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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넨 좀 삭았구만”…굴욕·황당 면접 백태

등록 2014-09-03 20:49수정 2014-09-04 17:36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면접입니까 갑질입니까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면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입학 면접, 취업 면접, 맞선, 소개팅, 상견례.
진솔한 첫인상을 보여주는 자리면 좋겠지만 대개의 면접 자리는 메소드 연기와 철근 멘탈을 요구한다. 아, 왜 그러세요.
면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본다’는 뜻. 기업에서 직원을 뽑을 때도 면접 전형을 거치고, 남녀가 결혼할 대상을 물색할 때도 맞선이란 이름의 면접 자리에 나선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양가 부모와 함께하는 ‘상견례’라는 이름의 면접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 서로 얼굴을 본다면 그 어찌 좋지 아니한가. 훗, 웃음이 나는가? 맞다. 세상, 그렇게 녹록지 않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의 ‘연관 검색어’는 사람들이 ‘면접’에 얼마나 긴장하며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면접’의 연관검색어는 ‘면접 질문, 면접 복장, 면접 정장, 면접 학원, 면접 머리…’. ‘맞선’과 ‘상견례’ 역시 ‘맞선 복장, 맞선 결혼, 맞선 장소’, ‘상견례 복장, 상견례 장소, 상견례 선물, 상견례 비용 부담, 상견례 호칭…’. 보기만 해도 넥타이가 목을 조여오는 느낌이다.

여기서 긴급 진단, 한국의 면접 문화는 어떠한가? ‘사람이 사람을 마주 대하는 자리’라는 데 의미를 두고 즐기는가, ‘평가’와 ‘심사’라는 데만 방점을 찍고 무례하게 구는가. 야릇한 권위주의에 찌든 일부 기업의 면접 사례, 결혼을 무슨 거래쯤으로 여기고 숨막히게 격식을 따지다 결국엔 서로에게 막 대하고 마는 맞선과 상견례 사례를 모아봤다. 그러고 보니 가을, 취업과 결혼의 압박에 시달리는 계절이다.

아버지 연봉 기습질문
주제는 골프로 흘러가고
대출 자격 심사보다 냉혹한
맞선자리 호구조사

굴욕의 입사 면접

“아버지는 뭘 하시나?” 이 질문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정식(가명)씨는 ‘그러려니’ 했다. 수십번 입사 시험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 하지만 다음 질문을 듣고는 깜짝 놀라 면접관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아버지 연봉은 얼마죠?” 2인1조 면접에서 정식씨와 함께 들어간 남성 지원자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1억원이 조금 넘으십니다.” 상황 끝. 두명의 면접관은 모두 흐뭇한 미소를 띠고 그에게만 “골프는 칠 줄 아느냐” 등 ‘애정만발’한 질문을 이어갔다. 그 질문 이후 더이상 정식씨에게는 질문이 오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나이에 비해 얼굴이 좀 들어 보이네요. 그런 말 좀 듣죠?” “살다 살다 그런 말 처음 듣는다, 이놈아!”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수정(가명)씨는 주먹을 꼭 쥐고 참았다. “취미가 독서예요?” “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3번 지원자는 취미가 스노보드?” 나, 누구한테 말한 거니! 면접관은 수정씨의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다른 이에게 질문을 했다. 그 회사의 팀장이란 사람은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고 면접관으로 들어온 기색이 역력했다. 최고의 질문은 마지막. “그럼 이수정씨는 대학 졸업하고 우리 회사가 첫 지원인가요?” “면접관님, 전 신입이 아니고 경력 사원에 지원한 사람이거든요!”

식품·패션·정보기술·출판·언론·정유·유통 등 다양한 업계를 대표할 만한 14개 기업 인사 담당자에게 물었다. 면접 전형에서 ‘가장 쓸데없는 질문’은 무엇인가? 1위가 “아버지는 뭐 하시냐?”다. 다음으로 “이 토익 성적으로 어떻게 우리 회사에 지원했느냐”는 식의 ‘수치심 자극 질문’, 특정 지원자한테만 질문을 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방식의 ‘무질문’ 등이 ‘나쁜 질문’으로 꼽혔다.

