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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주택으로 해답찾은 ‘5도2촌’의 꿈

등록 2014-09-10 20:28수정 2014-09-11 17:03

측면에서 본 주택. 직사각형 한쪽을 삐딱하게 세운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이다.
측면에서 본 주택. 직사각형 한쪽을 삐딱하게 세운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이다.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비용과 관리부담 줄이기 위해 이동식 주택 고른 직장인 김수병씨의 충주 아리마을 세컨드하우스
지난해 1월 북한산 산행 뒤풀이에서 친한 선배의 “집을 짓는 순간 후회한다”는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면 지금쯤 지중해식 목조주택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실관리의 표본이 되었을 게 뻔하니 말이다. 사람의 손이 가지 않던 이웃집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1년여 동안 경험하고 있다. 어쨌든 당시 선배의 ‘조언’을 새겨들어 전원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쾌적한 주택을 포기했다. 순식간에 욕망의 크기는 작아졌고 화려한 전원생활에 대한 미련도 사라졌다.

이동식 주택의 현관과 정면.
이동식 주택의 현관과 정면.
충북 충주시 앙성면의 아리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앙성댁’이 생각나는 그곳에 전국 최대의 전원마을이 조성되고 있었다. 먼저 둥지를 튼 친구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미분양 부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순간 홈쇼핑 채널에서 발동되던 구매욕이 꿈틀대는 것을 아이 엄마도 눈치챘을 텐데 애써 말리지 않았다. 마을을 한바퀴 둘러본 뒤 시행사의 현장사무소를 찾아가 370㎡(공유지분 포함) 땅의 계약금을 카드로 결제했다.

주중 생활권에서 100㎞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땅. 어떤 집을 짓더라도 출퇴근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아리마을 100여가구 가운데 20여가구만 상주하고 나머지는 5일간 도시에 살고 2일은 시골살이를 하는 ‘5도2촌’용 세컨드하우스로 이용한다고 했다. 윗집은 하루 근무하고 이틀을 쉬는 부부 역무원이었다. 그런 근무환경이라면 수도권 원거리 출퇴근도 가능할 것 같았다. 겨우 주말에 하루이틀을 보낼 처지에서는 ‘글램핑’ 전용 세컨드하우스가 제격인 듯했다.

바닥면적 29.37㎡의 좁은 실내지만 세층으로 나뉘어 공간을 최대로 활용했다.
바닥면적 29.37㎡의 좁은 실내지만 세층으로 나뉘어 공간을 최대로 활용했다.
애초 시행사는 땅을 분양하며 시공까지도 도맡고 있었다.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유지하려면 시공도 지정 업체에서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현장사무소가 철수하길 기다렸다가 내 식대로 집을 짓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빈터는 마을의 건축 폐자재 처리장으로 용도변경되어 상주 가구에서 기르는 견공들의 배설구역 구실을 했다. 게다가 논에서 대지로 지목을 변경할 수 있는 기한도 다가왔다. 하는 수 없이 컨테이너 농막이라도 갖다 놓기로 했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직접 땅을 골라 나무를 심었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직접 땅을 골라 나무를 심었다.
놀랍게도 돌파구는 인터넷 컨테이너 쇼핑이었다. 농막을 검색하다 보니 신세계가 보였다. 이동식 목조주택이라는 게 있었다. 우선 소형 목조주택을 갖다 놓았다가 다른 게 필요할 때 어딘가로 옮긴 뒤 새로 지으면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기왕 글램핑 전용이라면 컨테이너보다는 공간 배치가 쓰임새 있는 이동식 주택이 매력적이었다.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다 ‘피터팬의 꿈’이라는 이동식 목조주택에 순간적으로 꽂히고 말았다.

임시 컨테이너 농막 찾다가
발견한 이동식 주택에
내 손으로 직접 꾸민 정원
풀과의 전쟁은 고되지만
잠자던 몸이 깨어나는 느낌

피터팬의 꿈은 건축박람회에 출품된 소형 이동식 목조주택이었다. 견본주택으로 지어놓은 게 경기도 화성에 있다고 했다. 곧바로 찾아가 건물을 살펴봤다. 바닥 면적 29.37㎡에 실면적 37.20㎡ 크기로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4100여만원이었다. 화성에 있는 주택은 견본주택으로 쓰인 것이라 조금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다고 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내 이동식 목조주택 매매계약서에 서명하고 건물 위아래를 분리한 뒤 크레인을 이용해 대형 트럭으로 옮겼다. 별도의 운반 비용이 들어갔다.

붙박이 이불장으로 층을 구분하는 등 집 자체가 가구식 구조다.
붙박이 이불장으로 층을 구분하는 등 집 자체가 가구식 구조다.
건물의 외형은 직사각형 한쪽을 삐딱하게 세운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이다. 은퇴한 부부의 전원생활 거처로 디자인하면서 동화적 상상력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려 했다고 한다. 실내로 들어가면 몇 개의 단 차이를 이용한 세개의 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계단을 통해 다른 바닥을 밟는데, 별개의 공간이 아닌 까닭에 무중력 공간에 진입하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피터팬이 시간을 거스르고 중력에서 벗어났던 것처럼 실내를 ‘유영’하게 된다는 말이다. 큰아이는 다락방에 머물기를 좋아하고 둘째는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며 떠돈다.

