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화를 앞둔 아이디어 상품들. 1 요리를 나눠 담는뷔페식 접시 ‘곰발바닥’. 2 필기도구 휴대고리 ‘스마트폰 꼬잉’. 3 조립형 전원 장치 ‘모듈형 멀티탭’. 4 네발달린 ‘입체형 포크’. 5 손가락 장갑을 붙인 ‘식중독 예방 과자봉지’. 6 동전을 던져 넣는 ‘퐁당 저금통’. 7 쓰레기봉투 보조도구 ‘꾹꾹이’. 8 바퀴가 달린 벨트를 두른 ‘캐리어 이동 장치’. 특허청·창업진흥원 제공
[매거진 esc] 라이프
10대부터 80대까지 아마추어 발명가들의 기발한 상상 경쟁터 ‘서울시민 발명경진대회’와 ‘아이디어 오디션 대회’
10대부터 80대까지 아마추어 발명가들의 기발한 상상 경쟁터 ‘서울시민 발명경진대회’와 ‘아이디어 오디션 대회’
“그냥 해보는 거지.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보는 거지.” 만화 <무한동력>에서 ‘집념의 괴짜 발명가’로 알려진 하숙집 주인 아저씨가 한 말이다. 고철을 마당에 가득 쌓아두고 언젠가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무한동력 영구기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20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주인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있었다. ‘서울시민 발명경진대회’와 ‘아이디어 오디션 대회’ 등 발명대회에서는 생활인들의 발명의 꿈이 무르익는다.
서울시민 발명경진대회
누군가에겐 직업이고 누군가에겐 공상이다. 에디슨은 “나는 결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발명을 하지 않았다. 내가 낸 아이디어는 모두 일하다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지만 손으로 만드는 일과 유리된 우리 생활에는 발명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그래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궁리했나 보다. 지난 7월 특허청에서 연 ‘서울시민 발명경진대회’에는 8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뽑힌 10개 아이디어는 자동청소기, 멀티탭, 배달음식 포장용기 등 ‘생활 밀착형’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기술을 가진 발명품보다는 허를 찌르는 아이디어가 빛난다. 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내놓은 것은 ‘식중독을 예방하는 과자 봉지’. 과자 봉지에 비닐로 만든 손가락 장갑을 붙여서 봉지를 뜯으면 손가락에 장갑이 씌워지도록 한 것이다. 과자를 먹을 때 손에 과자 부스러기가 묻지 않게 한 아이디어다. ‘모듈형 멀티탭’은 전원만 꽂을 수 있었던 기존 멀티탭이 진화한 모양새다. 유에스비(USB), 콘센트, 휴대폰 충전기를 각각 모듈화해서 블록 끼우듯 필요한 모듈만 조합해 쓸 수 있다. 입체포크는 우리가 쓰는 포크가 발이 두개 달린 일자형 포크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광고회사 마케터로 일하는 정진(32)씨는 이 대회에서 ‘캐리어 이동장치’로 우수상을 받았다. 정씨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가는 곳마다 계단이 무거워서 캐리어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었다. 어느 계단이든 손잡이는 있길래 이것저것 궁리해봤다”고 말했다. 처음엔 우산을 캐리어에 묶었다. 계단 손잡이에 우산 손잡이를 거니까 계단 내려올 때는 간편했는데 들고 올라가기는 여러가지로 불편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바퀴가 달린 캐리어 벨트다. 이 벨트를 캐리어 옆면에 묶으면 캐리어는 벽을 바퀴로 밀면서 올라가게 된다. 정씨의 취미는 특허 받기다. 지금까지 받은 특허와 상표가 7개. 목표는 특허 40개를 받는 것이고 언젠가는 그 아이디어를 자산 삼아 창업을 하는 것이란다. “사업계획서 써둔 것도 10개는 넘지만 지금은 다 취미로 하는 거고 특허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남들이 몰랐던 걸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는 게 정진씨 말이다.
특허청에서 꼽아보니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특허 출원 건수는 14만2836건인데, 이 중에 개인이 신청한 것은 2만7203건으로 19%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 특허로 인정받은 건수도 1만7016건이다.
