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이면 홍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앞에서 목연포차를 여는 유목연씨와 본격 이동형 목연포차를 알리는 포스터.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sc] 라이프
넘치는 메뉴, 대용량 시대를 거부하는 좌판 ‘목연포차’와 ‘개인주의 야채가게’ 연 젊은 예술가들
넘치는 메뉴, 대용량 시대를 거부하는 좌판 ‘목연포차’와 ‘개인주의 야채가게’ 연 젊은 예술가들
요즘 서울 홍익대 앞에는 이상한 좌판이 열린다. 현란한 입간판과 갖가지 메뉴를 내세운 푸드 트럭이 경쟁하는 거리 한편에서 술 한 잔씩 파는 ‘목연포차’와 당근 반 개도 파는 ‘개인주의 야채가게’다.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하는 예술 프로젝트 ‘소액다컴’의 후원을 받은 사람들이 여는 작은 좌판을 찾았다.
유목형 선술집 ‘목연포차’
10월5일 토요일, 저녁 6시가 되자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 차려진 목연포차에 등이 밝혀졌다. 밤이 좀더 깊어지면 목연포차에서는 가수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나 1980~90년대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보통 포장마차의 3분의 1이나 될까. 대형마트에서 쓰는 쇼핑카트 위에 새집처럼 생긴 나무로 만든 좌판을 얹은 미니 포장마차다. 영업준비를 마친 주인이 접힌 좌판을 펼치자 높이 180㎝에 가로 80㎝ 정도 되는, 3~4명이 서서 두런거리며 술을 마실 정도의 자리가 나왔다.
주종 관계없이
술 1잔+안주=1000원 혼자 먹을 찌개
야채 한 묶음 1200원
사진 설치작가 유목연(35)씨가 차린 ‘목연포차’에선 맥주든, 소주든, 와인이든 모두 한 잔에 500원이다. 요즘 가장 인기있는 술은 소주와 자몽을 섞은 ‘정글 주스’라는 이름의 폭탄주다. 안주도 500원이다. 단 메뉴는 그날그날 주인 마음대로다. 마른안주를 낼 때도 있고, 달걀 프라이를 부쳐줄 때도 있고 요즘처럼 날이 쌀쌀할 땐 정종 한 잔에다 번데기탕을 준비한단다. ‘술 1잔+안주=1000원’을 내세운 이 포장마차를 그렇다고 놀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술 한잔 하고 가세요. 목연포차입니다.” 주인은 있는 힘껏 손님을 부르고 노래를 튼다. 어디까지나 생계형이다. 재료가 떨어져야 문을 닫는 목연포차의 ‘호객 행위’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처음 갤러리에서 길거리로 나올 때는 쪽팔렸어요. 발가벗은 느낌이었죠.” 홍대 앞에선 장사 5일째지만 유씨가 처음 포장마차를 차린 것은 작년 12월. 처음엔 관객을 손님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로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 전시공간에 포장마차를 설치했다. 그러다 춘천 마임 페스티벌, 안산 거리축제 등 축제가 열리는 곳이면 포장마차를 끌고 나섰다. 10월7일부터는 ‘을지로 르네상스’라는 거리 프로젝트에 맞춰 세운상가에서도 포장마차 영업을 하고 있다. 12일 서울 선유도공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도 포장마차를 끌고 간다. 목연포차는 전국을 쏘다니는 유목형 포장마차다.
을지로 공구상가를 돌며 마련한 자재들로 작가가 직접 포장마차를 만드는 데 든 돈은 단돈 20만원. 아는 사람들이 몰려올 땐 20만원, 적을 땐 2만원. 포장마차 매상은 들쑥날쑥하지만 대신 이야기는 풍부하다는 게 작가의 자랑이다. “낮에는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작가니까 누군가 제 작품을 사주거나 가치를 알아봐주면 날아갈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으니까요. 또 혼자 돌아다니며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물에 렌즈를 들이대고 있노라면 몹시 고독하죠. 밤에 이렇게 포장마차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들고 달걀 프라이 하나에 고마워하니까 훨씬 행복하죠.” “스스로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게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유 작가는 손님이 찾아들면 신명을 낸다.
목연포차의 장점은 깨알같은 서비스에 있다. 500원짜리 안주만으로 헛헛해하는 손님에게 주인은 파인애플 한 조각, 사과 한 조각, 방울 토마토 한 알 등을 종이컵에 모은 과일 안주를 비장의 서비스로 낸다. 갑자기 담배를 찾는 손님에겐 포차 한편에 꽂아둔 가치담배를, 입이 심심한 사람들에겐 막대 사탕을 건넨다. 거리 영업 10개월 새 낯가림을 쫓아버린 주인의 입담은 덤이다.
“장사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생각했어요. 요즘은 홍대 거리가 이야깃거리는 없고 소비만 있는 빈 깡통 같다고들 해요. 그래도 누군가 이 거리에 있던 이상한 포장마차를 가끔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유목연 작가의 꿈은 목연포차를 누군가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란다. 모양도 색도 다른 여러 대의 1인용 포장마차가 거리에 생겨나길 바란다고 했다. 홍대 앞 목연포차는 매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문을 연다.
