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서울 성동구 짐타운에서 그룹운동 ‘럼블핏’을 하고 있는 김종석 코치와 회원들. 김종석 제공
“16명 규모의 그룹 수업도 테스트해보고, 8명 그리고 4명 그룹 수업도 해봤어요. 커리큘럼도 다양하게 구성하고 경험하면서 ‘아, 그룹 수업이 사람들에게 좋게 작용하는구나’ 깨달은 거죠.” 김종석 코치가 벤치프레스 의자에 앉아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 막 그룹운동을 마친 뒤 캠핑 의자에 앉아 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짐타운’(서울 성동구)이고, 그는 대표 겸 코치다. 관장 또는 ‘피티(PT) 쌤’ 또는 트레이너가 아닌 코치. 호칭만 변한 게 아니다. 짐타운은 지하 1층이다. 지상으로 노출된 테라스가 있고, 그곳은 캠핑장처럼 꾸며져 있다. 진한 베이지색 벽돌 기둥이 연결된 형상은 웅장하고 탄탄해 보인다. 마치 김종석 코치 팔뚝처럼.(아직 내 팔뚝은 그렇지 않지만!)
이곳에서 운동하면 약간의 우월감을 갖게 된다. “멋있는 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짐을 공간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당연히 저는 공간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헬스클럽에 가면 운동기구들이 삭막하게 놓여 있었고, 관장님이 운동을 가르쳐주셨죠. 그 후에 ‘피티 쌤’이라 불리는 분들의 시대가 있었고 피트니스센터가 생겼지만, 인테리어는 비슷했어요.” 분명히 이제 그다음 시대가 되었다고 할 만하다. 짐타운은 두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일대일 트레이닝을 하는 공간, 그리고 ‘럼블핏’이라 부르는 최대 4명이 그룹운동을 하는 공간.
그룹운동은 여러명이 함께 한다. 코치가 그날 할 운동을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로잉(노 젓는 형태의 기계 운동), 버피(엎드렸다 일어나 점프하며 손뼉 치는 동작), 바이크(자전거 페달 밟기)로 세트를 구성한다. 이건 말 그대로 예시다. 푸시업(팔굽혀펴기), 싯업(윗몸일으키기), 마운틴 클라이머(엎드려뻗친 자세에서 양발을 가슴까지 번갈아 뻗었다 내렸다 하는 운동) 등을 할 때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힘이 드는데, 하면 더 힘들다. 강하게 운동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이 약간씩 있다. 쉬는 시간이 오기 전에 쉬고 싶은데 코치가 못 쉬게 할 뿐 아니라 옆에서 그룹 멤버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계속 하고 있어서, 그 분위기 때문에 쉬지 못한다.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도 많다. 등근육을 날개처럼 펴며 거침없이 데드리프트(바닥에 놓인 바벨을 팔을 굽히지 않고 엉덩이 높이까지 들어올리는 운동)를 하는 여성 동료도 있다. 그런 친구와 운동할 때는, 나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코치가 2인1조로 팀을 구성해준다. 같은 조 동료가 동작을 할 때 나는 쉬며 숫자를 세준다. 그 친구가 완료하면 내가 시작한다. 옆의 조보다 더 많이, 더 빨리 하는 게 목표…는 아닌 것 같은데, 조를 나누니까 그렇게 하려고 애를 바득바득 쓴다. 그러나 패자는 없다. 모두가 다 같이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이다.
대략 50분간의 운동이 끝나면 그날 처음 본 동료와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올리는데, 나는 올려본 적이 없다. 요즘 말로 엠비티아이(MBTI) 아이(I)여서. 하지만 친구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을 보면 나도 소속감이 삼두근처럼 단단해진다.
‘럼블핏’이라는 이 그룹운동의 이름은 공간의 성격을 규정한다. “헬스장에 가면 ‘기구를 살살 내려놓으시오’라든가 ‘정숙’이라든가 그런 문구가 붙어 있는 경우가 있어요. 운동하면서 어떻게 조용해요? 덤벨이 무거우면 바닥에 쿵쾅 내려놓을 수도 있잖아요.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럼블핏이에요. ‘럼블’(rumble)은 우르르 소리를 낸다는 뜻이에요.” 김종석 코치가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바람대로 럼블핏 시간엔 짐타운 안의 소리가 커진다. 거의 신음 소리지만. 럼블핏은 유산소 위주의 프로그램과 근력 위주의 프로그램이 요일마다 번갈아 진행된다. 기본적으로는 ‘히트’(HIIT)라고 부르는 고강도 인터벌 운동이 근간을 이룬다. 강하게 운동하고 쉬기를 반복하는 것.
