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장 문 닫았습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회사원 K씨의 정관수술 체험기
‘힘’ 빠질 우려, ‘남성성형’ 시술 패키지가 유혹하네
‘힘’ 빠질 우려, ‘남성성형’ 시술 패키지가 유혹하네
잘못 싸면 뒤집어씁니다. 지난 주말 쳤던 고스톱 얘기가 아닙니다. 막 놀다 보니 수능 날이 닥친 수험생이 혹시 뜨끔했을지 모르지만, 그 얘기도 아닙니다. 빼빼로데이로 시작해 줄줄이 이어지는 연말연시 잠깐 재밌자고 평생 우울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괴로움을 뒤집어씌울 수 있어 하는 말입니다. 때마침 일군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선언에 나섰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산부인과 의사가 할 일은 아니었다.” 지난달 19일치 <한겨레> 10면에 실린 산부인과 의사들의 고백입니다. 산부인과 의사 680여명이 만든 ‘대한산부인과 개원의사회’(가칭)가 불법 낙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는 것도 문제이고 미혼모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고루한 시선도 문제지만, 낙태도 여성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피임은 남자나 여자나, 기혼이나 싱글이나 성인 모두에게 고민거리입니다. 고민 끝에 ‘공장 문’ 닫은 회사원 K씨부터 콘돔으로 숙제하는 남녀들까지 우리 시대 피임의 다양한 풍경들을 공개합니다.
갑자기 빗줄기가 떨어졌다. 7월 초여름 오후 예기치 못한 소나기. 불안, 초조함, 두려움, 후련함. 여러 감정이 뒤섞여 발걸음은 무거웠다. ‘○○○ 비뇨기과’. 퍼붓는 빗발 사이로 길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병원은 아득하기만 했다.
의사는 몇 가지를 물었다. 정말로 ‘공장 문’을 닫을 생각이 확고한지 재차 확인하고, 수술 뒤 최소 4주 이상은 콘돔 등 다른 피임기구를 사용해야 하며 그 뒤 정액 검사를 받고 나서야 확실한 수술 결과를 보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나중에 다시 공장 문을 여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정자가 정상적인 활동성을 갖지는 못할 것이며, 그렇더라도 의학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이를 갖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제는 아내 곁으로 가고 싶다
5분 남짓 의사의 설명이 끝나고, 수술실에 들어섰다. 남성 간호사가 들어왔다. “바지 내리고 여기에 누우세요. 벗지 마시고요.” 엉거주춤 바지를 무릎 근방까지 내리고 수술대 위에 눕자, 하늘이 잠시 환해지고 이어 천둥소리가 우지끈한다. 하늘도 나의 ‘공장 폐업’을 슬퍼하는가, 아니면 자연의 섭리에 대한 역행을 노여워하는가.
정관수술을 결단하기까지 무려 3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첫아이를 낳은 뒤 아내는 바로 공장 폐업을 명령했다. “당신이 안 하면 내가 해버린다!” 협박은 강렬하고 단호했다. 간단하게 내가 하면 될 일을 어렵고 복잡한 아내에게 떠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출산 직후 육아에 시달리는 아내에게는 못할 짓이기도 했다. “할게, 내가 해야지.”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둘째 아이로 딸을 낳고 싶은 미련과 수술에 대한 거부감 등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고민과 두려움, 게으름 덕분에 3년이 흘렀고 결단은 불현듯 이뤄졌다. 첫째 아이만으로도 충분히 몸과 마음은 지쳐버렸고 둘째가 딸이라는 보장 없이 두 번째 임신을 계획할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 아내의 결심은 바윗돌처럼 탄탄했다. 더구나 무려 3년 동안 아내 곁으로의 접근권이 박탈된 삶을 더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 내 인생의 성생활은 얼마나 남았겠느냐 말이다. 혹자는 이야기했다. “장화는 놔뒀다 삶아 먹을래?” 그러나 콘돔은 아내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직장에서 ‘장화’가 찢어져 원치 않은 늦둥이에 개고생 하는 수많은 선후배 동료를 목격해왔던 것. 콘돔에 대한 아내의 불신은, “두 겹도 안 돼?”라는 내 간절한 호소조차 매몰차게 거절할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병원으로 쳐들어가기 전에 웹 검색부터 했다. 