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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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대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최근 아이가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병원도 찾겠지만, 섭식장애도 마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 함께 사는 가족으로서 도와주고 싶어요. 아이는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다 최근 불합격 통지를 받았어요. 애인과도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본인 인생에선 가장 힘든 시기일 거예요. 얼마 전 식사를 한 뒤 소화가 안 된다며 구토를 하는데, 일부러 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식사를 건너뛰는 날도 잦아집니다. 엄마인 저와는 관계가 좋은 편이고, 친구들과도 큰 문제는 없어 보여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이긴 해요.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안타까운 엄마
A. 삶이 참 어렵습니다.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원해서 태어난 나라도 아니고, 원해서 태어난 집도 아니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고군분투하며 세상이 요구하는 조건들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아주 특출난 배경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한국 사회에서 삶의 난이도는 그렇게 만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나도 힘들고, 당신도 힘듭니다. 우리는 모두 힘들고 어딘가 조금씩은 패인 상처가 있습니다.
지금의 20대, 그 어떤 세대보다도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세대입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지속해서 젊은 세대와 소통해온 제가 느끼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어쩌면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인지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는 가장 어려움을 겪는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휴대폰과 함께 성장했고, 그래서 자신의 멋짐을 드러내는 것과 타인의 화려한 삶을 바라보는 것에는 익숙합니다. 하지만 멋짐과 화려함 이면에는 우리가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어떤 것들이 존재하지요. 삶의 고단함, 초라한 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기질 같은 것들요. 그러나 내가 본 미디어 속의 사람들처럼 잘나야 하고, 잘 해내야 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마음은 우리를 오히려 위축되게 합니다. 자기 안의 밝음도 어둠도 모두 끌어안는 법을, 미디어는 단 한 줄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요.
자녀분은 분명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경험하고 있을 겁니다. 그 어렵다는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셔야 하는 부분은 이겁니다. 엄마와 관계가 좋다고 하셨지만 어쩌면 그 좋은 관계라는 것이 사실 자녀분이 ‘힘들다, 괴롭다’는 속마음을 꾹 누르고 표현하지 않아서 나올 수 있었던 결론은 아닌지를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착하게 살아온 아이는 부모 입장에선 ‘나와 관계가 좋은 아이’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아이의 내면이 건강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부모로서는 모든 것을 지원했는데 내 아이의 마음에 팬 곳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병원을 찾을 거라곤 하셨지만 아직 머뭇거리는 까닭은,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란, 내가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말이라도 편안히 할 수 있도록 어떤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삶이 완벽할 수 없기에 우리의 사랑도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상대의 고통에 공명할 수 있음 자체가 사랑은 아닐까요? 갑작스럽게 대화를 시도하고 위로를 전하려고 하기보다는, 일상을 벗어나 짧은 여행을 함께 떠나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조용히 함께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 때로는 마음속에 있던 얼음이 녹아 나오기도 하니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자녀분이 따뜻하고 현명한 심리상담 선생님을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곽정은 작가, 메디테이션 랩 대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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