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 단식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이 계룡산센터 앞 저수지에서 양팔을 감싸 안은 채 심호흡을 하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스타일
급격한 체중증가, 스트레스로 허덕이던 임지선 기자의 ‘해독단식 캠프’ 3박4일 참가기
급격한 체중증가, 스트레스로 허덕이던 임지선 기자의 ‘해독단식 캠프’ 3박4일 참가기
자동차 안에서 지저분하게 엉킨 주홍색 실타래를 발견했다. 연 날릴 때 쓰는 줄이었다. 잘 감겨 있던 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잔뜩 풀려 자기들끼리 엉켜 있었다. 한참을 줄과 씨름하다 어유, 원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가 딱딱해졌다.
자꾸만 그런 나날이었다. 내 마음같이 풀리는 일이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더 먹고 마셨다. 몸무게가 급격히 늘고 눈과 피부가 나빠지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해독 단식 캠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먼저 반응한 것은 몸이었다.
‘해독 단식 캠프’는 한겨레 휴센터(▶바로가기)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휴센터는 ‘느리고 단순한 삶,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 나와 남이 모두 행복한 삶,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를 위해 명상·운동·호흡·자연건강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징검다리 연휴였던 9일부터 3박4일 동안 충남 공주시 이인면의 계룡산센터에서 진행된 캠프에 참여했다.
3박4일의 일정표를 보자니 단순함에 웃음이 났다. 미음부터 해독주스, 칡즙으로 이어지는 식사 시간, 힐링 체조와 명상·호흡 수련, 숲 치유산책, 그리고 사이사이 촘촘히 휴식 시간이었다. 모든 프로그램은 저녁 8시30분이면 끝이 나고 이후는 ‘평화로운 쉼’, 잠자는 시간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쉬기만 한다니, 가슴이 설레었다.
“단식이라는 말보다는 ‘해독’이라는 말에 더 끌려 참여하게 됐습니다. 독이 가득한 세상, 혼탁해진 관계 속에서 내 몸을 깨끗하게 좀 닦아내고 싶어서요.” 21명의 참가자가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하던 첫날, 서로의 마음이 비슷함을 확인했다. “지난주까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이번주에 휴가를 냈다”, “기름진 음식, 술, 담배가 쌓여 몸이 기능을 안 한다”는 중년의 직장인이 여럿이었다. “젊어서부터 몸이 안 좋았던 아내가 이제는 자꾸 등잔불이 꺼지는 느낌”이라 부부가 함께 캠프에 참여했다는 예순여덟살 임동하씨의 말에는 모두가 숙연해졌다.
자기소개 뒤, 힐링 체조와 명상·호흡 수련이 시작됐다. 오후 4시반,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선선한 10월 날씨였다. 삶이 힘들수록 숨이 얕아진다고 한다. 국선도를 오래 수련한, 미소가 아름다운 조동현 선생님이 아랫배까지 깊숙하게 숨을 쉬고 오래 내뱉어보라 했다. 숨을 내뱉으며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활짝 지어보라 했다. 숨만 쉬었을 뿐인데 가슴 언저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지는 2인1조 마사지 시간에는 남편이 ‘등잔불이 꺼지는 느낌’이라 안쓰러워했던 아내와 짝이 됐다. 내 어깨에 올라온 힘없는 손이 덜덜 떨렸다. 손바닥을 비벼 내 등에 대주니 따뜻함이 가슴으로, 전신으로 퍼졌다. 서로의 등을 어루만져줬을 뿐인데도 땀이 났다.
단식 캠프에 참여한 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다름 아닌 ‘식사 시간’이었다. 첫날 점심까지는 외부에서 해결하고 계룡산 자락에 모여든 이들은 ‘마지막 저녁식사’로 현미죽과 된장국을 함께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숟가락으로 빈 밥그릇을 긁었다. “단식하러 온 사람들이 엄청 열심히 먹네.” 누군가의 말에 다 같이 웃었다.
