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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겹 벽돌담에 에워싸인 고요함, 그리고 아늑함

등록 2013-07-03 20:43수정 2014-07-01 17:08

부암동 유진이네 집에서 담은 자동차 소리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막는 동시에 가꾸고 머물고 거니는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무회건축연구소 제공
부암동 유진이네 집에서 담은 자동차 소리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막는 동시에 가꾸고 머물고 거니는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무회건축연구소 제공
[esc]살고 싶은 집
집수리 건축가 김재관씨가 마찰력만으로 벽돌 쌓아 다시 지은
서울 부암동 유진이네
언젠가 당신은 이 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북악 스카이웨이로 올라가는 굽이에서 차도 쪽으로 튀어나온 집, 시멘트 벽돌로 기하학적 배열을 이룬 담 속에 들어 있는 집이다. 무심히 쳐다보다 시선을 떼기 어려운 이 집은 지난봄 집들이를 마친 유진이네 집이다.

집은 하루 수백대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찻길 바로 앞인데다 군인 초소와 마주하고 있다. 군인들이 24시간 집 쪽을 바라보고 지켜선데다가 그 뒤편으론 서울 성곽을 걷는 산책객들도 넘겨다보기 쉽다. 3년 동안 집터를 찾았다는 유진이네가 하필 이 드센 집터에 깃들이기로 한 것은 바로 여럿의 시선 덕분에 두 딸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단다. 그러나 집은 사생활을 담는 공간이다. 혹시 유진이네 집을 알아보아도 속내를 짐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회건축연구소 김재관 소장은 10개월에 걸쳐 이 집을 겉 담과 속 담, 두 개의 담으로 둘러싸며 고쳐 지었다.

두 담이 교차하면서
바깥 소음과 시선 밀어낸다
그 담은 거실에서 끝난다
밖은 무척이나 더웠지만
고분을 닮은 거실에는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지은 지 35년 된 집의 담을 허무는 모습. 새로 짓지 않고 고쳐 살겠다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궁합이 맞았다. 무회건축연구소 제공
지은 지 35년 된 집의 담을 허무는 모습. 새로 짓지 않고 고쳐 살겠다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궁합이 맞았다. 무회건축연구소 제공

유진이네 집 대문을 찾으려면 먼저 시멘트 벽돌담을 더듬어야 한다. 얼핏 가지런한 듯하면서도 불규칙한 벽돌들의 조합이다. 한켠에선 질서정연하게 쌓아올려 외부의 침입을 막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듯하다가도 군데군데 벽돌을 빠뜨려 사람 사는 기척을 바깥으로 내보낸다. 오랫동안 집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나무들이 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담 아래 정원에 고였던 바람과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으로 오래된 집의 흔적이 내다보인다.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지었다면 이런 나무를 어떻게 만들겠어요.”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사람을 사육하는 주택과 내면의 힘을 불어넣는 집을 구분하며 “집은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기억의 장소”라고 말한 일이 있다. 이 집의 주인은 편리한 새집을 짓기보다는 기억을 간직한 집으로 고쳐 짓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은 지 35년이 지난 집은 원래는 어떤 모양이었는지 원본조차 찾기 어려웠다. 우리의 근대화처럼 대리석, 페인트 등으로 유행 따라 중산층 양옥주택의 꿈만 덧칠되어 있었다. 김재관 소장은 하필 거칠고 값싸게 보이는 시멘트 벽돌로 집의 맨 안쪽에 묻혀 있던 기억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극단적이죠. 집을 대하는 제 사고방식이 개입된 거예요. 우리는 곧잘 집 짓는 재료 자체를 집이라 착각하지만 벽돌이든 흙이든 대리석이든 집을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지 집이 아니에요. 아무리 근사한 바다 풍경을 마주하고 살아도 매일 쳐다보노라면 맹숭맹숭해지는 것처럼 어떤 특별한 재료로 짓는다 한들 다 삶 속으로 밀려들게 되어 있어요.” 그의 주장대로라면 유진이네 집은 건물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행위에 대한 반론이다. 쓸모에 맞춰 굳이 싸고
집 가운데 부엌과 식탁이 섬처럼 자리하고 있다. 부엌은 이 집의 중심 공간이면서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 있다. 무회건축연구소 제공
집 가운데 부엌과 식탁이 섬처럼 자리하고 있다. 부엌은 이 집의 중심 공간이면서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 있다. 무회건축연구소 제공

흔한 재료로 만듦으로써 몸을 낮춘 것이다. 집의 진짜 주인공인 사람, 삶을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선 집이다. “시멘트 벽돌은 때타도 괜찮잖아요. 아무 부담이 없어요. 내구성? 한 생애 안에서는 충분하죠. 그저 당대에서 지속가능한 집이면 되잖아요.”

