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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여기까지 와서 일만 하긴 억울해…‘출장 요가’의 재미

등록 2023-02-18 13:58수정 2023-02-18 14:03

#오늘하루운동 요가

출장 때 운동 갈증? 두드리면 열린다
여행용 요가 매트 위에서 얻는 위로
현지 ‘원데이 클래스’ 새로운 자극
지난 1월 에스토니아 탈린 출장 중 일과를 마치고 요가를 하는 모습. 정인선 제공
지난 1월 에스토니아 탈린 출장 중 일과를 마치고 요가를 하는 모습. 정인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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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떠날 때마다 여행용 가방 속에 반드시 챙기는 물건이 있다. 김치도, 고추장도, 컵라면도 아닌 요가 매트다.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 항구 옆 어느 호텔에서 이 글을 마감하는 이 순간에도 노트북을 덮으면 바로 수련을 시작할 수 있도록 침대 옆에 매트를 깔아 뒀다.

출장지에서 요가를 하는 습관은 정식으로 요가를 배우기 전 처음 생겼다. 연재 첫 편에서 언급했듯 5년 전 겨울 교통사고를 당해, (생각해 보니 이 또한 어디론가 출장을 가던 길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벼운 스트레칭 말고는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독일 베를린으로 일주일가량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현지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운동하지 못해 굳은 허리가 10시간 넘는 긴 비행을 견딜 수 있을지가 더 걱정스러웠다. 유튜브에 ‘비행 중 할 수 있는 요가 동작’을 검색했다. 목과 어깨를 풀어주는 동작 위주로 구성된 영상 몇 개를 ‘오프라인 저장’해 뒀다가 틈틈이 몸을 달래 가며 비행을 했다.

센트럴파크에서 요가 해본 사람?

출장지에 도착해서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하는 생각으로 호텔 바닥에 큰 타올을 깔아 둔 채 간단한 요가 동작들을 했다. 출장 요가엔 굳은 몸을 풀어주는 것 이상의 효과도 있었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온종일 함께 움직여야 하는 단체 출장이라 어디를 방문해 누구를 만날지부터 점심·저녁 식사 메뉴까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는데, 일과를 마치고 침대 옆 구석에서 요가를 하는 동안만은 주의를 나 자신에게 돌릴 수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나도 하루에 적어도 30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듬해 요가 수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는 출장을 다닐 때마다 의식을 치르듯 매트를 펼쳤다. 요가에 막 재미를 붙인 지 몇 달 안 돼 미국 뉴욕으로 열흘가량 출장을 떠날 일이 생겼다. 수련의 흐름이 끊기는 게 싫어, 출장을 가서도 하루에 한 번은 매트에 올라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안 그래도 짐이 많은데 부피 큰 매트를 뉴욕까지 어떻게 들고 가지? 검색을 조금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접으면 책 한권 크기로 줄어 여행용 가방에 쏙 들어가는 여행용 매트를 여러 요가용품 브랜드들이 내놓고 있었다. 이런저런 제품을 비교한 끝에 가격은 사악하지만 품질이 뛰어나 ‘요가매트계의 샤넬’이라고도 불리는 브랜드 ‘만두카’에서 나온 제품을 사기로 했다. 아마존에서 국내 정식 판매가보다 저렴하게 장만해 뉴욕까지 들고 가 틈틈이 수련을 이어갔다.

요가는 낯선 환경 속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내 삶을 휘젓지 못하도록 막아줬다. 먼 곳으로 출장을 떠나면 무엇보다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잃기 쉽다. 특히 한국과 시차가 큰 곳이라면, 낮에는 현지 시각에 맞춰 일정을 소화하고, 밤에는 한국 시각에 맞춰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칫하면 업무 부담이 평소의 두 배로 늘어난다. 꼭두새벽에 한국으로 기사를 보내 놓고 기절하듯 침대로 뛰어들기보다 30분이라도 매트 위에서 숨을 고르고 나면, 내 시간과 내 몸에 대한 주도권이 내게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행용 요가 매트를 따로 장만하기 부담스럽거나 선생님 없이 혼자서 수련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초보 수련자라면, 주말을 이용해 현지에서 열리는 원데이 클래스(일일 수업)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도 뉴욕 출장 당시 ‘여기까지 왔는데 독특한 장소에서 수련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구글에 ‘센트럴파크 요가’를 검색했다. 예상대로 여러 수업이 센트럴파크에서 열리고 있었다. 검색 결과 맨 위에 뜬 수업을 예약했다. 일주일 내내 맨해튼의 귀를 찌르는 소음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는데, 도시 한가운데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신기하게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 가운데에서 관광객들과 섞여 요가를 하니 일주일의 출장 동안 쌓인 긴장이 누그러졌다. ‘센트럴파크에 와 본 사람은 있어도 여기에서 요가를 해 본 사람은 드물 거야!’하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이에 더해 같은 기간에 뉴욕에 출장을 온 취재처 관계자를 수업에서 우연히 만나 요가라는 공통분모로 빠르게 친해진 뜻밖의 소득까지 있었다.

원데이 클래스 탐색을 위한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아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클래스 패스’라는 앱을 이용하면 근처에서 열리는 요가, 필라테스, 크로스핏, 러닝 등 수업을 쉽게 검색해 비교할 수 있다. 앱 내 크레딧을 구매하면 전 세계 30여 개국 3만여개 제휴 스포츠 시설에서 쓸 수 있어, 언제 어디서든 운동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공용 매트, 사물함, 타월, 샤워실 등이 갖춰져 있는지 뿐 아니라 ‘여성이 운영하는 곳', ‘엘지비티큐(LGBTQ) 친화적 공간’, ‘휠체어로 접근 가능’ 등 공간마다 특색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어 각자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다.

가방에 쏙 들어가는 여행용 요가 매트. 정인선 제공
가방에 쏙 들어가는 여행용 요가 매트. 정인선 제공

끊기지 않는 수련 흐름은 덤

숙박 시설 예약 앱으로 잘 알려진 ‘에어비앤비’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다. ‘숙박’ 탭이 아닌 ‘체험’ 탭을 선택한 뒤 도시 이름과 방문 기간을 입력하고 ‘스포츠 활동’ 필터를 적용하면 요가와 러닝, 자전거 투어, 트레킹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찾아 등록할 수 있다. 다만 에어비앤비 앱 특성상 운동 그 자체보다는 처음 방문한 곳에서 즐기는 이색적인 체험 쪽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아, 평소 운동량이 많은 이에겐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한국에선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활동이 비교적 많은 것은 장점이다. “여기까지 와서 일만 하다 돌아가야 하나”하는 억울한 마음을 내려놓는 데에는 에어비앤비 앱을 이용하는 쪽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운동보다 체험이 목적인 이들이 많다 보니 인증샷을 남기기에도 덜 민망하다.

출장 요가의 무엇보다 큰 효능은 집에 돌아왔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장소가 잠시 바뀌었었다는 것 말고는 대세에 큰 변화가 없으니, 평소 수련 흐름으로 되돌아오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꼭 요가가 아니어도 좋으니 잠시 집을 떠나서도 매일 이어갈 나만의 의식을 하나씩 가져 보면 어떨까?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빅테크팀에서 국내외 정보기술(IT) 산업을 취재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등산,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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