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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톱디자이너, 시동은 걸렸다

등록 2014-07-23 18:57수정 2014-07-24 10:06

티백 조은애 대표
티백 조은애 대표
[매거진 esc] 스타일
패션코드 2014 현장에서 만난 주목할 만한 신진 디자이너 3인 인터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주관한 ‘패션코드 2014’가 지난 18일 막을 내렸다. 지난해 가을, 서울패션위크 기간과 겹친데다 준비가 미흡해 주목받지 못했던 1회 행사와는 달리 올해는 행사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120개의 국내 브랜드와 580여명의 국내외 패션·유통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한 이번 행사에서 여성복, 남성복, 가방 및 액세서리 세 분야의 가장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하나씩 꼽아봤다.

프린트의 우아한 변신 티백 조은애 대표

“하루빨리 옷을 만들고 싶다.” 조은애(33)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조바심이 났다고 한다. 연세대 의류학과에 입학해 생활디자인학과를 복수전공했다. 졸업식 다음날부터 아이디룩, 한섬 등 국내 브랜드에서 옷을 만들었다. 큰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은 특권과 한계가 분명했다. 옷을 만드는 노하우를 빨리 배울 수 있었지만 각 단계가 세분화돼 ‘내가 원하는 옷’만 만들 수는 없었다. 선임디자이너였던 2010년, 사표를 냈다. 좀더 ‘소소한 옷’에 집중하는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사진 ‘2014 패션코드’, 각 회사 제공
사진 ‘2014 패션코드’, 각 회사 제공
평소 사진찍기와 낙서하길 좋아하는 조 대표는 “부드러운 느낌의 프린트가 들어간 블라우스와 원피스”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를 구상했다. 서울시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3기로 들어가 창업 지원을 받아 2011년 3월 패션기업 ‘투앤드’를 설립하고 첫번째 브랜드인 ‘티백’(ti:baeg)을 론칭했다. “맑은 물에 좋은 티백 하나 넣으면 멋진 차가 되듯” 옷 하나로 입는 이를 돋보이게 하고 싶다는 뜻이다.

직접 찍은 사진과 손으로 그린 그림이 재료가 됐다. “원피스에 들어간 꽃 프린트는 제가 싱가포르를 여행할 때 찍은 사진에서 따왔어요. 프린트가 들어간 옷은 투박하다고 느끼기 쉬운데 ‘티백’은 시폰 소재의 셔링(주름 장식) 위에 전판 프린트를 한다거나 프린트 위에 옷감을 겹치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표현하죠.”

브랜드 론칭 초반부터 ‘티백’은 백화점 팝업 스토어에 진열됐다.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절반 이상이 실력이었다. 실력은 국외에서도 드러났다. 이번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트레이드 패션전인 ‘2015 S/S 후즈 넥스트 파리’에서 그가 만든 래미네이트 소재의 프린트 상의가 행사 공식 유니폼으로 선정됐다. 행사가 열린 4일 동안 120여명의 남녀 스태프가 모두 ‘티백’의 옷을 입었다.(사진)

3년 새 직원도 7명으로 늘었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단독 매장도 있다. ‘티백’보다 더 캐주얼한 느낌인 두번째 브랜드 ‘이티’(IT TI)를 내놨고 좀더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지향하는 ‘티백 9510’을 준비 중이다. “10년 넘게 가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립 3~5년 사이가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당분간 브랜드의 뼈대가 될 디자인을 다양화하고 그 디자인을 알리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프린트 강조한 조은애 디자이너 작
파리 패션전 유니폼으로 선정

