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사나’(까마귀 자세)에서 아래쪽 바닥이 아닌 앞쪽 바닥 한 점이나 코끝을 응시해야 무게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을 수 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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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그리고 한쪽 무릎을 들어 올린 채 반대쪽 다리로만 균형을 잡아 보라. 이번엔 두 눈을 감은 뒤 같은 동작을 반복해보라. 분명 같은 동작이지만 눈을 감은 상태에선 몸이 앞뒤, 양옆으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다. 분명 같은 자세인데,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가원에 다녀볼까 처음 마음먹은 친구들, 특히 남성 친구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요가원에 가면 다들 몸에 달라붙거나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있을 텐데 민망해서 어쩌냐”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각자 자기 수련하느라 힘들어서 남의 옷차림엔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답한다.
사실 요가 수련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보낼 틈이 없는 진짜 이유는 힘들어서라기보다 다른 데에 있다. 동작마다 시선을 둬야 하는 곳, 즉 ‘드리시티’(응시점)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시선을 둬야 할 곳에 고정해 둘 때 비로소 ‘움직이는 명상’으로서 요가의 효과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자세를 확인해 고칠 수 있도록 사방에 대형 전신거울을 걸어 두는 헬스클럽들과 달리, 요가원들은 대개 거울을 설치하지 않는다. 수련자들의 시선이 불필요하게 흐트러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시선을 정해진 곳에 둔 채 머무르는 연습은 자꾸만 바깥을 향하려는 정신을 내 안으로 모으는 데에 도움이 된다. 다리 뒤쪽 근육이 뻣뻣해 몸을 앞으로 숙이는 자세가 어려운 내게 남들에겐 휴식을 가져다주는 자세도 때로 고문처럼 느껴진다. 손바닥과 발바닥을 서로 멀리 바닥에 둔 채 엉덩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기지개 켜듯 상체를 늘리는 ‘아도무카스바나아사나’(다운독 자세)가 대표적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자세에서 무릎을 쭉 펴고 발뒤꿈치를 쉽게 바닥에 내려놓는데, 내 발뒤꿈치는 수년을 수련해도 땅에 닿을 생각을 안 했다. 학창 시절 ‘엎드려뻗쳐’ 기합을 받을 때처럼 호흡도 금세 가빠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휴식 자세라는 거지?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쉽게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는 거야?” 신경을 쓰면 쓸수록 두 눈이 발 쪽을 향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턱을 쇄골 쪽으로 붙이고 배꼽이나 허벅지 안쪽을 보세요”라며 집 나간 정신을 붙들어 매게 도와줬다. 시선을 안으로 모아 상체를 펴내는 감각에 집중하는 날이 쌓여갈수록 발뒤꿈치와 바닥 사이 간격이 점차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살람바 사르방가사나’(어깨서기 자세)와 그 변형 자세들에서는 시선이 발끝이 아닌 가슴 중앙 또는 코끝을 향해야 한다.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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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일은 에너지를 꼭 필요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자리에 누운 상태에서 반동을 이용해 엉덩이 아래 다리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린 뒤, 두 손으로 윗등을 받치는 ‘살람바 사르방가사나’(어깨서기 자세)에서도, 하늘을 향한 발끝과 엉덩이, 그리고 두 어깨가 서로 수직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두 눈이 나도 모르게 발끝으로 향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자세에서도 마찬가지로 발끝이 아닌 가슴 중앙을 바라본 상태를 유지해야, 턱으로 목을 잠가내 혈액을 심장 쪽으로 보내는 효과가 커진다. 또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렸다가 양손을 어깨 아래에 짚고 상체를 들어 올려 가슴을 활짝 펴는 ‘부장가사나’(코브라 자세)에서는, 두 눈을 뜬 채 코끝을 가만히 응시하거나 두 눈을 감고 두 눈 사이를 바라보려 노력하면 척추 마디마디가 깨어나는 듯한 감각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반대로 팔다리를 길게 뻗어 더 깊은 자세를 만들어나갈 때는, 몸이 향하려는 쪽으로 시선 또한 멀리 두는 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무릎 아래 정강이만 땅에 대고 허벅지는 세워 앉은 채 상체를 뒤로 젖혀 가슴을 활짝 여는 ‘우스트라사나’(낙타 자세)에서 길게 호흡하는 동안에는 두 눈을 감고 미간을 응시하다가, 양손을 발꿈치에서 떼어 뒤쪽으로 길게 뻗은 뒤 땅바닥을 향해 내려가 천천히 팔꿈치를 구부려 바닥에 닿은 두 팔로 머리를 감싸는 ‘카포타사나’(비둘기 자세)로 다가갈 때는 시선을 멀리 손끝에 둬야 한다. 그러지 않고 고개를 가슴 쪽으로 살짝만 들어 올려도, 겨우 뒤로 아래로 보내 놓은 몸 전체를 한꺼번에 들어 올리고 싶은 충동이 배로 커진다. 드롭백 수련을 다룬 앞선 글(
‘드롭백’ 자세 2년째 수련…오늘도 도전)에서 언급한, 가보지 않은 곳으로 몸을 내던져야 한다는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 물밀 듯 밀려오는 것이다.
내게 처음 요가를 알려 준 선생님은 후굴 자세에 들어간 나의 두려움을 알아채고 “호흡과 시선이 이끄는 쪽으로 몸을 자연스럽게 맡겨 보라”고 조언했다. 선생님 말을 믿고 흩어진 호흡과 시선을 가다듬으면 거짓말처럼 내 몸이 지금까지 지나 온 곳이 아닌 앞으로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에 다시 신경을 모아낼 수 있었다.
드리시티의 ‘효험’은 후굴 자세 만큼이나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거꾸로 선 자세와 균형 잡기 자세들에서도 크게 느낄 수 있다. 특히 다리가 아닌 팔의 힘으로만 몸을 들어올려 균형을 잡는 ‘암발란스’(팔로 균형 잡기) 자세들에서는, 시선을 잠시만 다른 곳으로 돌려도 몸이 한 순간에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쉽다. 예를 들어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기울여 두 무릎을 팔꿈치 위에 살포시 올려 놓는 ‘바카사나’(까마귀 자세)를 취할 때, 고개를 들어 시선을 코끝 또는 앞쪽 바닥 한 점에 두지 않고 아래쪽 바닥에 두면 어떻게 될까? 몸에서 가장 무거운 부위인 머리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바로 균형을 잃고 박치기를 하게 된다.
매트 위에서 시선을 정해진 곳에 두는 연습을 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날은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느라, 어떤 날은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 때문에 지레 겁을 먹느라, 또 어떤 날은 좋고 싫음이나 잘잘못을 따지고 드느라 정작 ‘지금, 여기’에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 실행하는 데에는 신경과 에너지를 제대로 못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매트 바깥에서도 수련은 이어진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빅테크팀에서 국내외 정보기술(IT) 산업을 취재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등산,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