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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삐그덕…빈 집의 문이 열렸다

등록 2013-07-17 20:51수정 2013-07-19 10:20

공포의 극한을 노리는 폐가 체험은 이제 동호회에서 인터넷 방송으로 번져 가고 있다. 사진은 아프리카티브이 비제이 준우가 폐가체험 방송을 진행한 인천 부평의 한 폐건물.
공포의 극한을 노리는 폐가 체험은 이제 동호회에서 인터넷 방송으로 번져 가고 있다. 사진은 아프리카티브이 비제이 준우가 폐가체험 방송을 진행한 인천 부평의 한 폐건물.
[esc] 커버스토리아프리카 비제이의 폐가 체험 생방송 동행기

어두운 거리에서, 텅 빈 사무실에서 피하고 싶은 상대, 무서움. 그런데 이것을 만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 사람들이 있다.
여름만 되면 많은 이들이 공포의 쾌감에 전염된다. 자타 공인 겁쟁이 남은주 기자가 비오는 여름 밤 텅빈 폐가로 들어갔다.
어스름한 땅거미가 내려앉은 지난 13일 저녁. 인천 부평의 한 야산 아래, 쏟아붓는 빗줄기 사이로 수상쩍은 빈집 몇채가 보였다. 뾰족한 첨탑으로 교회처럼 보이는 건물은 불이라도 났던 것처럼 그을려 있다. 창문엔 유리창 대신 나무판자를 못질해 두었는데 곳곳이 부서져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바로 건너편에도 사람 키를 넘게 자란 수풀 사이로 빈 건물이 서 있다. 어린이집인 줄 알았다. 누군가 황급히 떠난 듯 바닥에는 색연필과 크레파스가 빼곡하게 널려 있었다. 문은 모조리 부서지고 벽은 세월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검게 변했지만 이상하게도 ‘착한 어린이’라는 벽에 붙인 문구는 어제 붙인 듯 선명하다. 그 옆에도 비어 있는 작은 집이 있었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이부자리며 가구 옆에 커다란 곰인형이 무심히 앉아 이쪽을 보고 있다. 창문틀엔 소금이 담긴 작은 종지가 놓여 있었다. 귀신을 쫓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 집에서 두려움을 느꼈다는 뜻이다.

언덕 아래 슈퍼마켓 주인에게 물었더니 이 건물들은 원래 고아원이었다고 했다. 20년 넘게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한 주민은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항상 비어 있었다. 고아원이었다는 소문만 들었다”고 했다.

아프리카티브이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는 비제이 준우(25)를 따라 나선 길이다. 준우는 1월부터 지금까지 혼자 캠코더 1대만 들고 괴이한 소문이 떠도는 흉가나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17곳을 찾아다니며 방송을 해 왔다고 했다. 이곳 부평의 폐가에서 기자와 같이 귀신을 불러낸다는 분신사바를 하자고 제안해 왔지만 그것만큼은 차마 할 수 없어 지켜보기로만 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교회를 닮은 폐건물로 들어섰다
‘분신사바…’ 주문을 연신 읊었다
그날밤 초자연현상은 없었지만
체험을 해온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호러를 ‘매운맛’에 빗댄다
첨엔 힘들지만 갈수록 중독된다
흉가체험은 가장 높은 등급이란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우리는 교회를 닮은 폐건물로 들어섰다. 2층 계단을 올랐다. 안에서 보니 창문마다 불에 타다 남은 듯한 검은색 커튼이 걸려 있었다. 비 오는 밤 빈집은 결코 고요하지 않았다. 똑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 끼익끼익 무언가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비명처럼 개가 짖는 소리. 동공은 커지고 흥분한 측두엽 어디쯤에선가 이 모든 소리를 예사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쉴새없이 신호를 보낸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이데 구다사이….” 정확히 밤 12시가 됐을 때 빨간 펜을 들고 비제이 준우가 주문을 외우자 촛불이 갑자기 꺼질 듯 잦아들었다. 그때 갑자기 쿵쿵쿵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으아악!”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 계단을 올라온 것은 사람이었다. 동네 주민인 듯한 그는 사정을 설명하자 말없이 돌아섰다. 여기서 뭐 하는 짓이냐고 우리를 내쫓아 주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랐지만 그가 더 놀란 듯 황급히 가버렸다.

