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전거 붐을 타고 1인용 이동기구로 탈것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인천 신도에서 열린 나인봇 시승식.
[매거진 esc] 라이프
가까운 거리 이동에서 레저활동까지…다양해지고 넓어지는 전동스쿠터의 세계
충전식 킥보드, 외발 스쿠터, 나인봇 등
1인용 이동기구 시장 급성장
실용적 이유에서 레저용 확산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인기
가까운 거리 이동에서 레저활동까지…다양해지고 넓어지는 전동스쿠터의 세계
충전식 킥보드, 외발 스쿠터, 나인봇 등
1인용 이동기구 시장 급성장
실용적 이유에서 레저용 확산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인기
바람은 달리기 시작해야 불어왔다. 햇볕 뜨거운 날이었지만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면 귓가에 시원한 바람이 스쳤다. 지난 7월 말 인천의 섬 신도에서 열린 전동 스쿠터 나인봇 라이딩 현장이었다. 발판 옆에 커다란 두 바퀴가 달려 ‘왕발통’이라고도 불리는 나인봇은 발판에 서서 손잡이를 잡고 가만히 서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 달리기 시작한다. 뒤로 기울이면 뒤로,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회전하는 등 몸의 방향을 자동으로 인식해 방향을 정한다. 똑바로 서 있으면 멈춘다. 몸을 많이 기울이면 속도가 붙어 최대 시속 20㎞까지 달릴 수 있다고 나인봇 쪽은 설명했지만 이날은 안전을 우려해 속도 제한을 설정해놓은 탓에 시속 16~17㎞ 정도로 달렸다. 보통 전기 자전거들이 달리는 속도와 비슷하거나 조금 느린 정도지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달리니까 다른 탈것보다 좀더 편하고 손이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한 줄로 서서 같이 달리는 나인봇 사용자 20여명 중엔 2살짜리 잠든 아들을 안고 달리는 김민준(35)씨, 달리면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조재현(29)씨,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매달고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신도와 이어진 시도·모도의 해안길 17㎞를 따라 달리는 동안 가만히 서서 움직이는 이 신기한 행렬을 보러 나온 마을 사람들이 길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전동 스쿠터, 나인봇은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사람들을 지나쳤다.
전동 스쿠터는 의자가 달린 충전식 미니 오토바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충전식 퀵보드, 바퀴 하나에 페달만 두개 달린 외발 스쿠터, 세그웨이나 나인봇처럼 센서로 움직이는 다양한 충전식 1인용 이동기구들을 이른다. 몇년 전만 해도 1년에 몇천대 정도가 팔리는 작은 시장이었다. 전동 스쿠터 중 인기 상품이 나와도 몇백대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장이 급격히 커졌다. 전동 스쿠터를 수입·판매하는 미니모터스 쪽에서는 “전동 스쿠터는 전기 자전거 시장을 따라가는데, 전기 자전거 시장이 커지면서 전동 스쿠터도 1년에 1만대 넘게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전동 스쿠터는 자전거도로에서 달리기 때문에 ‘신도시 교통수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니모터스에서 전동 스쿠터를 사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10㎞가 안 되는 가까운 거리를 출퇴근할 때 쓰거나 대중교통시설로 갈아타기 위한 환승용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예전엔 자동차가 없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대리운전 기사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 등이 주로 실용적인 목적으로 전동 스쿠터를 샀지만 요즘엔 가까운 거리를 달리는 교통수단이면서 레저용으로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모터스에서 짧은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팔렸다는 팻기어2는 시속 40㎞까지 달릴 수 있다. 무게는 15㎏에 가장 넓은 쪽 길이도 1m가 넘지 않는다. 전동 스쿠터를 수입·판매하는 업체 킥보이의 김홍기 대표도 “지난해는 매출 8억원이 못됐는데 올해는 40억원을 내다보고 있다”고 했다. 킥보이에서 주력 판매하는 외발 스쿠터 아이피에스 에프400업(IPS F400UP)이라는 모델은 무게가 13.2㎏이고, 무게를 8.9㎏까지 줄인 락휠이라는 제품도 나왔다. 미니모터스 정창현 부장은 “소형화, 경량화가 추세다. 지난해부터 가볍고 부피가 작은 제품들이 나오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갈아탈 때 들고 다니기가 편해졌다. 자전거 출퇴근족이 압도적인 중국에서 전동 스쿠터로 눈을 돌린 것도 한몫한다. 요즘 전동 스쿠터는 독일에서 설계하고 대만에서 개발하고 중국에서 양산한다고들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만의 추세는 아니다”고 했다.
