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엔 늘 그런 식이었다. 술은 쭉 모두의 잔에 따른 뒤에 다 같이 마시는 것이었다. 비우지 못하는 사람은 나약한 이였다. 술을 마시는 것은 정신력과 연관되는 일종의 수양이었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일종의 자격 같은 것이었다.
일에 대한 수고는 대개 한바탕 거한 술자리로 보상받았고, 취할 때 본심이 나온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취한 모습을 보아야 알 수 있다는 이유로 취할 때까지 테스트하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런 술자리는 다음날에 체력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지워버리고 싶은 실수와 후회를 동반하곤 했다. 20년도 훌쩍 지난 일이다.
술이라는 것은, 술자리는 늘 그런 식이었다. 그러던 중 멋을 아는 선배가 데려간 곳에서 양주를 정식으로 대면했다.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술이 바를 장식하고 있지만, 당시 바에서는 이런저런 양주를 구분 없이 팔았다. 종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위스키나 브랜디, 테킬라, 럼의 구분 없이 양주로 불리며 판매됐다. 처음 먹었던 양주(아버지 술장에 있었던)가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위스키였는지 브랜디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위스키라는 것을 인식하고 처음 마신 건 선배가 데려간 바에서 만난 사각 병의 잭 다니엘스였다. 40도라는 높은 도수의 술, 그것도 풍미가 강한 버번(또는 테네시) 위스키여서 첫 만남에 ‘니트’(neat, 얼음을 섞지 않는 것)로 마시는 건 쉽지 않았다. 약간 맛을 본 뒤 다음 잔부터는 콜라에 타서 마셨다. 버번은 주재료로 옥수수가 51% 이상 들어가고 속을 까맣게 태운 새 오크통에서 숙성해야 하는 등 정해진 규정에 따라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위스키다. 여기서 단풍나무 숯에 여과 과정을 거치고 테네시주에서 생산하면 테네시 위스키가 된다. 버번이 더 큰 범주이기 때문에 테네시에서 생산된 잭 다니엘스는 버번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의견과, 테네시는 따로 분류되므로 버번으로 부르면 안 된다는 의견 사이에 논쟁이 있다.
아무튼 내가 마신 것은 간단한 레시피의 위스키 칵테일인 이른바 ‘잭콕’이라는 것이었다. 부담 없는 맛이었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마실 수 있었다. 이후 종종 이런 술자리가 있었고, 차분하고 기분 좋은 마무리로 술자리가 마감되곤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위스키는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차분하게 마시기에 좋은 술이었다. 그런 인상은 이후 위스키가 나에게 선사한 기분 좋은 시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높은 도수의 양주를 처음 즐기기 시작할 때는 이렇게 음료와 함께 마시는 것이 수월하다. 물론 술에 익숙해진 이후에는 40도가 그다지 높은 도수는 아니지만, 첫 만남에서는 술이 불이 되어 내장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도수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유행하는 위스키 하이볼(위스키에 소다수를 섞음)은 잭콕의 계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세월이 흘러 술 문화도 바뀌고 있다. 이전처럼 질펀한 술자리는 줄었고, 가볍고 짧은 자리가 늘고 있다. 다양한 술들이 들어오고 취향이라는 것이 술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즐길 수 있는 위스키는 이렇게 변화된 술 문화에 제격이 아닐지. 수많은 위스키를 마셨고 취향도 바뀌었지만 지금까지 잭 다니엘스는 아직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위스키 중 하나다. 묵직한 사각 병을 보자면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글·그림 김성욱 위스키 블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