기업 면접장에서 이런 ‘굴욕적’ 질문이 오고 가는 이유는 뭘까. 1~14년의 인사관리 업무 경력을 지닌 응답자 14명 중 11명이 “준비 안 된 면접관이 면접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입사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면접관의 콧대가 높아져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권위적인 직장 분위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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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맞선

김은정(가명·33)씨는 직장생활 8년차, 모아놓은 돈도 꽤 된다. ‘혼기가 꽉 찬 딸’을 걱정하는 부모의 성화에 맞선 자리에 나가긴 했지만 결혼이 시급한 인생의 과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그 앞에 엄청난 맞선남이 나왔다. “나이가 좀 있는데 아이 낳으려면 체력 관리 좀 해야겠네요? 애는 언제쯤, 몇 명이나 낳을 생각이에요? 결혼하고도 일은 계속할 거죠? 음식은 좀 하나요? 청소는 깔끔하게 하는 편이고요?” 자기 사업을 한다는 37살의 사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부장적인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돈도 계속 벌어오란다! 맞선 내내 김씨는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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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대학 강사인 정성환(가명·36)씨는 맞선을 ‘끊었다’. ‘조건을 따지는 맞선녀들’에게 지쳤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그녀는 처음부터 차가운 표정이었다.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선에 나오기 전에 전해 들은 정보와 실제가 차이 난다”며 조건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 “지방대라고요? 전 서울에 살아야 하고 ‘롱디(장거리) 커플’은 싫어요. 키는 정확히 몇 센티예요? 그럼 연봉은요? 저축해놓은 돈은 얼마나 있어요? 집은 어떻게 마련할 건데요? 형제는요? 집안에 제사는 1년에 몇 번?” 정씨는 맞선 내내 “대출을 받기 위한 심사 자리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문 같은 시간을 견디고 밥값까지 내고 나니 억울함이 몰려왔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와 함께 8월20일부터 1주일 동안 20~30대 미혼남녀 255명에게 물었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던 맞선 경험이 있습니까?” 188명(73.7%)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남자는 “상대의 외모, 직업, 가치관 등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38.1%)이라고 했고, 여성은 “상대의 배려심과 예의 없는 태도 때문”(43%)이었다고 답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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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 상견례

캠퍼스 커플로 만나 연애를 3년이나 했지만 상견례가 끝나고 최아영(가명·32)씨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신도시에 60평짜리 집을 마련해뒀으니 혼수나 예단은 여기에 걸맞은 수준으로 해야겠죠?” 예비 시어머니는 미소 띤 얼굴로 부모님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수준 맞추기 어려우면 우리 쪽에서 해주는 예물이라도 좀 줄여야겠네요.” 노골적인 시어머니보다 그 앞에서 찍소리도 못 하는 남자친구가 더 원망스러웠다. 계산기를 두드려대는 시부모 앞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최씨의 집안은 할 말이 없었다. “상견례가 결혼 비용을 결재하는 자리냐”고 최씨는 물었다.

“우리 아들이 개띠인데 용띠랑은 궁합이 썩 좋지 않더라고요.” 불교 신자인 어머니는 기어이 이 말부터 꺼냈다. 윤호식(가명·34)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발끈했다. “저희는 궁합, 미신 이런 거 안 믿어요.” 신경전이 계속됐다. “우리 집은 제사를 꼭 지내야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제사 이야기에 여자친구의 낯빛도 변했다. 양가 부모님은 끝내 서로의 자녀가 개종을 해야만 이 결혼을 받아들일 수 있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 자리에서 윤씨와 여자친구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막장 드라마 같다”고 느꼈던 상견례 날 이후, 두 사람은 파혼을 했다. 2년 동안 이어온 사랑의 끝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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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듀오가 한 조사에서 상견례는 미혼남녀에게도 스트레스 요인이였다. 43명(16.9%)은 이미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던 상견례나 상대 부모 인사 경험이 있다”고 했고 69명(27.1%)이 “자신이나 주변에 상견례 때문에 파혼한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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