남성복 전문 바스통 기남해씨
왁스코튼 이용한 소재에 집중

사용목적에 맞는 가방을 고민
기어쓰리 박미선 대표

바스통 기남해 대표
바스통 기남해 대표
대를 이을 남자의 재킷 바스통 기남해 대표

기남해(35) 대표는 4년을 투자해 가벼운 재킷부터 겨울 점퍼까지 남성 외투 7개 기본 모델을 완성했다. 2011년 남성 아우터 브랜드 ‘바스통’(bastong)을 론칭한 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담아 완벽한 아우터를 만들어보자”며 자기와의 싸움을 해왔다고 한다. 기 대표는 “변화무쌍한 여성복과 달리 남성복은 5㎜의 싸움이기에 그만큼 디자인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도 크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은 국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2012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남성복 전문 수주 박람회인 ‘피티 우오모’(Pitti Uomo)에 참여했다가 현지 언론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가 꼽은 ‘가장 주목할 만한 브랜드 베스트 5’에 선정됐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신진 디자이너 판로개척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피티 우오모’에서 단독 전시를 열었다. 현재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미국, 일본, 영국, 홍콩 등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사진 ‘2014 패션코드’, 각 회사 제공
사진 ‘2014 패션코드’, 각 회사 제공
“대를 이어 입을 수 있는 아우터”를 만들고자 한다는 그는 좋은 재료에 집중한다. 석유 정제물로 만든 기능성 원단이 아닌 면에다 파라핀 왁스를 입힌 형태의 ‘왁스코튼’을 이용해 천연소재임에도 방수·방풍이 뛰어나다. 겨울 외투의 경우 거위털인 ‘구스다운’을 넣어 가볍고 따뜻하다. 양띠인 기 대표를 뜻하는 양 무늬 로고에 지퍼부터 봉제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다. 홍익대 부근인 서울 연남동에 매장이 있는데 가격대가 50만원 이상으로 조금 높다 보니 특히 ‘세련된 중년층’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혼자 ‘기본 모델’을 구축하던 그는 지난해부터 직원을 뽑기 시작했다. 현재는 ‘영혼의 동반자’라 부를 정도로 바스통을 사랑하는 4명의 직원이 함께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패션코드에 참여했는데 행사가 1년 새 3배 이상 활기있어진 듯하다”는 그의 부스에는 행사기간 3일 동안 30명이 넘는 국내외 바이어들이 몰려 상담을 했다.

기어쓰리 박미선 대표
기어쓰리 박미선 대표
남성적 소재 섬세한 디테일 기어쓰리 박미선 대표

반듯한 검은색 가방에 은색 볼트와 너트가 붙어 있다. “짜여진 틀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박미선(32) 대표는 절제된 느낌을 강조한 가방 브랜드 ‘기어쓰리’(GEAR3)를 6년째 만들고 있다. 서울 상수동에 있는 그의 매장에는 강렬한 느낌의 디자인에 “외국 브랜드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단골이 된 이들이 여럿이라고 한다. ‘재구매율’이 높다는 점이 이 브랜드의 자랑이다. 지난 6월에는 ‘기어쓰리’ 가방이 너무 좋다던 단골 2명이 아예 직원으로 합류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쌈지 등 국내 브랜드에서 가방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2008년 “내가 왜 내 브랜드를 못 하고 있지?”란 생각에 사표를 던졌다. ‘아기자기한 예쁜 가방’보다는 ‘과하지 않은 디자인, 필요한 기능만큼만 들어간 절제된 디자인’의 가방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고 기능에 집중하다 보니 가방은 단순해졌다. 시크하면서도 수납이 좋은 가방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진 ‘2014 패션코드’, 각 회사 제공
사진 ‘2014 패션코드’, 각 회사 제공
“소재는 남성적인데 기능은 섬세하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가방”은 긴 생머리, 하얀 피부에 시원시원한 성격인 박미선 대표 자신과 닮아 있다고 한다. “국내 소비자들이 아직까지 가방을 고를 때 브랜드를 많이 따지기에” 국외 시장부터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국내 디자이너들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현재 홍콩과 영국의 하비니컬스 백화점, 싱가포르의 로빈슨 백화점 등에서 기어쓰리 가방을 만날 수 있다.

지난 6년 동안 ‘사용 목적에 맞는 가방 만들기’는 ‘기어쓰리’와 박 대표가 계속해서 고민해온 주제다. 최근에는 사용하는 이에게 섬세하게 맞춤한 가방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가방 스타일에 따라 제작을 맡아주는 공장 세 곳도 자랑이다. 박 대표는 “오랜 시간 재봉 일을 해온 좋은 기술자가 많다는 점”을 우리나라 패션계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앞으로도 “실용적이면서 멋진 가방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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