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재기 위한 마라톤이 아니라 놀이처럼 달리는 컬러 미 래드가 한국에서도 열렸다. 사진은 7월20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컬러 미 래드 참가자들.
[esc] 라이프
한국 상륙한 달리기 축제 ‘컬러 미 래드’…알록달록 색가루 맞으며 1만4000명 참가
한국 상륙한 달리기 축제 ‘컬러 미 래드’…알록달록 색가루 맞으며 1만4000명 참가
미국서 시작된 테마 레이스
염색가루·물감 뿌리고 맞으며
5km 미니마라톤 완주
페스티벌 세대 뜨거운 호응 ‘색깔있는 달리기’가 한국으로 뛰어왔다. 지난 7월20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컬러 미 래드’(Color me Rad)가 열렸다.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한 컬러 미 래드는 파랑·분홍·주황·노랑 등의 색깔을 뒤집어쓰며 5㎞ 구간을 달리는 짧은 마라톤이다. 참가자들은 처음엔 깨끗한 하얀 옷을 입고 출발해 일정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염색 가루, 물감이 든 물총 등을 맞고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어 결승점에 도달하게 된다. 컬러 미 래드는 미국 유타주의 컬러 축제에서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컬러런’이라는 비슷한 성격의 마라톤 행사가 처음 시작되면서 색깔있는 달리기는 미국 전역과 캐나다로 번져갔다. 미국의 한 온라인 신문은 “지금 미국의 달리기는 페인트로 덮여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컬러런 활동가로 일하던 스콧 크랜들과 존, 머시 등 동네 친구 3명이 비슷한 형식으로 새로 만든 것이 컬러 미 래드다. 토요일, 7살 아이와 함께 5㎞ 마라톤, 컬러 미 래드에 참가했다. 걷기조차 생략해온 비루한 체력으로 여차하면 업고 뛰기도 어려운 몸무게 20㎏ 아이를 끌고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5㎞. 보통 속도로 걷는다면 1시간, 마라톤 대회라면 20분대에 돌파하는 거리다. 그러나 미국 컬러 미 래드 기사를 보면 참가자들 대부분은 난생처음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컬러 미 래드 누리집에서도 “뛰거나 걷거나 춤추거나 아무 상관 없다”며 “이 경기는 기록을 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못박고 있었다. 오늘은 견디거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달리는 날은 아니다. 오전 10시 출발선에 섰다. 멀리서 보니 출발선은 흥분한 바다처럼 술렁였다. 첫번째 한국 컬러 미 래드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1만4000명. 오전 9시부터 11시15분까지 15분 간격으로 10번에 나누어 출발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번에 1400명씩 스타트라인에 서는 셈이다. 마라톤 대회였다면 긴장하며 몸을 풀고 있었을 사람들이 컬러 미 래드에선 서로 색가루를 뿌리며 중학교 졸업생들처럼 들떠 있다. 잠시나마 긴장했던 게 우스웠다. 이건 대회가 아니라 클럽 스타일이다. 행사에서 나눠준 티셔츠와 선글라스는 같지만 발레 할 때 입는 튀튀를 걸치거나, 펑크 스타일의 가발을 쓴 사람들이 활개치는 퍼레이드다. 아예 영화 <배트맨>의 조커나 <스타워즈>에 나오는 다스베이더 가면을 단체로 쓰고 참가한 사람들도 있었다. 단연 눈길을 끈 사람들은 도포를 걸치고 망건을 쓴 성균관 유생 복장의 참가자들이었다. 외국인도 많았지만 원래의 머리가 무슨 색깔이든 간에 출발선에서 쉴 새 없이 뿌려지는 색가루로 모두 일찌감치 분홍색, 파란색 머리로 물들었다. 잠실 야구장 뒤편에서 출발해 올림픽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등 잠실종합운동장 안에 있는 경기장 주변을 도는 코스다. 일정한 지점마다 색깔 폭탄을 투하하는 컬러 스테이션이 있다. 처음엔 주황색. 그다음에는 분홍색, 파란색의 컬러 스테이션을 지났다. 3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가자들에게 색가루를 던졌다. 뿌려주는 색이 양에 차지 않아 아예 색가루 위에서 뒹구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어른들이 대체 왜 저지레를 하는 거냐”던 딸아이도 나중엔 색가루 포대를 들고 다른 사람들 뒤를 쫓아다녔다. 더 많은 색을, 더 많은 퍼포먼스를. 더러워질수록, 색깔이 덧입혀질수록 사람들은 분방해졌다. 춤추는 대신 달리고 걸으면서 다음 색깔을 고대한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방수 가방에 카메라를 넣어 와서 자신이 망가지는 모습을 쉴 새 없이 사진으로 찍었다. 컬러 미 래드를 만든 스콧 크랜들은 한 인터뷰에서 “사실 사람들은 페이스북에 올릴 쿨한 사진을 얻기 위해 컬러 미 래드에서 색을 뒤집어쓴다”고 말했는데, 과연 다음날 블로그와 페이스북에는 이날 자신들이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인증샷들이 수없이 올라왔다. 컬러 미 래드는 별다른 홍보 없이 에스엔에스(SNS)와 누리집만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애들처럼 장난치고 망가져보자는 유혹에 참가비 4만원을 낸 사람들 중에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많았다. 임상문(25)씨는 입대하기 전 ‘군대빵’을 해주겠다는 두 여자친구의 손에 끌려 경기장을 찾았단다. 미국 컬러 미 래드 본사에서 일하는 앨릭스 그로는 “미국과 한국 모두 여성 참가자의 비중이 75%를 넘는다”며 “음악, 춤, 밝은 색깔의 축제에 여자들이 쉽게 끌리는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 노란색 컬러 스테이션을 지나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해진 팔과 다리에 얼룩 같은 물이 흘러내렸다. 비가 오면 달리고 햇볕이 셀 땐 걸었다. 느린 조깅에 아이가 지쳐갈 무렵 결승점을 만났다. 결승점에선 완주한 사람들의 뒤풀이, ‘애프터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가수 브라이언이 디제이를 맡아 무대에 오르자 환호성이 커졌다. 뒤풀이가 끝나자 근처 거리로 알록달록한 좀비 같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선이 몰렸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화려한 색깔의 타이츠를 맞춰 입고 나온 김상아(23)씨와 두 친구는 “원래 이벤트를 좋아한다. 록페스티벌에 가기 전 몸도 풀 겸 나왔다”고 했다. 컬러 미 래드 코리아 정훈섭 운영팀장은 “페스티벌 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컬러 미 래드가 잘될 거라고 확신했다”며 “가족 단위 참가자가 많은 미국에 비해 한국은 젊은 사람들이 주로 참여해 달리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고 했다. 이런 난장이 아시아에 아예 낯선 것은 아니다. 컬러 미 래드는 서로에게 물감과 색깔 스프레이를 뿌리며 복을 빌어주는 인도의 컬러 축제와도 닮았다. 미국과 캐나다 130개 지역에서 열린 이 달리기 축제는 8월에 대만으로 간다. 한국에선 9월7일 인천, 9월14일엔 경기도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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