엄청난 정보와 숱한 남자들의 고민이 숨어 있었다. 회사 근처 비뇨기과부터 서울 번화가와 집 근처까지 검색한 뒤, 당일 수술이 가능한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을 문의했다. 회사 근처 병원에선 짬을 낼 수 없어 수술에 번번이 실패했다. 아예 하루 휴가를 내고 동네 비뇨기과에 예약을 하고 나서야 결행이 가능했다. 수술은 아팠다. 몸보다 마음이 아팠다. 예전엔 예비군 훈련까지 빼주며 무료로 할 수 있던 걸 무려 25만원을 들여야 했다. 세계 1위 저출산 국가의 정부는, 이제 정관복원수술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 배려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모성 복지에 힘쓰면 풀릴 문제를, 정부는 치사하게 정관수술로 장난(?)치고 있는 것 같아 분노도 치밀었다. 애 낳으면 돈 몇 푼 쥐여주겠다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고한다. “남녀 모두 출산휴가 2년씩만 보장해봐. 저출산 단박에 해결할걸? 청년실업 문제에 교육 문제까지 해결되면 세계 1위 출산 국가는 문제도 없을 거다.” 속은 쓰렸지만 수술은 15분 만에 끝났다. 수술대 위에서 “윙~” 하는 면도기 소리가 날 땐 적잖이 당황하였지만, 의사가 들어와 고환에 작은 구멍 뚫고 양쪽 정관을 뽑아내 자른 뒤 레이저로 지지고 난 뒤에는, 테이프 하나가 붙어 있었을 뿐이다. 예상치 못한 유혹도 있었다. 흔히 남성들이 정관수술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힘’ 때문이다. ‘생식기능=성기능’이라고 의식하는 탓일 터. 인간의 본능, 특히 남성의 그것은 ‘씨’를 많이 퍼뜨리는 것이라는 주장에 맥이 닿아 있겠지만, 성기능은 생식 외에 즐거움을 위한 것도 있지 않겠나. 정관을 묶으면 성관계가 안 되거나 성기능이 저하될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대한민국 남성의 머릿속에는 상존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의사는 내게 은밀한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다른 건 필요 없나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조용히 속삭였다. 단박에 알아챘다. 그의 제안은 바로 음경배부신경차단술 또는 귀두확대수술이렷다. 웹 검색을 통해 이미 충분히 숙지한 바다. 솔직히 말한다. 나도 강하게 유혹을 받았다. 특히 음경배부신경차단술, 이것은 정관수술처럼 매우 단순할 뿐 아니라 비용도 저렴하다고 한다. 이게 뭐냐면, 성기로 연결된 아주 작은 신경을 끊어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둔하게 만들어 성관계 시간을 더 길게 가질 수 있다는 것. 어느 대한민국 남성이 이런 ‘마술’에 유혹받지 않으랴. 좀더 과감한 이들은 확대술로 크기까지 키운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정관수술로 잃을 자신감을 신경차단술 따위로 회복하느니, 차라리 스님이 되겠다.’ 정관수술에 대한 조언 하나 더. 요즘 정관수술의 대세는 무도정관술이다. 칼을 쓰지 않는다는 뜻. 절개하지 않고 작은 구멍 하나로 대체한다. 중국에서 1970년대에 개발되었다고 한다.(인구 대국이니 피임술만은 역시 선진적이군) 중국의 선진적이고 간편한 무도정관술은 80년대 미국으로 수출되었고,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됐다. 결국 거의(‘전혀’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수술 뒤 다소 묵직한 느낌 때문) 아프지 않고 편리한 수술이, 대한민국의 저출산 현상에 일조를 한 셈이기도 하다.
인구 대국이 만들어낸 필살의 기술
나의 공장 폐업기를 들은 수많은 30~40대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안 아파요?” “괜찮아요?” “어디서 했어요?” “얼마예요?” “나도 해야 하는데 ….” 나의 결행을 격려하고 환영해준 아내는 직장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아내 직장은 여성들이 대부분인 곳이다) 반응은 이렇게 돌아왔다. “우리 남편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시켰어? 비결 좀 알려줘. 우리 남편이 자기 남편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안 될까?” 등등.
3년여 미적거린 내가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다. 숙제를 미뤄둔 분들이 이렇게 많으니, 콘돔 회사가 수익을 내며 성업하고 있겠지. 그래도 남편들이여, 아내에게 미루지 말지어다. 비교적 쉬운 점수 따기 방법임과 동시에, 출산의 고통까지 겪은 아내에게 또다른 칼을 대게 하는 게 할 일인가? 남자는 ‘칼’ 없이도 되는데.
