반 고가의 의류들은 영국산 면직물을 수입해 자바에서 디자인한 문양을 그려 만든 바틱을 이용했다. 천연재료로 염색한 바틱은 색이 좀 어두운 편이었기 때문에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보석을 썼다. 앞을 여미기 위한 브로치를 크롱상이라 부르는데 부유층 여성들은 다이아몬드 등 값진 보석으로 크롱상을 만들어 달았다.
동남아 복식의 변천에는 직물의 수급, 장식용 보석 거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덜란드, 영국은 물론, 인도, 서아시아의 상인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서구의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복식은 더욱 다양하게 변해갔다. 필리핀의 경우는 좀 더 드라마틱하다. 필리핀 남성의 전통의상으로 자리잡은 바롱은 필리핀 현지어인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를 줄인 말로 ‘타갈로그의 옷’이라는 뜻이다. 수를 놓아 화려해 보이는 흰색 셔츠인 바롱 역시 필리핀에서 축제나 결혼식 때 입는 정장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특이하게도 파인애플잎과 마닐라삼이라고 알려진 바나나과 식물에서 얻은 섬유로 짠 직물로 만들었다. 얼핏 보면 모시옷처럼 속이 훤히 비쳐 보이는 얇은 옷이라서 더운 나라에 맞게 만들었구나 싶지만 사실 바롱의 탄생에는 비극적인 식민지 현실이 숨어 있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할 때 원주민을 쉽게 구별하기 위해 바롱을 입게 했고, 바롱 셔츠 밑단을 바지 속으로 넣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국주의 저항세력이 옷 안에 몰래 무기를 감추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바롱은 상당히 로맨틱해 보이지만 저렇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이라면 아무것도 감출 수 없었을 법하다.
2019년 한-아세안 정상회의 때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는 버마족 전통의상을 입었다. 동남아의 정상들이 국제회의에서 자기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일이 종종 있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정상도 바틱으로 만든 전통복식 차림으로 공식 회담 장소에 나타나고, 타이 총리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수반은 자신들이 전통복식을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여기고 이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꼭 말로 해야만 주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독립의 역사가 짧고 정치적으로 안정성이 낮은 경우는 더욱 전통을 중시한다. 유독 한국의 전통문화를 강조했던 박정희 시대가 그랬고, ‘국풍 81’이라는 관제 이벤트를 개최한 제5공화국이 그랬다.
전통의상을 입는다는 것은 민족을 상징하는 옷으로 자신의 나라를 대표한다는 뜻이다. 동남아 여러 나라의 국가수반들은 독립하자 곧 공식 석상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보여주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이미 수십년이 흘렀지만 탈식민을 위한 자국 전통의 강화는 동남아에서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디자인과 색이 달라도 한복 하나로 통일되지만 다종족 국가인 동남아는 이와 다르다. 어느 나라도 하나의 의상이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 한 나라의 정상이 특정한 종족의 전통의상을 입는다면 특정 종족 중심의 문화우월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전통의상을 입음으로써 내적 통합을 꾀한다고 하지만 통합의 대상이 되는 주류 종족과 그 바깥에 있는 소수 종족은 구별되기도 한다. 버마족 의상을 입은 아웅산 수치는 버마족의 전통을 강조하고 버마족의 단결을 촉구한 셈이기도 하다. 민족 통합을 내세운 전통의상은 다수를 점하는 지배 종족의 상징자본으로 작동하고, 소수 종족에는 상징폭력이 될 수 있다. 지배 종족 중심의 ‘전통 만들기’에는 한 나라 안의 종족 간 위계가 숨어 있다.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