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을 보면 한강 다리에 올라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사람에게 전어 굽는 냄새를 피워 다시 내려오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그 냄새가 그렇게 좋을까? 죽을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 도로 식욕이 돋게 할 정도로? 항간에는 며느리의 귀가를 다르게 해석하는 설도 있다. 전어의 단백질과 지방이 불에 타는 냄새와 연기가 마치 사람이 타는 것과 비슷해서 며느리는 사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돌아온 것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전어라는 이름에 쓰인 ‘전’자는 돈을 뜻한다. 맛있고 인기가 많아서 돈처럼 거래된다고도 하고,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이 없는 사람도 모두 찾아 먹는 생선이라 그렇게 불리는 것도 같다. 사실 전어는 도미나 고등어처럼 누구나 좋아하는 인기 생선은 아니었다. 모두 가난했던 그 시절 사람들은 동물성 지방 섭취를 위해 근해에서 잘 잡히는 생선 위주로 섭취했는데 그중 하나가 전어였다. 흔해서 많이 먹었다는 얘기다. 특별히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집에 기름기가 적당히 도는 전어는 싼값에 인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며느리 얘기 말고도 ‘가을 전어’ 맛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소리가 있다.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 정확히는 가을철 기름기가 오른 전어 머리를 먹었을 때 마치 참깨를 씹은 것처럼 고소하다는 뜻인데 생선 머리에서 참깨 맛이 날 리가 있나. 이런 말들은 언뜻 속담처럼 오래된 진리를 품은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전어도 금어기가 있다. 전어가 산란하는 5월부터 7월 중순까지는 잡을 수 없다. 이 시기 전어들은 충분한 먹이활동을 하며 살을 찌운다. 전어는 난류성 어종이기 때문에 바닷물 수온이 적당한 늦여름, 금어기 이후에 최상의 컨디션과 연한 뼈, 그리고 오동통한 살집까지 최고의 상품성을 완성한다. 게다가 지금은 가격도 저렴하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가을 전어’를 선호하기 때문에 9월 중순 이후로 전어는 부르는 게 값인 그야말로 돈값 제대로 하게 된다. 그러니까 맛있으면서 값도 싼 진짜 전어 철은 바로 지금이다. 수온이 내려가고 전어가 따뜻한 바다로 도망가는 쌀쌀한 날씨가 되면 이미 늦다는 소리다. 국내 최대 전어 산지인 경남 삼천포에서 20여년 전부터 열리는 전어축제 역시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중순에 열린다.
전어는 불에 구워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 8월 전어는 뼈가 연해 다들 세꼬시나 회무침 등을 선호하지만 나는 무조건 직화구이를 추천한다. 금어기 이후 통통히 오른 살과 불이 만나면 진짜 깨를 볶는 듯 고소한 기름내가 타다닥 소리와 함께 퍼진다. 전어 껍질이 거뭇하게 바삭해지면 굵은 소금을 팍 뿌리고 젓가락으로 가운데 살을 찌른다. 껍질과 살 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육즙과 기름이 합쳐져 슬쩍 녹아든 소금기와 함께 어우러진 전어살을 입에 넣으면 정말 씹기도 전에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전어처럼 기름진 생선은 무조건 아가미 아래쪽의 ‘배받이살’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 내장이 꽉 차있던 이 살은 쇠고기로 따지면 갈빗살, 돼지고기로 따지면 삼겹살 부위다. 깨가 서 말이라는 고소함은 머리가 아닌 이 배받이살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전어를 발라 먹일 때 다른 쪽 살을 왕창 주고 이 배받이살은 사수한 채 천천히 가시를 발라먹었다. 잔가시가 세로로 박혀있는 배받이살을 힘겹게 발라먹는 내 모습에 아이들은 “엄마도 흰 살 먹어!”라며 안타까워했지만 사실 딱히 엄마의 마음으로만 그런 건 아니었다. (얘들아 미안해….) 이제는 맛집 전문가가 된 가수 성시경씨의 에스엔에스(SNS)에서 최근 이런 글을 읽었다. “곧 전어 철이 다가오겠죠?” 내 친구 시경아, 전어 철 이미 왔어. 8월 가기 전에 전어 먹자!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