짐타운에서 그룹 수업 럼블핏을 하고 있는 이복원씨. 이복원 제공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같이 운동하면서 ‘와,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저도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굉장히 기뻤어요.” 이복원님은 짐타운에 거의 매일 온다. 나는 그녀의 나이를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3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선 서로를 ‘님’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등근육을 날개처럼 펴며 거침없이 데드리프트를 하는 여성 동료’ 중 한명이다. 아까 그녀와 함께 럼블핏을 할 때 우리는 나란히 로잉 머신 위에 앉았다. 노를 젓듯, 양손으로 손잡이를 당기면 운동량이 계기판에 표시된다. 10㎉를 타야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로잉을 끝내고 다음 동작을 하러 갔다. 자주 있는 일이어서 당황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의 매일 운동을 하러 오는 여성이니까.
“그룹운동이 인기를 끄는 데 에스엔에스(SNS)가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단체사진을 찍어서 올리니까요. 굉장히 멋있어 보이잖아요!” 단체사진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운동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보면 탄성이 나온다. 나는 그녀가 늘 도전하고 있다는 걸 동영상을 보며 깨닫는다. 사실 ‘굳이 영상을 왜 찍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그녀는 진심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서 스스로도 그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처음엔 경쟁하는 마음이 있었고 종종 지금도 그렇지만, 요즘은 운동하는 순간의 저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나는 운동하러 가기 싫을 때,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도 ‘복원님’을 떠올린다. 그녀는 요즘 내 롤모델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그녀는 짐볼을 꺼내 누워서 두 다리를 그 위에 올렸다. “유튜브에서 본 동작인데 해보려고요.” 엉덩이를 들어올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다음에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취미가 같은 친구가 생긴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녀와 나, 그리고 몇몇 럼블핏 친구들은 11월에 함께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 우리는 종종 같이 러닝을 한다.
함께 시작해 함께 완료하는 팀 트레이닝
‘에프45 한남’에서 다른 코치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김예림(가운데) 대표 겸 코치. 김예림 제공
“불면증이 있거나, 가슴 아픈 일을 겪은 분들이 에프(F)45에 오셔서 극복하는 걸 많이 봤어요.” 김예림 코치는 ‘에프45 한남’(서울 용산구)의 대표이자 코치다.(그 외에도 서울 신논현·잠실, 경기도 판교·광교에서 4개 지점을 더 운영하고 있다.) ‘F’는 ‘기능적인’(functional)이라는 의미이고, ‘45’는 이곳에서 운동하는 시간(분)을 가리킨다. 기능적인 45분! 역시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위주로 구성된다. 강하게 움직이고 쉬고, 다시 강하게 움직이고 쉰다. 너무 힘들어서 ‘F’를 미국 욕(fu×××××)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그룹운동은 대한민국 서울에서만 유행하는 게 아니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유행인데, 대표적인 브랜드가 에프45다.
“45분은 하루의 겨우 3%예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신체를 강하게 단련하는 거죠.” 김예림 코치가 말했다. 나는 올해 4월 에프45 한남점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이 운동을 해보았다. 20~30명이 4명씩 조를 이뤄 45분간 다양한 동작을 반복한다. 덤벨이나 케틀벨을 들고 하는 동작도 있고, 맨몸으로 하는 동작도 있다. 2명의 코치가 빠르게 오가며 참여자들이 바르게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도와줬다. 그럼에도 그룹 인원이 많아서 동작을 자세히 배우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행히 커다란 모니터가 여러대 설치되어 있고, 화면에 운동 동작이 직관적으로 표시된다. 몇개를 해야 하는지, 쉬는 시간까지 몇초가 남았는지도 알려준다. 사실 요즘은 유튜브에서 모든 동작을 자세히 공부할 수 있다. 그러니 누가 어떻게 가르쳐주는지 못지않게 누구와 함께 운동을 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에프45 한남’에서 회원들이 그룹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에프45 인스타그램 갈무리
나는 완벽한 ‘I’ 성향이라서 낯선 사람들과 조를 이뤄 운동하는 게, 무거운 덤벨을 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 4명은 조를 이뤄 네개의 동작을 각각 수행하고, 모두가 완료하면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 내가 내 동작을 빨리했다고 혼자만 앞서갈 수 없다. 동료들도 완료해야 내가 동료들의 동작을 이어받는다. 서로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쉬는 시간을 알리는 기계음이 울리면 ‘I’인 나도 낯선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45분간의 격렬한 응원. 굉장히 큰 위로다.
