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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좀 씹는다는 사람 다 모였다

등록 2013-10-23 15:22

‘2013 왓따 풍선껌 크게 불기 챔피언십’ 대회에 100명이 참가해 12시간 넘게 풍선껌을 불었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양철민군.
‘2013 왓따 풍선껌 크게 불기 챔피언십’ 대회에 100명이 참가해 12시간 넘게 풍선껌을 불었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양철민군.
‘왓따 풍선껌 크게 불기 챔피언십’
풍선 터지는 소리에 곳곳서 탄식이
대회 참가자와 관중, 200명 모두 하루 종일 껌을 씹었다. 내가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빵 터지곤 했다. ‘2013 왓따 풍선껌 크게 불기 챔피언십’ 대회가 지난 10월13일 서울 청담동 엠큐브에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이 대회에 응모한 사람들은 모두 186명. 동영상과 서류 심사를 거쳐 본선에 온 100명 참가자는 적게는 8살부터 많게는 55살까지 연령도 다양했다. 그야말로 장안의 껌 좀 씹는 사람들은 다 모인 분위기다. 이상한 대회다. 1개 100원짜리 아이들의 장난감인 풍선껌을 누가 크게 부는지 가리기 위해 선수 옆에는 심판과 진행요원이 엄숙한 표정으로 지켜섰고, 지름을 재는 자는 물론 초고속 카메라까지 동원됐다. 개그맨 유상무와 신인연기자 서은경이 진행을, 그동안 주로 게임중계를 해온 성승헌 캐스터와 이승원 해설위원이 대회 해설을 맡아 참가자들이 껌 씹는 것부터 풍선을 불어올리는 모습까지 자세히 중계했다.

풍선껌은 씹을수록 탄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대부분 대회가 시작하는 아침 9시 전부터 껌을 씹으면서 전열을 다지는 분위기였다. 결국 누가 크게 부는지가 승패를 가르는 이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1개는 풍선이 너무 작고 3개는 턱이 아프기 때문에 2개가 적당하다”며 껌 2개씩을 씹으며 입을 풀었다.

이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다. 세계 기네스 기록에서 찾아보니 2012년 미국 시애틀에서 536명이 모였던 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풍선껌을 불었던 기록이라는데 한국 무대에 오른 100명은 숫자는 그만 못해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다. 8살 딸을 데리고 대회에 참여한 한성진씨 부부, 초등학교 어린이 댄스팀 ‘슈파 키즈’, 고등학교 안무팀 ‘에스 스타’ 등이 오르는 무대는 대회라기보다 장기자랑 분위기였다. 그러나 본선 참가자 100명 중 88명이 떨어지고 12명만 남자,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풍선껌 크게 불기 대회는 이 12명과 작년 대회 참가자 상위권 4명이 합쳐 16강에 도전했다.

저마다 꼭 우승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윤현균(27)씨는 셋방살이 설움을 껌으로 탈출하려고 대회에 왔다. 대회 1등은 700만원을 상금으로 받게 된다. 풍선껌 부는 동영상으로 다음팟에서 조회수 2800회를 넘긴 김운성(15)군, 6살부터 풍선껌을 씹기 시작해 사각턱이 되었다는 김선남(44)씨, 울산에서 대회를 위해 3일 전에 올라와 현지적응 훈련을 마쳤다는 양철민(16)군 등 16강 출연자들은 쟁쟁했다. 권형민(22)씨는 지난해 아이돌 그룹 이세븐(E7) 멤버로 얼굴을 알리라며 소속사에서 등을 떠밀어 대회에 참여했다가 얼떨결에 우승을 차지했단다. 작년 우승자 자격으로 16강전에 온 그는 “올해는 분위기가 장난 아니다. 살벌하다”고 말했다. 16강전은 풍선을 크게 불 뿐만 아니라 적어도 3초 이상 터지지 않아야 기록으로 인정됐다. 참가자들의 얼굴에서 풍선이 터질 때마다 대회장엔 탄식이 커졌다. 참가자들이 기록 도전에 성공하면 해설자들은 “폐가 싱싱해 보인다” “리드미컬한 껌씹기”라며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칭찬했다.

대기실에서 만난 진행자 유상무씨는 “피시방을 운영하다 보니 게임의 진지함을 안다. 남들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게임에 빠진 당사자들은 정말 열받고 흥분된다는 걸 안다. 난 이 대회, 스포츠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승원 해설위원도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하고 싶었다. 풍선껌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전달하고 싶어 준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는 풍선을 일찍 터뜨리는 실축을 범하는 선수들에게 “일정한 중압도를 유지해야 하며 들숨과 날숨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당부를 계속 날렸다. 성승헌 캐스터는 한술 더 떠 왼턱잡이(왼쪽으로 껌을 씹는 선수)와 양턱잡이(양쪽으로 껌을 씹는 선수)의 대결을 손에 땀을 쥐며 중계한다. “이것은 고도의 저작력이 요구되는 멘탈 스포츠”라는 해설자들의 껌 씹는 소리와도 비슷한 찬사가 높아질 무렵 우승 후보는 몇명으로 추려졌다. 해설자들은 일찌감치 “평소 풍선껌을 꾸준하게 씹어왔다”는 전직 경호원 김웅필(25)씨와 “승부 근성이 강하고 경기 경험이 풍부한” 지난해 우승자 권형민씨를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쳤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예측불허의 대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맞아들어갔다. 대회가 시작한 지 12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단물이 빠진 지 오랜 껌은 이미 질겨졌다. 게다가 8강전에서 2개, 4개, 6개 한꺼번에 씹기를 거치며 참가자들은 눈에 띄게 지쳤다. 권형민씨도 4강의 문턱을 오르지 못했다. 무대 뒤편에서 만난 김웅필씨는 “살면서 체력이 달려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준우승전에서 ‘인간 펌프’ 김웅필씨와 ‘울산 바위’ 양철민군의 대결 결과 우승은 ‘젊은 폐’ 양철민군에게 돌아갔다. 이날 양철민군은 지름 274.9㎜ 크기의 풍선을 불었다. 이날의 대회는 케이블티브이 채널 온게임넷에서 11월1일, 8일, 15일 오후 5시에 3차례에 걸쳐 방송될 예정이다.

풍선껌 시장 주요 고객은 십대들이다. 껌 기본 재료인 치클과 천연고무 중에서 분자량이 큰 고무성분을 많이 사용해서 크기를 늘린다. 껌이 커야 풍선도 크다. 보통 일반껌들이 3g 정도인데 이날 사용한 왓따 껌은 4.6g. 풍선껌의 고향인 미국엔 7g 되는 껌도 흔하단다. 충치를 막는 껌, 졸음을 막는 껌 등 기능성 껌들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해마다 풍선껌 시장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왔다. 작아진 풍선껌 시장을 부풀리기 위해 이색 대회가 동원된 셈이다. 어쨌거나 이날 보통 사람들이 쉽게 달성하지 못할 기록을 낸 이들은 달인이다. 평소 하루에 20~30통 껌을 씹고 윗분들에게도 껌을 씹으면서 보고한다는 롯데제과 중앙연구소 전진경 부장도 이날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전 부장은 “내 기록은 5~8㎝ 정도인데, 우승자 기록에 놀랐다. 나는 풍선 두개씩 겹쳐 불기를 할 줄 아는데, 유튜브로 보니 3개씩 겹쳐 부는 사람도 많더라”고 했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았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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