나인봇도 중국에서 만든 제품이다. 지난 3월부터 나인봇을 한국에 수입하는 스타플릿 이형록 대표는 “2001년 미국인 딘 케이멘이 개발한 1인용 이동기기 세그웨이는 1000만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고급형 이동수단으로 꼽혔다. 이 제품에 적용된 자동균형 제어장치 특허권 기간이 만료되면서 세그웨이를 대중화한 중저가형 모델이 나오고 있고 나인봇은 그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중저가형이라고 해도 나인봇의 가격은 420만원. 이보다 저렴한 팻기어2나 마이웨이라는 전동 스쿠터도 100만원이 넘는다. 충전식이라 전기료는 한달 5000원 정도 든다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굳이 결코 만만하지 않은 값의 전동 스쿠터를 타는 이유는 뭘까?
나인봇 시승식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시장이나 가까운 영화관에 갈 때, 또는 공원 등에서 탄다고 했으니 이래저래 자전거 대용인 셈이다. 부산시 개금동에 사는 송진영(40·회사원)씨는 아이피에스업과 락휠을 가지고 있고 나인봇, 마이웨이, 팻기어 등을 대여해서 타는 전동 스쿠터 마니아다. “언덕이 많은 동네라서 자전거론 오르기 힘드니까 전동 스쿠터를 타기 시작했다”며 “퇴근뒤 주차하면 더 이상 차를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은 실용적인 목적이 압도적”이라고 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니까 남들보다 앞서가는 느낌”을 중요하게 꼽는다. 송진영씨가 가입한 킥보이 동호회 (http://cafe.naver.com/kickboy7)는 가끔 부산 광안리나 해운대 바닷가에 모여 다 함께 전동 스쿠터로 바닷가를 달리는 ‘라이딩 행사’를 하는데 ‘미래지향적 소비자’, ‘얼리 어답터’라는 느낌이 이들을 한데 묶는단다. 충북 제천에서 에스프레소 컴퍼니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김민준씨는 나인봇을 타고 6㎞ 거리를 출근한단다. 김민준씨는 “실용성보단 자기 만족이라는 측면이 중요하다. 워낙 값이 비싸서 아무나 탈 수 없는 장비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쁘지 않다”며 희소성을 중요하게 꼽는다.
새로운 기기를 좋아하는 30~50대 남자들이 주를 이루는 전동 스쿠터 소비자들은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을 선호하고 주로 오디오나 디지털카메라 등의 취미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나인봇을 판매하는 조이오디오의 박정환 대표는 “남자들의 3대 취미로 자동차, 오디오, 디지털카메라를 꼽는데, 오디오가 소형화, 경량화되는 것처럼 자동차 취미가 1인용 기구로 가벼워지고 있다. 고가의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가벼운 장난감 같은 1인용 탈것으로 옮겨가고 있다. 말하자면 이건 어린이와 어른의 중간인 어른이들의 놀이기구”라고 했다. 흔하지 않기 때문에 탄다, 시선이 좋아서 탄다. 전동 스쿠터는 어른이족들의 재미를 싣고 달린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스타플릿, 미니모터스, 킥보이 제공
외발 스쿠터 타는 모습.
왼쪽부터 IPS F400UP,락휠, 팻기어2, 나인봇, 스피드웨이 등 전동 스쿠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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