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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품격 쇼핑백의 철학

등록 2012-12-12 17:59수정 2012-12-13 14:54

<b>1.</b> 다큐영화 <헬베티카>를 만든 오브젝티브 필름의 백. <b>2.</b> 2011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페어 ‘아트바젤’ 백. <b>3.</b> 문화유산연대가 화가 강익중의 작품을 이용해 만든 백.
1. 다큐영화 <헬베티카>를 만든 오브젝티브 필름의 백. 2. 2011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페어 ‘아트바젤’ 백. 3. 문화유산연대가 화가 강익중의 작품을 이용해 만든 백.
[매거진 esc] 라이프
쇼핑백 수집하는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디자이너 이상철씨에게 들어보는 쇼핑백의 의미와 미학
20대 여성 김아무개씨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명품 쇼핑백을 판다. 사진과 함께 A·B·C 등의 제품 상태, 대·중·소 크기별로 1만~3만원 안팎의 가격을 매겨 연락처와 함께 게시판에 올린다. 입금이 되면 단단하고 두꺼운 종이상자로 포장한 뒤 ‘절대 구부리지 마시오’ 등의 주의문까지 적어 택배로 보낸다. 주고객은 20대 여성.

인터넷에 ‘명품 쇼핑백’ 키워드를 쳐넣으면 사고판다는 글이 주르륵 뜬다. 이처럼 쇼핑백 거래가 활발한 이면에는 가격과 인격을 동일시하는 우리 세태가 숨어 있다. 쇼핑백 사용자들은 실제 명품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명품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며 스스로 명품족에 편입되는 심리적인 만족감도 갖게 된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답을 찾아서 6일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를 찾았다. 그는 수년에 걸쳐 쇼핑백을 수집해왔다.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 그의 사무실에 ‘디자인 이가스퀘어’ 대표 이병혜씨와 이 회사 고문으로 있는 디자이너 이상철씨가 합석했다.

<b>4.</b> 핀란드 탄광 예술촌의 헝겊가방. <b>5.</b>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의 기념품 가방.
4. 핀란드 탄광 예술촌의 헝겊가방. 5.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의 기념품 가방.
쇼핑백의 일상 침투
브랜드 패션·백화점
시대의 개막과 일치

이상철씨는 긴 얘기가 필요없다는 듯이 쇼핑백 하나를 꺼냈다. 신문지를 두 겹으로 접어 봉투를 만든 다음 같은 신문지를 여러 겹으로 꼬아 손잡이 끈을 붙였다. 일본 후쿠오카 근처 오바마초의 한 전병(센베이)가게에서 전병을 사고 얻은 쇼핑백이다.

“신문지 백은 물기가 없고 가벼운 전병을 담기에 적절합니다. 가게에서는 전병과 함께 정성을 담고, 그것을 산 사람들은 가게에서 집까지 가져가는 데 쓸 뿐이죠.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오로지 쓸모와 일치합니다. 그곳 할머니들이 비는 시간에 신문을 잘라 만들더군요. 에코백이라고 부르더라구요. 전병이 좋아서 사는 사람도 있고 종이백이 좋아서 전병을 산 분도 있었어요.”

쇼핑백은 내용물이 소비자의 손에 전달되는 ‘중간과정’에서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포장. 쇼핑백을 휴대한 인물이 일단 거리에 나서면 쇼핑백 외피에 표기된 브랜드의 상품이 들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불투명해서 내용물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쇼핑백의 출처가 모호해지면서 진짜 물건이 든 쇼핑백과 뒤섞여 중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병가게의 종이백에는 대부분의 쇼핑백과 달리 전병 사진이나 가게 이름, 연락처도 없다. 전병의 존재와 그 맛은 오로지 판매자와 구입자만 알 뿐이다.

“예전에는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신문지로 둘둘 말아 끈으로 묶어서 줬어요. 돼지고기를 사서 집에 가져오면 신문의 활자가 고기에 박혀 있기도 했지요. 강남 꽃가게에서 아직 신문을 활용한다고 해요. 생화는 신문지에 싸야 오래가기 때문이죠. 요즘은 대개 검은 비닐봉지로 통일됐지요.”

