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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왜 나만 못났다고 생각할까요? [ESC]

등록 2023-03-11 11:00수정 2023-03-11 11:15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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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 엄마는 왜 나만 못났다고 생각할까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학교에서 상을 받아와도, 똑같은 상을 받은 옆집 아이는 칭찬하고 제가 받아오는 결과에 대해선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더 높은 목표를 얘기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늘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뭘 해도 잘한다는 소리 않는 엄마였기에 좌절감만 느꼈지요. 언젠가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은 적 있는데, 엄마는 그랬냐며 “내가 그렇게 강하게 단련해준 덕분에 네가 성장한 것 아니겠냐”고 하며 웃어 넘겼어요. 엄마는 왜 늘 저를 모자란다고 생각할까요. 이제 엄마 품을 떠나 제 가정 꾸린 30대 중반이지만, 저에게만 기준이 높은 엄마에게 여전히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늘 엄마와 싸우는 기분인 35살

A. 부모와의 관계는 어째서 나이가 들어도 예민하고 힘든 것일까요? 차분히 돌아본 끝에 이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내게 좌절감과 상처를 남긴 엄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내가 너무 약하고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일이란 마치 양생 중인 시멘트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다는 것을. 사람들은 때로 평생을 두고 그 자국과 씨름한다는 것을요.

그 씨름의 한 방편으로서, 어떤 사람들은 부모에게 ‘그때 왜 그랬어요?’ 라고 직접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덕분에 네가 잘된 거다’라고 속없는 소리를 하는 부모나, ‘내가 언제 그랬냐’며 오히려 버럭 화를 내는 부모가 대부분이지요. 우리의 외로운 씨름이 때로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왜 나만 못났다고 생각할까?’ 여전히 현재형으로 표현된 사연자 분의 문장이 지금 상태의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죠. 그런데, 엄마는 당신만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당신의 느낌일 뿐이죠. 진짜 진실은, 엄마는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자식을 타박하고, 더 높은 목표를 이야기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지요. 그 결과, 자신의 아이에게 사랑다운 사랑을 주지도 못하고 사과다운 사과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뿐입니다.

부모도 한때는 어리고 취약한 아이였습니다. 따뜻한 사랑을 받은 적 없던 아이가, 따뜻한 부모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 맞습니다. 엄마 역시 자신의 부모가 준 시멘트 위의 발자국과 평생을 싸워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것은 당신의 슬픔이기 이전에 사실상 엄마의 슬픔이고 고통이지요. 성숙한 부모가 되지 못했고, 여전히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니까요. 모든 인간은 자신의 발전과 진보를 바란다는 전제하에, 당신의 어머니는 애석하게도 어떤 목적지에 가 닿지 못한 사람이고, 슬프지만 이것이 진실입니다.

부모가 준 정신적 유산과 이별하고 싶으세요? 내 상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내려놓으세요. 당신의 고통에 몰입할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타인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고통의 보편성에 눈을 뜨기 바랍니다. 안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또한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엄마에게 사과받아 해결하는 방법은 아마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내 아이의 부모로서 어떤 사랑을 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성찰의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내가 어떤 부모로 살아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지요.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과거에 대한 내 입장은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진실은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진심의 힘을 빌려, 섭섭함의 감옥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시길 바랍니다.

곽정은 작가, 메디테이션 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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