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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마다 ‘단골’ 외국어 공부…‘꺾이지 않는 마음’ 유지하는 법 [ESC]

등록 2023-01-13 07:00수정 2023-01-13 15:21

커버 스토리 성인 외국어 공부 비법

한국어 등 4개국어 하는 ‘파워 잉글리시’ 진행자 캐머런 리 워드
“말하기든 쓰기든 목표는 하나로, 좋아하는 방식으로 오래 할 것”
외국어 공부를 즐겁게 하려면, 드라마든 책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골라 꾸준히 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외국어 공부를 즐겁게 하려면, 드라마든 책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골라 꾸준히 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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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해다. 해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새해 계획이 있다. 다이어트와 외국어 공부가 바로 그렇다. 1월 초 붐비던 헬스장과 영어학원은 저녁 약속, 회식, 피곤해서, 우울해서 같은 핑계로 서서히 비어가고, 기어이 아까운 카드 명세서로 남기 일쑤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라고 찾아온 새해, 우리는 또다시 해묵은 새해 계획을 꺼내 먼지를 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되뇌며 그중에서도 외국어 공부를 계획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교육방송>(EBS) 라디오 프로그램 <파워 잉글리시>를 진행하는 캐머런 리 워드(33)를 지난달 12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서 만났다. 미국 아칸소주 출신으로 아칸소대학에서 국제관계, 동아시아 연구, 언어학을 전공한 그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에 능통한 4개국어 능력자다. 인터뷰는 당연히 한국어로 진행됐다.

4개국어 능통자의 단어장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모두 동북아 국가 언어라는 게 흥미로워요.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나요?

“아버지가 목사님이셔서 1년에 한두번은 선교사가 집에 오셨어요. 어릴 때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하시는 분이 왔었는데, 백인이지만 중국어를 하고 한자를 쓰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당시 아칸소에서는 홍콩 무술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 말고는 동아시아 문화를 많이 접할 수가 없어서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일본이나 한국이 어디인지도 잘 몰랐거든요. 그러니까 더 궁금해져서 고등학교 때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대학에선 동아시아 연구를 전공하면서 중국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요. 그러다 스시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주인이 한국인 가족이었어요. 그때부터 한국어에도 관심이 생겼죠. 보통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문화를 좋아하게 돼서 언어를 배우는데, 저는 언어 자체에 먼저 관심이 생겨야 문화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각각의 언어를 자유롭게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까지 몇년 정도 걸렸어요?

“일본어와 중국어로 큰 어려움 없이 대화할 수 있게 된 건 2년 반에서 3년 정도 지나서였던 것 같아요. 대학 입학한 지 1년 뒤인 2009년에 일본에서 두달, 중국 상하이에서 넉달 단기유학을 했어요. 그래서 좀 더 빨리 익힌 것 같아요. 그런데 중국어는 아주 유창하진 못했어요. 저는 중국어가 너무 좋은데, 문화적인 부분이 너무 통하지 않으니까 열정이 좀 식더라고요. 그래서 이후로는 일본어에 더 집중했죠.

대학 졸업한 뒤엔 일본에서 3년 반 정도 살았는데, 마지막 6개월 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뒤 한국에 와서 독학을 6개월 한 뒤 어학당을 1년 다녔는데 진짜 열심히 했어요. 매일 4시간씩 공부했으니까요.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까 병원 가서도 의사 선생님 말씀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고, 당시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과 소통하는 데도 문제가 없었어요. 한국어랑 일본어에 어순 등 공통점이 많아서 좀 더 빨리 학습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한국어가 제일 어려웠어요. 한자가 있으면 시각적인 힌트가 있어서 단어를 더 빨리 외우는데, 한글은 소리만 있잖아요.”

그는 지금도 하루에 1시간씩 적어도 일주일에 다섯번, 한국어 공부를 한다. 노트에 ‘옹이구멍’, ‘슬개골’ 같은 낯선 단어, ‘야들야들한 토끼고기’ 같은 표현을 빼곡하게 적어두고 틈날 때마다 읽어본다. 한자가 들어간 문장은 단어를 한자로도 적는다. 그가 여러 언어를 두루 구사하는 건, <파워 잉글리시> 공동 진행자인 크리스틴 조가 자주 칭찬하듯 타고난 언어 감각을 지닌 ‘언어 천재’여서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부단히 노력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20분간 영어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어떤 표현의 뉘앙스 차이를 딱 떨어지는 한국어 단어 하나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힘은 여기서 비롯된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걸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같은 노력이라도 즐겁게 하는 거랑 힘들게 하는 건 다르잖아요. 저도 듣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노래도 많이 안 듣고, 대화도 많이 안 들어요. 그 대신 쓰기, 읽기를 많이 해요. 어떤 사람들은 대화하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새로운 단어를 배우지만, 전 그런 스타일이 아니에요. 책이나 텍스트를 봐요. 무조건 노력할 게 아니라, 자기 공부 스타일에 맞는 즐거운 노력을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드라마를 좋아하면 드라마를 보면서, 책을 좋아하면 책을 읽으면서 하는 거죠. 그리고 새로운 단어나 문법을 외울 땐 여러 관점에서 봐야 해요. 휴대전화를 한쪽 면만 보면 모르잖아요. 뒷면, 옆면 다 돌려봐야 얼마나 두꺼운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듯이, 공부할 때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고 예외가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게 도움이 돼요.”

