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암살단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암살단 이름은 ‘양심 채권추심단’ 내지는 ‘고사드’(고나무가 사주하는 대로 드립치는 사람들) 정도? 인원은 남자 2명과 1982년생 키 155㎝에 35-23-33의 여성 1명 등 3명.
이들은 낮에는 텔레마케터, 가스 배달, 격투기 사범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오후 6시30분부터 움직인다. 일을 하는 이유는 말투 변조, 표정 짓기 등 암살자로 단련되는 데 사회생활이 필수이기 때문이다.(덤으로 증오심도 배운다.) 문자로 암살 대상을 공지한다. 먼저, ㅇ와인바 지배인. 지난해 말 모임 때 와인을 한 병 들고 갔다. 코키지(직접 와인을 갖고 와 마실 때 내는 서비스료)가 얼마냐고 묻자 “코키지가 뭐예요?”라고 반문하며 무조건 안 된다고 생떼 쓰던 그분. 화장실에서 두 손을 묶고 이마에 유성 매직으로 “코키지는 1만원입니다”라고 쓰고 나온다. 두번째로 지난달 초 3살쯤 된 아이 손을 잡고 젊은 어머니가 하차할 때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위협적으로 자동문을 닫으려던 버스기사. 납치해 손을 뒤로 묶은 뒤 쪼그려 뛰기를 횟수를 세며 255번 시킨다.(틀리면 다시) 매주 월요일 섹시한 기사 아이템 없냐고 쪼는 팀장은… 그냥 둔다.(암살단을 운영할 월급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하마스 간부를 외국에서 암살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항상 현실은 상상을 앞지른다. 미국 르포 작가·소설가 톰 울프는 “현대 소설의 가장 큰 난관은 소설은 그럴듯해야 한다는 명제다. ‘그럴듯한’(plausible)이라는 단어는 지금 같은 시대를 묘사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최 세상은 전혀 그럴듯하지 않다. 나치 피해민족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탄압하는 것도 그럴듯하지 않고,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드러난 현실은 비현실적이다. 유일하게 그럴듯한 건, 이번호 〈esc〉도 재밌다는 사실이다. 너무 재밌다.(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를 이토록 진부하게 결론짓는 기자의 직업병은, 그럴듯하지 않다.)
고나무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