“45분이 지나면 단체사진을 찍어요. 그 사진 속에 있다는 것, 이 스튜디오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강한 소속감을 부여합니다. 사진을 찍으며 우리의 슬로건을 외치죠. 팀 트레이닝! 라이프 체인지.” 팀 트레이닝이 삶을 바꾼다고? 나는 믿는다. 내 삶이 그렇게 영향을 받았으니까. 나는 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종종 나를 신뢰하지 않았고 어떤 일에 대한 잘못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저 근육이 불끈 솟는 응원을 주고받다 보면 우리 모두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 충분히 스스로 긍정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것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꾼다. “커뮤니티 기능을 더 강화하려고 해요. 같이 봉사활동을 하거나 산에 가기도 하고요. 올여름엔 동해로 캠프를 갔어요.” 김예림 코치의 설명이 이어졌다. 정말로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려는 의지. 그러나 코치들이 의도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만들지 않아도 커뮤니티는 자발적으로 형성된다.
서울 용산구 ‘에프45 한남’에서 케틀벨 운동을 하고 있는 로권씨. 로권 제공
“매일 새벽 에프45 스튜디오에 갑니다. 혼자 하는 운동이었다면 안 가는 날도 있었을 거예요. 새벽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뒤 같이 운동하는 지인과 근처 카페 맨 위층에서 맞이한 아침은 오래 기억에 남을 추억입니다.” ‘로권’님은 한남동 에프45에 다닌다. 나는 그를 명상 모임에서 만났다. 본명을 모른다. 나이는 어렴풋이 추정해볼 수 있는데, 음, 외모만 보면 40대 후반 같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일 것 같고, 그와 함께 에프45를 해본 적이 있는데 운동 능력으로 보면 30대 같다.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제 나이 또래는 시도를 안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젊고 활기찬 친구들 덕분에 러닝도 하고 프리다이빙도 하고 에프45도 하고 있어요. 같이 운동을 하고 나면 엄청 친해진 느낌이 들어요.” 그와 있으면 그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특별함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돋보인다. 나는 그가 매일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그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에게서 그 동기를 발견한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 역시 ‘로권님’을 통해 성장의 동기를 찾는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그런 분들은 운동만 열심히 하셔도 됩니다. 모든 사람이 그룹운동을 커뮤니티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그가 말했다. 그러나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나가다 보면 삶이 바뀌지 않아도, 문득 풍요와 행복의 감정이 차오른다.
지난 5월 서울 성동구 짐타운 멤버들이 서울숲에서 도시명상 팀과 명상 수업을 함께하고 있는 모습. 짐타운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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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타운의 김종석 코치는 코로나19 이후 일종의 보상심리로 그룹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일리 있지만 한편 우리에겐 늘, 무엇인가를 같이 할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낯선 사람과 만나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것은 이 시대의 특성 중 하나이며, 동시대 대부분의 문화를 관통하는 감각이다. ‘2023년의 인류는 바깥으로 나가 자신의 사회성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고 적으면 성급한 일반화일까?
그래서 앞으로 그룹운동의 전망은? 당연히 밝다. 팀버핏, 슬릭부스트 등 그룹운동 프로그램을 갖춘 브랜드가 꽤 있다. 프로그램도 체계화되어 있다. 다만 비슷하다.
“예를 들어 뉴욕의 경우, 부티크 짐이 굉장히 인기가 많아요. 복싱 짐도 있고, 사이클 짐도 있죠. 다양한 종목의 전문 스튜디오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이 점이 한국과의 차이죠. 공간도 트렌디하게 꾸며놓았어요. 힙합이나 이디엠(EDM) 음악을 틀고, 사진 찍어서 에스엔에스에 올리기 좋은 형태로 힙하게 디자인했어요. 다 같이 웃으면서 재밌게 운동해요.” 김예림 코치가 말했다. 그녀가 알려준 짐의 소셜미디어를 찾아보았다. 커다란 캐릭터 일러스트가 그려진 샌드백을 두드리며 웃는 사람들의 사진이 보였다. 같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 과장이지만 이 느낌이 인류를 구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이우성 시인·슈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