주문은 계속되었다. “귀신이여, 여기에 계십니까?” 그의 떨리는 손이 “그렇다”는 표시로 향했다. 촛불을 노려보며 정신을 차려야겠다 버틴 지 30분, 밖의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듀스의 ‘우리는’ 노래가 절로 떠오르는 밤이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준우가 흉가를 찾아 방송을 시작한 이유는 다른 소재보다도 시청자들의 집중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겐 분신사바는 위험한 놀이로 꼽히지만 바로 그 덕분에 방송은 주목받았다. 이날도 방송이 시작할 땐 300명 정도 됐던 시청자가 분신사바를 시작하자 바로 1000명을 넘었다. 무서워하면서도 화면 앞을 떠나지 않는 시청자들의 댓글도 숨가빴다. 기자가 “그만 이곳을 떠나자”고 진행자 준우를 재촉할 때마다 “기자 짜증난다, 꺼져라”든가 “불쌍하다 그만 보내라”는 말이 화면을 가득 채웠지만 그날 밤 분신사바 놀이는 오래 계속됐다.

비록 벌벌 떠는 모습이 전국으로 생중계됐지만 그곳에서 어떤 초자연적 현상도 본 적 없음을 분명히 밝혀야겠다. 그러나 흉가·폐가를 정기적으로 찾아다니며 체험을 해온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다음카페 흉가체험(cafe.daum.net/hyunggabest) 운영자로 활동하며 8년 동안 흉가를 찾아다녔다는 신대길(27)씨는 “식스 센스, 육감은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촉감으로도 느낀 적 있어요. 강화도 한 폐교였어요. 사람들 뒤에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누가 팔을 긁는 거예요. 툭 치는 것도 아니고 손톱으로 스윽.” 누런 연기 같은 것이 끼어든 심령사진도 여러장 찍었다고 했다. “흉가에 갔을 때 귀신을 보았다는 카페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과는 다른 이상한 존재를 느낀 것이지 또렷이 본 건 아니에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들의 증언이 항상 일치한다는 거죠. 이십대 여자, 사십대 아저씨 이런 식으로요.” 흉가의 어떤 방에 가면 특별히 싸늘한 기운을 느끼거나 어지럽기도 한데 같이 간 사람들이 대체로 같은 느낌을 가진다고 했다. 일제히 전구가 터지거나 카메라가 고장나버리는 것도 그런 방이라는 것이다.

“아직 귀신을 보지 못했으므로 믿지 않는다”는 비제이 준우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폐가가 된 경기도 어린이집에서 한 자원자와 함께 방송을 했는데 어떤 방만 들어가면 화면이 끊겼죠.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자원자가 그 방에서 군인 귀신을 보았어요.” 일단 이런 소문이 나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주말이면 입소문이 난 폐건물에는 방방마다 사람들이 모이고, 줄을 서서 들어가기도 한다.

네이버의 한 카페에서 회원들이 만든 ‘대한민국 흉가체험 지도’에서 안내하는 전국 흉가는 27곳. 신대길씨가 활동하는 카페에서 비밀스럽게 흉가 체험지로 선정한 곳도 30여곳 된다. 신씨는 경기도 정신병원, 충북 제천의 한 식당, 강화도 목장 등 소문난 흉가는 대부분 가봤다고 했다. 그들은 흉가에 다녀오면 가위에 눌리거나 몸살에 걸리거나 심하면 애완견이 갑자기 죽는 흉사를 맞기 쉽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왜 흉가를 찾아다니는 것일까. 공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호러를 ‘매운맛’에 빗댄다. 처음엔 힘들지만 먹다 보면 중독되는 강렬한 자극이라는 것이다. 흉가 체험은 가장 높은 등급의 호러다.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면서도 폐가 체험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는 신대길씨도 말한다. “이건 정말 어떤 조작도 없는 공포에 대한 직접 체험이다. 가끔 옆사람이 귀신에 씐 듯 이상증세를 보이면 ‘진짜구나’ 하면서 전율한다. 또 공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특이한데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공감대를 느낀다는 것이 중요하다. 흉가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럴 땐 흉가가 사교장이 되기도 한다.”

신씨는 흉가 체험을 하기 전엔 반드시 낮에 먼저 가서 불법이나 위험 여부를 판단하고 깨진 유리 조각이나 못 등도 치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폐가에 들어가기 전엔 마음속으로라도 잠시 왔다 가겠다고 인사를 건네고 안의 물건은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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