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요리사 주세페 바로네(왼쪽)와 그의 제자인 한국인 요리사 박찬일씨.
[매거진 esc]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주세페 요리사 내한…
“산낙지 싱싱한 맛 잊을 수 없어”
“산낙지 싱싱한 맛 잊을 수 없어”
소설 속 인물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런 일이 벌어졌다. < esc >에 2007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연재됐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칼럼에는 한 이탈리아 요리사가 등장한다. 말 안 듣는 요리사에게는 막 삶은 파스타를 집어던지고, 돈 많은데 음식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는 미국 졸부를 골탕 먹이는 다혈질 주방장이다. 다혈질이지만 깨끗하고 공정하게 유통된 먹거리가 중요하다는 슬로푸드 운동의 운동원이기도 하다. 레스토랑 ‘누이누이’의 박찬일 요리사는 주세페 바로네(49) 주방장이 던지는 파스타를 피해 다니며 요리를 배웠다. 이 한국인 제자가 자신의 요리 스승을 초대했다. 된장을 빵에 발라 먹고 불교에 관심이 많던 주세페 바로네는 제자 덕분에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 2일 낮 누이누이에서 그를 만나 한국 음식에 대한 느낌과 한식 세계화 등에 대해 물었다.
이탈리아 요리도 한국에서는 한국 재료 써야
그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지적이었다. “피아체레 코노셰를라”(Piacere conoscerla)라고 말하며 딴엔 미리 준비한 이탈리아 인사말을 던졌음에도, 지중해식으로 포옹하거나 그러진 않았으니 말이다. 대신 껄껄 웃으며 이탈리아어는 강세가 중요하다며 발음을 고쳐줬다. “피아췌~~레 코노~~셰를라”라고 해야 한단다. 만나서 반갑다는 말이다.
고나무 기자(이하 고) : 칼럼으로만 상상하던 당신을 만나서 반갑다. 10월26일 입국해 지금까지 여러 한국 음식을 맛봤을 것 같다. 뭐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이유는 뭔가? 주세페 바로네(이하 주세페) : 첫째로 조계사를 방문했을 때 맛본 사찰 음식이다. 연잎에 싸인 밥이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이 주식이고 한국에서는 쌀이 중요하다. 그 중요한 음식을 상징성 있게 바꾼 게 인상적이었다. 둘째로 지난주 금요일 저녁 포장마차에서 산낙지를 먹었다. 살아 있는 낙지가 싱싱하고 맛이 좋았다. 셋째, 아귀(아구) 간 요리를 맛봤는데 기억에 남는다. 신선하고 맛있었다.
박찬일 요리사(이하 박) : 아귀를 이탈리아에서도 먹긴 하는데 흔하지 않다.
고 : 시칠리아와 한국은 해산물 등 비슷한 게 많다고 들었다.
주세페 : 바다는 다른데 먹는 습관이 비슷하다. 가령 어제 명동에 가서 막걸리를 먹었다. 안주로 튀김, 전이 많던데 이탈리아에도 그런 음식 많다. 반가웠다.
고 : 당신은 슬로푸드 시칠리아 지부 창립자의 한 사람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일어난 운동이다. 그 운동의 지향 가운데 하나는 최대한 지역의 음식 재료를 이용해 ‘로컬푸드’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한국 식재료를 이용해 로컬푸드로 만드는 게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요리사는 이탈리아 요리는 이탈리아 식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며 일부러 수입 식재료를 많이 쓰기도 한다.
주세페 : 나는 요리사란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장소를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한국에 왔다면 이곳의 생선을 이용해서 해석하는 게 의무다.
박 : 이날 저녁 슬로푸드 갈라 디너 행사 때 주세페 주방장이 만들 요리도 한국 식재료로 만들었다. 가령 키조개, 멍게, 한국 파 등 이탈리아에서 안 쓰는 재료를 썼다. 심지어 깻잎도. 한국에만 존재하는 재료로 얼마든지 훌륭한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고 : 한국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로컬푸드로 만드는 게 가능하고 바람직한가?
주세페 : 시!(Si. 그렇다.)
고 : 이탈리아 요리는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요리다. 어떻게 하면 한식이 세계적으로 더 알려질 수 있는가?