서울시민 발명경진대회에 뽑힌 아이디어 10개는 특허출원을 해주고, 기업체에 기술 이전을 하거나 직접 창업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기관이 돕는단다. 장롱 속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의의를 두는 셈이다.
국민창업 프로젝트 아이디어 오디션
이보다 앞서 시작한 아이디어 오디션도 발명 아이디어를 햇빛 속으로 끌어냈다. 중소기업청에서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아이디어 오디션 누리집(ideaaudition.com/)에 자신이 생각한 발명 아이디어를 올리고 네티즌 평가와 전문가 평가까지 통과하면 지식재산권을 출원하고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최종 관문인 소비자 평가까지 넘어서면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게 된다.
발명에도 트렌드가 있다면 지금 트렌드는 ‘소셜 발명’이다. 미국 퀄키(www.quirky.com)나 노르웨이 유니키아(unikia.com/) 등은 일반인들의 발명 아이디어를 가지고 토론과 검증을 거쳐 제품으로 만들어 판다. 미국 내에서는 20만명의 회원 수를 보유한 퀼키는 아이디어를 가진 개미들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아이디어 오디션 누리집에도 발명 아이디어를 올리면 회원들이 이 아이디어가 쓸 만한지,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댓글 토론이 시작된다.
아이디어 오디션에서 ‘신군’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는 신관희(22)씨는 여러 음식을 나눠 담는 뷔페 접시를 생각해냈다. 이 아이디어를 보고 닉네임 ‘X맨’이 다시 여러개의 그릇을 끼우는 접시를 만들었다. ‘곰발바닥’이라 이름붙여진 이 접시는 한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에 팔려 5억원을 받았다. 애초 아이디어를 제공한 신군과 X맨은 상품 개발과 유통에 드는 비용을 빼고 5%씩 수익을 나눠 받게 됐다. 발명도 협업중이다. 신관희씨는 곰발 접시 말고도 어머니와 함께 개발한 다용도 드라이버, 다른 회원과 개발한 패션이(e)팔찌 등을 누리집에 올렸다.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신씨는 지금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하며 발명가로 먹고살게 되는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식당을 경영하는 김성열(41)씨는 쓰레기를 봉투에 담을 때마다 누르기가 힘들어서 쓰레기봉투 보조도구인 ‘꾹꾹이’를 만들었다. 커다란 책받침처럼 생긴 이 도구는 동그랗게 말아 봉투 안에 넣으면 쓰레기통처럼 봉투를 세울 수 있고, 안 쓸 땐 펴서 틈새에 끼워둘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꾹꾹이도 시장판매를 앞두고 있다. 김씨의 취미는 틈나는 대로 특허청 누리집에서 특허가 나온 물건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사물을 계속 바라보면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특허청에서 찾아보면 대부분 누군가 그런 생각을 벌써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해냈다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아이디어 오디션 누리집에선 쓰레기봉투 보조도구 말고도 동전을 던져 넣기만 하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퐁당 저금통’, 지갑 속에 넣은 채로 무슨 카드인지를 쉽게 볼 수 있는 ‘카드 라벨 스티커’ 등을 판매하고 있다. 모두 아이디어 오디션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누군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발명품도 많다. 고등학교 3학년 강혜빈양은 열쇠고리처럼 스마트폰이나 노트에 필기도구를 걸 수 있는 ‘스마트폰 꼬잉’을 만들었다. 디지털 터치펜을 휴대폰에 걸고 다니고 싶어 열쇠고리하고 고무로 된 머리끈을 붙여서 만들었단다. 86세의 조윤희씨는 인터넷도 할 줄 모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그려서 팩스로 아이디어 오디션에 보낸다. 특허 2개를 받고 2개를 더 출원중이라는 조씨는 경기도 성남 분당의 지하방에 살면서 자전거 기어며 프라이팬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고치고 새로 만든단다. 도구가 없을 땐 종이에라도.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9 ‘스마트폰 꼬잉’의 설계도. 특허청·창업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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