<b>6.</b>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의 쇼핑백. <b>7.</b> 베를린 사립미술관인 보로스센터의 기념품 백.
6.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의 쇼핑백. 7. 베를린 사립미술관인 보로스센터의 기념품 백.
그는 쇼핑백은 더도 덜도 말고 가게에서 산 물건을 집으로 옮기는 용도에서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디자인은 60년대에 끝났어요. 요즘 디자인은 아트예요. 제품에서 포장에 이르기까지 필요 없는 기능을 넣고 겉모양을 바꿔 새 제품으로 출시되죠. 디자이너는 제품의 사이클을 줄여 돈벌이에 급급한 자본가의 의도에 복무하는 집단으로 전락했어요.”

그는 쇼핑백 두 가지를 더 소개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브루노 무나리가 만든 검은색 헝겊 백과 헬베티카체 문양이 박힌 ‘오브젝티브 필름’의 검정 백. 모두 군더더기 없는 모양에 최소한의 문양이 들어 있고 헝겊으로 만들었으며 후자는 접어서 넣을 수 있게 작은 주머니를 달았다. 그는 겉모양도 중요하지만 전지구적인 자원고갈, 환경파괴 등을 고려해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한 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오카 전병가게의 신문지 가방.
일본 후쿠오카 전병가게의 신문지 가방.
명품쇼핑백 사고팔기
종이가방 하나로
부유층 된 듯한 착각

다음, 정준모씨가 자신의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그는 외국 미술관에서 기념품이나 책자를 구입하면서 딸려온 쇼핑백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 수십년 동안 그렇게 하다보니 그들의 쇼핑백에서 일정한 트렌드가 보이더라고 했다. 비영리단체라 과대포장을 않고 뮤지엄의 정체를 보여주는 선에서 디자인이 멈춰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썩는 비닐에 알파벳 뮤지엄 명칭만으로 문양을 넣거나 헝겊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쇼핑백이 실생활에 들어온 것은 브랜드 패션과 백화점의 시작과 일치한다고 본다. 80년대 양복업체 맥그리거나 댄디가 쇼핑백을 활용하면서 브랜드 이름을 각인시켰고, 신세계·롯데 등은 판촉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소비자 쪽에서는 이들 쇼핑백을 떨어질 때까지 들고 다니면서 과시욕을 충족시켰다.

“재벌 3세들이 빵집을 하는 것은 왜인지 아세요? 누가 얼마나 유명브랜드를 확보하느냐를 두고 그들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진 겁니다. 골목상권 침해와 무관합니다. 그들이 미술관을 보유하고, 명품 시계, 자동차를 수입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입니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그들의 행태를 모방하면서 그들 문화에 편입된 듯한 환각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명품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것이 전형적인 증상이죠.”

이병혜 대표가 거들었다.

“내실 없는 것들이 껍데기만 요란하지요. 과잉포장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속셈입니다. 우리나라에 성형수술이 발달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쇼핑백 매매 현상이 단순히 철부지들 사이의 행태라고 치부하기에는 내재된 원인이 심각합니다.” 그는 증상만을 두고 보더라도 비닐코팅을 하고 나일론으로 손잡이를 단 것만큼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방산시장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그곳에서는 종이, 비닐, 헝겊 등 다양한 소재의 쇼핑백이 대량생산돼 중소자영업체들이 널리 활용하고 있다. 재활용 펄프로 만들어 중저가용 제품용으로 제격이라는 것이다. 요란한 디자인을 지양하고 ‘한시적인 용기’라는 쇼핑백의 기능에 충실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쇼핑백도 물건값에 모두 포함돼요. 물론 그것만 보면 소액이지만 유사한 마케팅부문인 광고, 인테리어까지 포함시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소비자가 그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하고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죠. 이런 악순환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그렇지만 쇼핑백의 품격이 유지되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 품격 있는 소비자가 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두 사람도 수긍했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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