주세페 : 요리란 문화의 한 부분이다. 한 민족의 요리를 알리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일단 요리를 예술로 대해야 한다. 둘째로 중요한 건 음식문화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다. ‘좋은 것만 보여주자’는 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우리의 식문화는 이렇습니다”라고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요리는 요리다.(맛있어야 한다는 뜻) 참고로 궁중 음식이 서민 음식보다 더 나은 건 아니다. 둘은 누가 더 낫다기보다 그저 다를 뿐이다. 가령 막걸리는 어떤가? 마지막으로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부들한테도 충고를 들어야 한다.
그는 칼럼에 묘사됐던 것보다 진지했다. 처음 한국 땅을 밟아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로베르토(박찬일 요리사의 애칭)의 첫인상은 어땠는지, 로베르토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뭔지 물었다.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실수라… 로베르토의 이탈리아어가 유창한 편이 아니라 불편했을 뿐이다. 주방에 들어가면 흥미로운 우스갯소리란 있을 수 없다. 일은 일이다.”
고 : 이탈리아에서는 레스토랑 평가매체로 <미슐랭 가이드>가 아니라 <감베로 로소>(붉은 새우)가 유명하다고 알고 있다. (<감베로 로소>는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 <일 마니페스토>의 부록으로 80년대 말 처음 출간됐다. 깨끗하고 공정한 먹거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요새는 <감베로 로소> 말고 프랑스 매체인 <미슐랭 가이드>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들었다. 이유가 뭔가?
주세페 :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요리한 적이 없다. 그들을 신경 쓰진 않는다. <감베로 로소>는 <일 마니페스토>의 부록으로 2, 3주에 한 번씩 출간됐던 거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지금 <감베로 로소>는 다른 기업에 팔려 <일 마니페스토>와 상관없다. 이젠 ‘쇼’를 지향한다. 20년 전에는 읽을거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쇼밖에 남지 않았다. 그저 비즈니스다.
고 : 나는 음식담당 기자다. 언론매체에서 요리사나 식당을 평가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뭔가?
주세페 : 음식담당이라고? 우선 주방에서 한 달 살아라. 감자 깎는 것부터 시작해라. 그다음 시골에 가서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보라. 그 과정을 거치면 식재료의 원래 맛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요리사의 기술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 수 있을 거다.
고 : 당신은 왜 된장에 흥미를 갖는가?
주세페 : 기본적으로 모든 발효 음식에 관심이 많다. 역사가 긴 음식을 보면 그 나라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고 : 지금까지 먹어본 한국 음식 가운데 지금 당장 시칠리아나 이탈리아에 가져다 놔도 장사가 될 것 같다고 느낀 음식이 있나?
주세페 : 음… 어떤 음식을 다른 나라에 가져가려면 그 나라 국민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이탈리아로 말하자면, 이탈리아인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 음식에 흥미가 없다. 호기심이 별로 없다.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그게 이미 시작이다.
역사 긴 음식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보여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자 글로 만난 주세페가 슬슬 드러났다. 두 손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하고 흔들며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박찬일 요리사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다. 문득 요리와 무관하지만 평소 이탈리아인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통역사에게 통역을 억지로 부탁했다. “베를루스코니가 계속 집권하는 이유가 뭔가?” 주세페는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뒤 껄껄 웃었다. “마음 같아선 그가 당장 물러났으면 좋겠지만 조사 결과를 보면 ‘이탈리아인들은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그런 연구 결과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들었다.” 그의 정치의식도 열정적이었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이 더 뜨거워 보였다. 빨리 그의 요리를 맛보고 싶었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윤운식 <한겨레21> 기자 yws@hani.co.kr
고나무 기자(이하 고) : 칼럼으로만 상상하던 당신을 만나서 반갑다. 10월26일 입국해 지금까지 여러 한국 음식을 맛봤을 것 같다. 뭐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이유는 뭔가? 주세페 바로네(이하 주세페) : 첫째로 조계사를 방문했을 때 맛본 사찰 음식이다. 연잎에 싸인 밥이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이 주식이고 한국에서는 쌀이 중요하다. 그 중요한 음식을 상징성 있게 바꾼 게 인상적이었다. 둘째로 지난주 금요일 저녁 포장마차에서 산낙지를 먹었다. 살아 있는 낙지가 싱싱하고 맛이 좋았다. 셋째, 아귀(아구) 간 요리를 맛봤는데 기억에 남는다. 신선하고 맛있었다.
박찬일 요리사
주세페 바로네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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