대문을 들어서면 다시 낮은 시멘트 벽돌담이 집을 두르며 정원과 발코니를 나눈다. 높낮이를 달리하는 두개의 담이 교차하면서 밖의 소음과 시선이 멀어진다. 안쪽 담으로 한번 더 두른 덕분에 집은 마당 뒤편으로 성큼 들어앉아 한결 아늑해졌다. 오래된 키 큰 단풍나무, 갓 들어온 낮은 남천나무, 향기를 퍼뜨리는 옥잠화 더미…. 어느 곳은 풍성하고 어느 곳은 허전하다. 3세대가 사는 집 마당에서 건축가는 집의 밀도를 생각했다고 한다. 정원의 나무, 풀 하나까지 김 소장이 세세히 골라서 심었다고 한다. 옛집에서 현관으로 오르던 계단 자리를 평평하게 메우지 않고 풀이 우거진 채로 둔 것처럼 옛날 대리석 벽과 계단이 옛집의 기억을 지키고 있다. “집이 왜 한가지 맛을 주장해야 하냐. 집은 문장이 되어야 한다. 적극적이기도 절실하기도, 간결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일필휘지, 한 획으로 끝내고 싶었다”는 건축가의 말을 따라 들여다본 집 안에는 밖에서 시작된 시멘트 벽돌담이 이어져 있었다.

집 가운데 부엌과 식탁이 섬처럼 자리하고 있다. 부엌은 이 집의 중심 공간이면서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 있다. 무회건축연구소 제공
집 가운데 부엌과 식탁이 섬처럼 자리하고 있다. 부엌은 이 집의 중심 공간이면서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 있다. 무회건축연구소 제공

집 안의 맛은 더욱 복잡하다. 집 가운데 부엌과 거실이 섬처럼 떠 있는 집이다. 천장을 삼은 얇은 판 너머로 오래된 서까래와 나무들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인다. 밖에서 시작한 시멘트 벽돌담은 거실에서 끝을 맺는다. 처음엔 뜯어버릴까 하다가 옛집의 높은 천장과 새로 지은 낮은 천장 사이에 햇볕이 머물고 바람이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다곤 해도 벽지나 페인트 대신 시멘트 벽돌이 드러나는 거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말 하면 무지하게 욕먹을 텐데, 실은 고분을 염두에 뒀어요. 집은 엄정하고 고요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7월 이 집을 허물기 시작해 공사를 마친 것이 올해 4월. 기간도 길었지만 공사비용도 새로 짓는 비용의 3분의 2 정도는 들었다. 오래된 왕릉을 짓듯 여러달 동안 집안 벽을 쌓아 올렸다. 진짜 고분처럼 모르타르를 섞지 않고 벽돌의 마찰력만으로 쌓다 보니 무너지는 사고도 여러번 겪었다. “여기는 추상이 없어요. 리얼리티밖에 없어요.” 김재관 소장은 건축사무실보다는 공사 현장을 지키길 좋아한단다. 옷차림만으로는 그를 다른 인부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고분 벽을 닮은 시멘트벽돌 벽과 오래된 나무 천장, 앤티크 가구가 들어선 햇살 가득한 피아노 방이 공존하는 집은 그가 직접 등짐을 져서 성취한 추상의 세계다.

거실 양편에 놓인 침실과 아이들 방은 고분과는 사뭇 다른 화사한 분위기다. 대지 316㎡, 건물 127㎡ 면적에 감춰진 이토록 다양한 얼굴이라니. “쓸모를 생각하며 축조했더니 그 결과물이 밉지 않더라”는 것이 김재관 소장의 자평이다. 집을 지키던 유진이는 “어쨌든 흔한 파티를 열 만한 분위기의 집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한양대 건축학부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는 한 잡지 기고를 통해 “신축에서는 원해도 도달할 수 없는 빛과 바람, 공기, 소리, 냄새, 꽃, 나무가 새로운 스케일로 주위의 풍경과 관계를 이뤄가고 있다”고 평했다. 밖은 더웠지만 고분을 닮은 거실에는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화보로 보는 부암동 유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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