&lt;교육방송&gt;(EBS) 라디오 프로그램 &lt;파워 잉글리시&gt; 진행자 캐머런 리 워드가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서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교육방송>(EBS) 라디오 프로그램 <파워 잉글리시> 진행자 캐머런 리 워드가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서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름길은 없다, 예·복습은 기본

―사실 성인이 외국어 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시간도 부족하고, 머리도 많이 굳었고. 성인들한테 도움이 될 만한 가장 효과적인 외국어 공부 비법 세가지만 꼽아주실래요?

“우선, 기대 수준을 낮추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세요. 어른이 돼 처음 축구를 시작하는 사람이 올림픽 나가겠다고 생각하진 않잖아요. 말하기든, 쓰기든, 목표를 하나만 정하고 그거에 집중하세요. 두번째는 생각보다 기초를 많이 복습해야 해요. 한국 사람들 빨리빨리 좋아하지만, 언어는 그렇게 안 돼요. 운동선수들이 기초 훈련을 계속하듯, 언어도 어쩔 수 없이 기초적인 내용을 오랜 시간 반복해야만 해요. 안 그러면 다 잊어버려요. 세번째는 좀 전에 얘기한 즐거운 노력이에요. 그 대신 집중력이 필요할 정도로 어느 정도 어려워야 기억에 남아요.”

―반대로,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방법이 있을까요?

“딱히 이 방법이 안 좋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자기 스타일과 공부 목적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죠. 말하기·쓰기는 생각해서 바깥으로 내보내는 일이고, 듣기·읽기는 정보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서로 다른 과정이에요. 그런데 말하기를 잘하고 싶은데 듣기 연습만 한다면 그건 틀린 방법이겠죠. 말하기를 하고 싶으면 말하기 연습을 해야죠.”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좋은 교재를 골라 예습하고, 대화문과 어휘, 문법을 익히고 문장을 쓰는 연습문제를 반드시 풀어보기’를 외국어 공부 비결로 소개한 바 있다. 마치, 대학수학능력시험 전국 1등이 “교과서 중심으로 예습·복습을 충실히 한 것”이 비결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얘기로 들린다. 뒤집어 보자면, 외국어 공부에 왕도 같은 건, 슬프게도 없다는 진실이다.

―유튜브에서 왜 그 방식을 추천했어요?

“그게 저한테 제일 맞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외국어 수업을 그렇게 진행하는 건 이유가 있어서일 거잖아요. 된장찌개를 만들 때 넣는 재료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요리법 자체는 바꿀 수 없어요. 그럼 다른 요리가 되니까요. 마찬가지로, 언어도 기본기를 튼튼히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요. 특히 복습은 진짜 중요해요. (이 말을 할 때, 그의 눈빛은 강한 확신으로 확 바뀌었다.) 그냥 100페이지 보는 것보다 20페이지 제대로 복습하는 게 훨씬 나아요. 그래야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요.”

―영어는 발음도 어렵지만, 억양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건 학습자의 문제가 아니라, 많이 안 가르쳐서 그런 것 같아요. 한국말 공부할 때 저도 어려웠어요. 영어 원어민으로서 저도 영국이나 남아공 억양은 어려워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대신, 섀도잉(따라 말하기) 할 때는 롤모델을 골라서 한 사람만 많이 따라 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너무 여러 말투가 섞이면 오히려 이상해지니까요.”

나만의 ‘소확행’ 찾아 꾸준히 하기

―외국어 공부의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언어의 본질이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일 중요한 건 발음이나 문법의 정확도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하기’인 것 같아요. 이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자신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은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해서 틀리고 싶어 하지 않고, 틀리면 자꾸 미안하다고 해요. 그런데 미안하다고 하면 저도 계속 신경을 써야 하니까 정신적으로 피곤해져요. 틀려도 그냥 말하세요. 어차피 원어민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틀려도 별로 신경 안 써요. 만약 오해가 생긴다 해도 나중에 해결할 수 있어요. 저도 한국말 많이 틀리지만, 외국인이라서 그런 거라 이해해주잖아요. 원어민들도 똑같아요.

외국어를 공부할 땐 즐거운 노력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지금까지 외국어 못해도 잘 살았잖아요. 영어 못한다고 죽지 않을 거예요. 너무 진지하게 하지 마세요. 학교 다닐 때처럼 의무 아니잖아요. 졸업했으면 즐겨야죠. 요즘 인공지능, 번역 잘해요. 하지만 외국어를 공부하는 덴 다른 의미가 있죠. 인공지능이 더 잘하지만 사람들이 바둑과 체스를 그만두지 않는 것처럼요. 제가 외국어 공부하기 잘했다 느낀 게 <개그콘서트>를 볼 때였어요. 한국어를 몰랐다면 그런 농담도 몰랐을 거잖아요. 생각의 지리학이랄까, 외국어 공부는 결국 원어민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를 배우는 거니까요. 각자, 본인한테 맞는 언어 공부의 의미가 있을 거예요. 그 소확행을 찾아보세요.”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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