글 호두아빠/회사원 auster.p@gmail.com·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표지디자인 이상호 기자 silver35@hani.co.kr
고민과 두려움, 게으름 덕분에 3년이 흘렀고 결단은 불현듯 이뤄졌다. 첫째 아이만으로도 충분히 몸과 마음은 지쳐버렸고 둘째가 딸이라는 보장 없이 두 번째 임신을 계획할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 아내의 결심은 바윗돌처럼 탄탄했다. 더구나 무려 3년 동안 아내 곁으로의 접근권이 박탈된 삶을 더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 내 인생의 성생활은 얼마나 남았겠느냐 말이다. 혹자는 이야기했다. “장화는 놔뒀다 삶아 먹을래?” 그러나 콘돔은 아내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직장에서 ‘장화’가 찢어져 원치 않은 늦둥이에 개고생 하는 수많은 선후배 동료를 목격해왔던 것. 콘돔에 대한 아내의 불신은, “두 겹도 안 돼?”라는 내 간절한 호소조차 매몰차게 거절할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병원으로 쳐들어가기 전에 웹 검색부터 했다. 엄청난 정보와 숱한 남자들의 고민이 숨어 있었다. 회사 근처 비뇨기과부터 서울 번화가와 집 근처까지 검색한 뒤, 당일 수술이 가능한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을 문의했다. 회사 근처 병원에선 짬을 낼 수 없어 수술에 번번이 실패했다. 아예 하루 휴가를 내고 동네 비뇨기과에 예약을 하고 나서야 결행이 가능했다. 수술은 아팠다. 몸보다 마음이 아팠다. 예전엔 예비군 훈련까지 빼주며 무료로 할 수 있던 걸 무려 25만원을 들여야 했다. 세계 1위 저출산 국가의 정부는, 이제 정관복원수술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 배려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모성 복지에 힘쓰면 풀릴 문제를, 정부는 치사하게 정관수술로 장난(?)치고 있는 것 같아 분노도 치밀었다. 애 낳으면 돈 몇 푼 쥐여주겠다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고한다. “남녀 모두 출산휴가 2년씩만 보장해봐. 저출산 단박에 해결할걸? 청년실업 문제에 교육 문제까지 해결되면 세계 1위 출산 국가는 문제도 없을 거다.” 속은 쓰렸지만 수술은 15분 만에 끝났다. 수술대 위에서 “윙~” 하는 면도기 소리가 날 땐 적잖이 당황하였지만, 의사가 들어와 고환에 작은 구멍 뚫고 양쪽 정관을 뽑아내 자른 뒤 레이저로 지지고 난 뒤에는, 테이프 하나가 붙어 있었을 뿐이다. 예상치 못한 유혹도 있었다. 흔히 남성들이 정관수술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힘’ 때문이다. ‘생식기능=성기능’이라고 의식하는 탓일 터. 인간의 본능, 특히 남성의 그것은 ‘씨’를 많이 퍼뜨리는 것이라는 주장에 맥이 닿아 있겠지만, 성기능은 생식 외에 즐거움을 위한 것도 있지 않겠나. 정관을 묶으면 성관계가 안 되거나 성기능이 저하될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대한민국 남성의 머릿속에는 상존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의사는 내게 은밀한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다른 건 필요 없나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조용히 속삭였다. 단박에 알아챘다. 그의 제안은 바로 음경배부신경차단술 또는 귀두확대수술이렷다. 웹 검색을 통해 이미 충분히 숙지한 바다. 솔직히 말한다. 나도 강하게 유혹을 받았다. 특히 음경배부신경차단술, 이것은 정관수술처럼 매우 단순할 뿐 아니라 비용도 저렴하다고 한다. 이게 뭐냐면, 성기로 연결된 아주 작은 신경을 끊어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둔하게 만들어 성관계 시간을 더 길게 가질 수 있다는 것. 어느 대한민국 남성이 이런 ‘마술’에 유혹받지 않으랴. 좀더 과감한 이들은 확대술로 크기까지 키운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정관수술로 잃을 자신감을 신경차단술 따위로 회복하느니, 차라리 스님이 되겠다.’ 정관수술에 대한 조언 하나 더. 요즘 정관수술의 대세는 무도정관술이다. 칼을 쓰지 않는다는 뜻. 절개하지 않고 작은 구멍 하나로 대체한다. 중국에서 1970년대에 개발되었다고 한다.(인구 대국이니 피임술만은 역시 선진적이군) 중국의 선진적이고 간편한 무도정관술은 80년대 미국으로 수출되었고,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됐다. 결국 거의(‘전혀’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수술 뒤 다소 묵직한 느낌 때문) 아프지 않고 편리한 수술이, 대한민국의 저출산 현상에 일조를 한 셈이기도 하다.
1962년 가족계획 지도원(오른쪽 끝)이 농촌 여성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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