1인 식탁 위한 ‘개인주의 야채가게’ 다음날 일요일 다시 찾은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선 장을 보았다. 양배추 4분의 1개, 풋고추 2개, 대파 한 뿌리를 샀다. 한번 찌개를 끓이는 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양이다. 이렇게 사고도 1050원. ‘개인주의 야채가게’ 주인은 50원을 깎아줬다. 7월26일부터 ‘대용량 시대를 살아가는 소규모 청춘들을 위해’ 이곳에서 채소가게를 연 사람은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한 유재인(28)씨다. 유씨는 매주 화·목요일은 오후 6시, 일요일엔 낮 1시에 사온 채소들을 좌판에 부려놓는다. 근처 시장과 동네 과일가게에서 사온 것들이다. 고추와 마늘은 부모님이 가꾸는 텃밭에서 부모님 몰래 조달한다. 마늘 한 알에 50원, 대파 한 뿌리에 250원이다. 바나나, 브로콜리, 당근은 잘라서 판다. 대파, 양파가 한 뿌리씩, 고추 2개, 마늘 4알이 든 ‘뭐든지 키트’를 1200원에 사면 찌개든 조림이든 뭐든지 만들 수 있다. 채소가게 주인은 채소가 실려갈 단출한 식탁을 상상했다. “우리 세대에 대한 비난, 비판 이런 것들은 많잖아요. 근성이 없다거나 미리 포기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에 대한 항변이기도 해요. 우리끼리 잘 챙기고 나눠 살 수 있다는 거죠. 이기주의, 개인적이라고들도 하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교육환경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일탈하겠어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심지어 을도 못 되면서 살아도 한끼 밥만큼은 싱싱하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건네는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고요.” 개인주의 야채가게는 “자취방에서, 작업실에서 썩은 대파를 골라내면서 혼자 생각했던 거고 진짜 했을 때 수요가 있을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지, 필요한 일인지 궁금했다”는 유재인씨가 박리다매 시장에 던지는 질문이며 실험이다. 유재인씨가 영업을 시작한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해온 장부를 훔쳐보니 지금까지 총매출은 24만5000원. 유씨는 11월3일까지 100일 동안 영업할 생각이다. “돈 못 버는 일에 이만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술가밖에 없죠. 100일은 이런 곳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홍보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100일 뒤 개인주의 야채가게는 문을 닫아도 이런 가게는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재래시장에 1인용 채소를 파는 가게를 넣어달라고 서울시에 청원해야 하나 고민중이에요.” 유 작가는 개인주의 야채가게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yacheguail)에서 매일 그날의 가게 이야기를 전한다. 장사나 해볼까, 고민하는 사람은 많다. 정작 필요한 장사는 많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두 작가의 장사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리는 소소한 좌판들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술 1잔+안주=1000원 혼자 먹을 찌개
야채 한 묶음 1200원
토요일 저녁이면 홍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앞에서 목연포차를 여는 유목연씨와 본격 이동형 목연포차를 알리는 포스터.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혼자 사는 사람들의 밥을 챙기는 ‘개인주의 야채가게’와 주인 유재인씨. 좌판 옆엔 ‘필요한 만큼만 낱개로 사는 개인주의 야채가게’를 알리는 간판이 서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인 식탁 위한 ‘개인주의 야채가게’ 다음날 일요일 다시 찾은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선 장을 보았다. 양배추 4분의 1개, 풋고추 2개, 대파 한 뿌리를 샀다. 한번 찌개를 끓이는 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양이다. 이렇게 사고도 1050원. ‘개인주의 야채가게’ 주인은 50원을 깎아줬다. 7월26일부터 ‘대용량 시대를 살아가는 소규모 청춘들을 위해’ 이곳에서 채소가게를 연 사람은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한 유재인(28)씨다. 유씨는 매주 화·목요일은 오후 6시, 일요일엔 낮 1시에 사온 채소들을 좌판에 부려놓는다. 근처 시장과 동네 과일가게에서 사온 것들이다. 고추와 마늘은 부모님이 가꾸는 텃밭에서 부모님 몰래 조달한다. 마늘 한 알에 50원, 대파 한 뿌리에 250원이다. 바나나, 브로콜리, 당근은 잘라서 판다. 대파, 양파가 한 뿌리씩, 고추 2개, 마늘 4알이 든 ‘뭐든지 키트’를 1200원에 사면 찌개든 조림이든 뭐든지 만들 수 있다. 채소가게 주인은 채소가 실려갈 단출한 식탁을 상상했다. “우리 세대에 대한 비난, 비판 이런 것들은 많잖아요. 근성이 없다거나 미리 포기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에 대한 항변이기도 해요. 우리끼리 잘 챙기고 나눠 살 수 있다는 거죠. 이기주의, 개인적이라고들도 하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교육환경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일탈하겠어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심지어 을도 못 되면서 살아도 한끼 밥만큼은 싱싱하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건네는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고요.” 개인주의 야채가게는 “자취방에서, 작업실에서 썩은 대파를 골라내면서 혼자 생각했던 거고 진짜 했을 때 수요가 있을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지, 필요한 일인지 궁금했다”는 유재인씨가 박리다매 시장에 던지는 질문이며 실험이다. 유재인씨가 영업을 시작한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해온 장부를 훔쳐보니 지금까지 총매출은 24만5000원. 유씨는 11월3일까지 100일 동안 영업할 생각이다. “돈 못 버는 일에 이만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술가밖에 없죠. 100일은 이런 곳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홍보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100일 뒤 개인주의 야채가게는 문을 닫아도 이런 가게는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재래시장에 1인용 채소를 파는 가게를 넣어달라고 서울시에 청원해야 하나 고민중이에요.” 유 작가는 개인주의 야채가게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yacheguail)에서 매일 그날의 가게 이야기를 전한다. 장사나 해볼까, 고민하는 사람은 많다. 정작 필요한 장사는 많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두 작가의 장사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리는 소소한 좌판들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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