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주형 주택의 내부는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고쳐 집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esc] 살고 싶은 집
경기도 성남에 들어선 커뮤니티 주택 ‘태평동락’
교회는 평일 극장으로, 위층은 공동체 주택으로 꾸며
경기도 성남에 들어선 커뮤니티 주택 ‘태평동락’
교회는 평일 극장으로, 위층은 공동체 주택으로 꾸며
교회가 마을을 위해 할 일이 생겼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주민교회는 생긴 지 40년이 되는 교회다. 2011년 교회를 재건축하기로 하면서 신도들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사는 삶터로 교회를 새로 꾸밀 생각을 하게 됐다. ‘태평동락 커뮤니티’라고 이름 붙은 새 건물에서 교회는 몸을 낮췄다. 건물 대부분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살림집이고, 일터며, 모임 장소가 되었다. 얼마 전 집들이를 마친 태평동락에서 만난 주민교회 장건(62) 장로는 “이곳에 마을이 있다”고 말했다. 마을로 들어간 교회, 교회를 품은 마을, 태평동락 커뮤니티를 찾아가봤다.
지하-극장 겸 예배당
태평동락 커뮤니티는 성남시 옛 시청과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 경사진 터에 세워서 옛 시청 쪽 골목에서 보면 교회는 보이지 않는다. 반대쪽 낮은 골목에서는 1층 교회로 들어오도록 되어 있다.
먼저 낮은 곳에서 출발해보자. 오랜 교회를 헐고 다시 지으면서 굳이 맨 밑바닥 층에 엎드린 교회의 뜻은 예배당에서부터 읽힌다. 예배당 한가운데 흔히 보는 십자가가 아닌 티(T)자 모양의 타우 십자가가 걸려 있다.
“성프란치스코 아시시 수도회의 십자가입니다. 단지 예배만 드리는 교회당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개신교회와는 다른 모양의 십자가를 달았습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열리고 6일은 닫혀 있는 공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마을 극장 겸 예배당으로 씁니다. 열린 교회가 되려는 뜻에 맞게 공간의 종교적 무게를 줄일 방법을 찾았는데 마침 건축가 이일훈 선생이 타우 십자가를 달자고 제안했어요.”
울타리 낮추려 T자 십자가 단 교회
주말 늦은밤 예배당에서 영화 상영
중간층엔 사회적 기업들이 일하고
위층엔 공동체 꿈 가진 가족들 살아 장건 장로의 설명처럼 예배당은 2층짜리 소극장으로 꾸며져 있다. 소박한 제단과 벽돌벽에 비해 음향과 영사 시설은 최신식이다. 보통 교회를 신축할 때는 교인 수도 늘릴 계획을 세우지만 주민교회는 교인 150명에 맞춰 150석의 예배당을 지었다. 그나마 일주일 중 6일은 마을 것이다. 9월부턴 교회 식당에선 성폭력상담소가 ‘우리 밥상’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운영할 계획이란다. 4000원에 푸짐하고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낸다는 계획이다. 식당에 둘러선 책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한칸씩 분양할 계획이다. 지역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전시·판매하는 일본 고난다이 커뮤니티 카페의 진열장숍과 비슷한 프로젝트다. 새 성전에서 처음 한 행사는 5·18 기념행사였다. 6월에는 예배당에서 노래마을과 함께 ‘바람개비 콘서트’를 열었다. 교회는 북콘서트, 출판기념회,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포럼에 자리를 비켜주고 수요예배처럼 작은 예배는 명상예배실이라는 작은 방에서 드린다. 작은 예배실도 수시로 지역 단체 활동가들의 모임 장소가 된다. 주말밤 11시면 예배당에선 영화가 상영된다. 이웃 주민들도 오고 태평동락 위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내려와서 함께 영화를 본다. “슬리퍼 바람으로 모여서 함께 공연이나 영화를 보고, 옥상에서 늦도록 이야기하는 게 우리가 이 공간에 가진 꿈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이 커뮤니티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가꿀까, 아이디어가 나온다. 태평동락은 개인과 교회 소유지만 공유공간으로 쓰여야 할 곳”이라는 게 장건 장로의 말이다.
지상-주민들의 일터 삶터 쉼터
먹고 사는 속세의 공간은 태평동락 3층에서 본격 시작된다. 지금 3층엔 주민교회 출신 청년들이 모여 창업을 준비하는 주민상회, 성폭력 상담센터, 성남지역 기업인 이로운재단, 세무사 사무실 등이 얼마 전 이사를 마쳤다. 태평동락은 지역 기업,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 지역 예술가 등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을 위한 터전을 꿈꾼다. 4층에서 8층까지는 1~2인 가구를 위한 전용면적 16.81~38.84㎡의 원룸형 주택, 9층부터 11층까지는 50㎡ 남짓한 정주형 주택으로 채워졌다. 값싼 임대료에 문화공간까지 갖춘 덕분에 원룸 임대는 이미 꽉 찼다. 플로리스트, 기자, 연구원 등 입주자들은 다양하지만 입주할 때 “태평동락 동아리 활동 하나씩은 해야 한다”는 당부를 듣는 것은 매한가지다.