이처럼 실내는 세 층이지만 주방과 거실, 1.5층, 다락방 등이 계단으로 연결된 원룸형이다. 다락방은 철제빔으로 하부와 연결되어 이동 시 분리된다. 여기에 창고 바닥까지 있으니 여러 층의 바닥이 조성된 셈이다. 별도의 내부 인테리어는 들어설 틈이 없다. 붙박이 장롱을 대신하는 이불장이 실내 아래층과 위층을 구분하는 구실을 한다. 별도 보일러실이 없기에 전기 패널과 순간온수기를, 식탁 대신 접이식 캠핑 탁자를 쓰는 식이다. 가구식 구조에 따른 오붓한 공간인 셈이다.

붙박이 이불장으로 층을 구분하는 등 집 자체가 가구식 구조다.
붙박이 이불장으로 층을 구분하는 등 집 자체가 가구식 구조다.
이동식이라지만 집을 짓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야 했다. 40㎝ 콘크리트로 기초공사를 한 뒤 수도와 하수도 등 배관시설을 해서 집을 올렸다. 견본주택 정면 아래의 빈 공간을 창고로 개조하고 목조데크도 설치했다. 그렇게 해도 대지의 상당 부분은 빈터로 남아 있었다. 건물 뒤편은 텃밭으로 이용한다 해도 5분의 3쯤 차지하는 전면은 조경공사가 필요했다. 마을 인근의 조경업체에 문의했더니 호화저택 수준의 가격을 제시했다. 좋은 나무 몇 그루 추가하면 집값을 넘어설 태세였다.

내 식대로 저렴하게 조경미를 추구해야 했다. “집짓기를 구매욕으로 대신했으니 뭔가 내 손으로 하는 것도 있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앞마당은 잔디를 깔고 주변 바닥은 자갈과 판석을 놓는 간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도로 쪽 담장에는 마을 인근의 돌산에서 나오는 돌을 쌓아 화단을 만들었다. 건물 주변에 3개의 빗물받이를 묻기 위해 땅을 파서 피브이시(PVC)를 연결하며 진땀을 흘렸다. 마당 중앙에 있던 수도 계량기를 옮기려고 파 내려간 1m 깊이의 웅덩이에서 관을 연결하다 엄청난 수압에 손바닥이 찢기는 아찔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동식 주택을 정위치에 놓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웬만큼 사람 사는 집 모양을 갖추는 데는 100일가량 소요됐다. 주말마다 생각나는 대로 일거리를 처리한 때문이었다. ‘거액’을 들여 소나무 다섯그루를 옮겨 심었는데, 벌써 세그루는 고사하고 말았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소나무 판매자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상수도 배관에 열선을 설치하지 않아 혹한기에는 실내에 텐트를 설치해도 지내기 힘들 만큼 추웠다.

올해 봄날이 찾아오면서 전원살이에 본격적으로 다가섰다. 히아신스 모종 80개를 화단에 심었지만 봄날이 지나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년생 야생화라고 해서 심었던 아기범부채, 무늬도라지도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다만 데크 아래의 옥잠화와 바람꽃, 산수국이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채소는 모종을 심고 씨도 뿌렸다. 상추와 방울토마토는 두달여 동안 수확의 기쁨을 느끼게 했지만 명월초는 간격을 너무 조밀하게 심어 풀숲과 다를 게 없다. 사과와 매실, 앵두, 포도 등의 과실수를 심었지만 수확은 포도 두송이와 심지도 않았는데 넝쿨째 들어온 호박 한개가 전부일 듯하다.

이 모든 초보농군의 ‘아픔’은 풀에서 비롯되었다. 잡초의 질긴 생명력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여름날 불볕더위에도 풀과의 사투를 벌였다. 심지어 해질녘에 내려가 헤드랜턴을 머리에 착용하고 심야에 풀과의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토록 치열하게 풀을 제거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화단의 꽃에 영양분을 공급했을 터이고, 과실수의 진딧물도 제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리마을 이웃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야만 해법을 찾을 텐데, 주말 잠시 머물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 차라리 풀숲의 매력에 빠지는 게 빠를지 모르겠다.

주말에 갈 데가 있다는 게 일상의 윤기로 작용한다. 때론 한두시간 풀을 뽑겠다는 생각만으로 고속도로에 들어서기도 한다. 다락방 경계 칸막이를 책꽂이로 사용하면서도 책장을 넘긴 기억이 없다. 초여름에 구입한 스탠드 해먹을 설치한 게 최근의 일이고, 대형 그늘막 텐트는 아직 창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역에 시달리는 게 글램핑은 아닐 텐데…” 하면서도 몸이 깨어나는 앙성을 향한다. 시시때때로 “충주 가자”고 칭얼대는 네살배기의 놀이터가 거기니까.

김수병/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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