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은 여름이 다 지날 무렵에 핀다. 작고 사랑스러운 녹두꽃이 지고 나면 날씬하고 가느다란 깍지 속 알맹이가 맺히고 곧 수확을 시작한다. 녹두는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 밀접한 작물이었던 만큼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작지만 야무진 녹두를 닮은 녹두장군 전봉준. 녹두의 싹 숙주나물은 잘 쉰다고 해서 조선시대의 변절자 신숙주의 이름이 붙었다.
녹두를 갈아 만든 부침개인 빈대떡 하면 빈대떡 신사부터 떠오른다. 돈이 없으면 왜 밖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집에 들어가 녹두를 갈아 전을 부쳐 먹으라 했을까. 녹두가 외식 메뉴가 아니라 집밥 메뉴라는 뜻이었을까. 실제로 빈대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떡이라는 뜻의 ‘빈자떡’이란 단어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설도 있다. 예전에 감자, 고구마, 밀이 들어오기 전에는 녹두에서 얻은 전분으로 요리하는 게 보편적이었을 테고, 그래서 전분 성분을 통칭하는 이름도 ‘녹말’(녹두의 가루라는 뜻)이다. 이북의 함흥 쪽에서는 ‘농마’라고 발음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냉면, 온면류를 농마국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먹기 힘든 것이 바로 국산 녹두다. 중국산 녹두가 국내 시장을 거의 장악했다. 작지만 단단하고 맛도 옹골찬 국산 녹두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국산 녹두 가격은 중국산과 10배 차이가 난다. 그나마도 구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녹두 요리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건 역시 빈대떡. 제대로 만들려면 생각보다 과정이 만만치 않다. 녹두를 물에 담가 껍질을 비벼 제거하고(이 과정이 좀 괴롭다. 노르스름한 녹두 살만 남기고 초록빛 껍질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예전엔 며느리에게 이걸 시키면 못된 시어머니로 불리곤 했다.) 맷돌에 곱게 갈아 녹두전 반죽을 만든다.
맷돌 가운데 작은 구멍에 이 녹두를 한숟가락씩 집어넣는 게 어릴 적 내 담당이었다. 박자를 잘 맞춰야 하고 녹두 알갱이와 물의 양도 알맞게 넣어야 녹두가 잘 갈린다. 지금처럼 믹서기로 휘리릭 갈 때보다 불규칙한 알갱이들의 질감도 있으면서 더 고소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추억의 맛이 더해져서일까?
빈대떡 만들 때는 녹두를 갈기 전 재료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 녹두는 미리 갈아놓으면 산화 현상 때문에 색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점점 풍미를 잃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녹두빈대떡을 부칠 때는 지방이 적당한 돼지 앞다리살과 김치를 꼭 넣는다. 묵은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서 오래된 간장을 약간 넣고 주물러둔다. 번철에 돼지 앞다리를 볶아 기름이 배어나오면 양념한 김치를 넣고 달달 볶아준다. 이때 맷돌에서 바로 갈아낸 녹두를 몇숟가락 위에 얹고 기름을 더해 녹두빈대떡을 지져낸다. 주의할 점은 절대 누르면 안 된다는 것. 빈대떡 안의 공기층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그 사이사이를 돼지기름과 김치 양념이 채워야, 나중에 씹으면 바삭하면서도 풍미가 살아 있게 된다. 녹두빈대떡을 눌러서 부치면 정말 떡이 되어버린다.
녹두빈대떡에 가장 어울리는 간장은 초간장이다. 간장과 식초만 1:1로 섞어서 만들면 된다. 바삭한 녹두빈대떡의 겉면에 새콤한 초간장이 더해지면 느끼함이란 없다. 돼지기름 걱정은 초간장으로 타파한다. 씹으면 아삭한 김치도 안에 들어 있고 고소한 감칠맛의 돼지 앞다리살도 풍성한 맛을 더해준다. 그리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데 그게 바로 녹두의 진면목이다. 녹두가 살짝 거칠게 씹히면 그 단맛은 몇배가 된다.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