보통 주상복합 건물의 신축비용은 임대로 충당된다. 모든 층을 원룸형으로 만들었으면 100가구 임대료로 교회 수익이 커졌겠지만 굳이 정주형 주택을 택하면서 78가구로 줄어들었다. “원룸만 있으면 고시원 같은 건물이 되고 살아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거죠. 우리가 생각한 도시형 생활공동체를 가꾸려면 가족이 들어와야겠더라고요. 태평동락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나설 사람들, 도시 생명공동체를 위한 전위부대가 될 사람들이에요.” 장건 장로 자신도 10층에 산다. 11층에 사는 최인순(42)씨는 남편, 아이 셋과 함께 지난 6월7일 태평동락으로 이사 왔다. 이사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옥상 텃밭에 씨 뿌리고 틈틈이 이웃들과 나눠 먹는 일이었다. 옥상 지붕은 흙으로 덮고 곳곳에 텃밭 자리를 만들어두었다. 더울 땐 문 열어 놓고 살며 반상회처럼 회의도 자주 한다. 최인순씨 집을 들여다보니 베란다 공간을 이용해 방을 셋 만들고 환기가 잘되도록 안방과 주방이 마주보고 있다. 집은 넓지 않지만 지을 때 수납 공간, 주방 모양, 방 구조까지 세대들 각각의 요청대로 맞춤형처럼 만들어졌단다. 협동조합 주택의 경험을 나눠 받은 덕이다. 태평동락을 지은 사람들은 서울 마포 협동조합주택인 소행주를 지은 ㈜자담건설이다.
“이 건물은 건축적 요소보다도 짓는 방식이 의미심장했다. 지역 신용협동조합, 교회, 건설사, 입주자들이 모두 조금씩 양보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입주하기 전에 지역 신협이 미리 대출하고, 입주자들이 미리 돈을 냈다. 건설사도 돈을 나중에 받기로 하고 일을 했다. 기존 도시형 생활주택 시장에는 선분양 아니면 후분양밖엔 없었는데 공급방식이 전혀 달랐다.” 자담건설 류현수 대표는 “개발 주체들이 적정 이윤을 지키는 방법으로 태어난 태평동락의 재건축 방식은 도시 재생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평동락 옥상에선 1970~80년대 서울 개발 바람에 밀려난 사람들이 지은 집들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오르지 않는 집값만 쳐다보다 낡아가는 도심 건물들을 재생하는 방법은 공동체적 개발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태평동락은 아직 분양중이다. 78가구 중 22가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교회는 4층 원룸주택 6채를 사들였다. 게스트하우스라 이름 붙인 이곳엔 살 곳이 없었던 청년들이 살고 있었다. 살 곳이 필요해 교회를 찾아드는 지역 주민들에게 수시로 빌려줄 계획이다. 이곳은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이 함께 사는 마을의 축소판이다. 지역 주민들을 향한 교회의 통성기도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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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주형 주택의 내부는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고쳐 집마다 다르게 지어졌다.
주말 늦은밤 예배당에서 영화 상영
중간층엔 사회적 기업들이 일하고
위층엔 공동체 꿈 가진 가족들 살아 장건 장로의 설명처럼 예배당은 2층짜리 소극장으로 꾸며져 있다. 소박한 제단과 벽돌벽에 비해 음향과 영사 시설은 최신식이다. 보통 교회를 신축할 때는 교인 수도 늘릴 계획을 세우지만 주민교회는 교인 150명에 맞춰 150석의 예배당을 지었다. 그나마 일주일 중 6일은 마을 것이다. 9월부턴 교회 식당에선 성폭력상담소가 ‘우리 밥상’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운영할 계획이란다. 4000원에 푸짐하고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낸다는 계획이다. 식당에 둘러선 책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한칸씩 분양할 계획이다. 지역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전시·판매하는 일본 고난다이 커뮤니티 카페의 진열장숍과 비슷한 프로젝트다. 새 성전에서 처음 한 행사는 5·18 기념행사였다. 6월에는 예배당에서 노래마을과 함께 ‘바람개비 콘서트’를 열었다. 교회는 북콘서트, 출판기념회,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포럼에 자리를 비켜주고 수요예배처럼 작은 예배는 명상예배실이라는 작은 방에서 드린다. 작은 예배실도 수시로 지역 단체 활동가들의 모임 장소가 된다. 주말밤 11시면 예배당에선 영화가 상영된다. 이웃 주민들도 오고 태평동락 위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내려와서 함께 영화를 본다. “슬리퍼 바람으로 모여서 함께 공연이나 영화를 보고, 옥상에서 늦도록 이야기하는 게 우리가 이 공간에 가진 꿈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이 커뮤니티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가꿀까, 아이디어가 나온다. 태평동락은 개인과 교회 소유지만 공유공간으로 쓰여야 할 곳”이라는 게 장건 장로의 말이다.
3. 태평동락 1층에 자리한 주민교회 예배당.
4. 12층 옥상에는 입주자들이 함께 가꾸는 텃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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