단식에 대한 두려움
예상외의 가뿐함
급격한 기력 달림의
3단계를 지나니
3박4일의 프로그램이 끝났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의 건강을 결정해요. 우린 음식을 먹고 물도 먹죠. 그런데 가장 많이 먹는 것, 또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을 먹는 것이에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도 달라집니다.” 편안한 인상의 이종대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명상을 하는 시간. 목소리가 나긋하고 말이 부드러워 너무 편안했던 나머지 명상을 위해 눕자마자 코를 고는 참가자도 있었다. “생각을 내려놓고 머리를 쉬게 합시다. 단식을 통해서 위장과 비장을 쉬게 하고요. 나를 위해 행복하게 쉽시다.” 캠프의 숙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시켜줬다. 1인1실로 배정받은 숙소에 들어서니 방과 나, 둘뿐이다. 방 한쪽 구석에 깨끗한 이불이 접혀 있었고, 그뿐이었다. 텔레비전도, 서랍장도, 거울 하나도 없었다. 나무로 지은 건물은 벽이 얇아 방음이 잘 안됐다. 이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도움을 줬다.
대신 화장실은 방마다 잘 갖춰져 있었다. 해독 단식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화장실이다. 캠프 첫날 ‘질경정소’라는 마법의 가루를 받아들었다. 질경이 껍질로 만든 ‘차전차피’에 뽕잎, 국화, 민들레, 쑥, 차조기, 도라지, 더덕, 칡 등을 넣어 만든 가루였다.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니 숙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먹은 것이 없는 캠프 2·3일차에도 시커먼 똥이 나왔다.
단식 2일차가 밝았는데도 배고픈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침식사로 현미로 만든 미음을 먹었고 점심에는 귤과 자몽을 갈아 만든 해독주스, 저녁에는 토마토와 양파를 끓여 만든 수프를 먹었다. 급기야 저녁 수프는 남겼다. 이미 기력이 쇠진한 이들이 “배고픈데 음식 남기는 사람이 있다”며 신기해했다. 평소에는 점심 한번 거르면 큰일 나는 줄 알던 내가 이럴 줄이야.
먹는 걸 정지하니 세상의 소리가 더 세밀하게 들렸다. 단식의 효과로 미각과 후각, 청각 등의 감각이 깨어난다고 했다. 참가자들과 함께 숲을 산책하는데 촤, 바람이 불어 나무가 소리를 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맑은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임나리 선생님이 시를 읊었다. “꽃이 열리고/ 나무가 자라는/ 그 소리 그 소리/ 너무 작아/ 나는 듣지 못해” 홍순관의 노래 ‘소리’의 가사였다.
캠프 둘째 날 오후부터 속이 더부룩해지기 시작했다. 헛트림이 나왔다. 이 더부룩함, 익숙하다. 최근 몇 달 동안 체기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계속 먹고 마셨다. 인간의 몸은 스스로 방어하고 치유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염된 음식, 잘못된 생활습관, 스트레스 등으로 내 몸의 생명력을 훼손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캠프 둘째 날에는 위장 위에 손을 얹고 “그동안 미안했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셋째 날에는 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몸이 약한 사람이 먼저, 체력이 좋은 사람이 나중에” 기력이 떨어진다고 임 선생님은 설명했다. 아침에 일어나 칡즙을 간신히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렇게 잘 수 있는 시간도 없을 테니 그냥 자라”며 선생님은 매실 효소를 한잔 건넸다. 자고, 일어나서 수련하고, 자고, 일어나 산책하니 하루가 금세 갔다.
넷째 날 아침, 배가 홀쭉하게 들어가고 오랜만에 잘룩한 허리선이 보였다. 몸이 깨끗해졌다는 느낌과 기력이 쇠진했다는 느낌이 동시에 강하게 들었다. 아침 7시40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음이 나왔다. 보식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숟가락 들 힘도 없다며 한 수저 힘겹게 입에 넣었다. 그 순간의 환희! 입안에서 미세한 밥 알갱이가 폭죽처럼 터졌다. 기력이 금세 회복됐다.
단식에 대한 두려움, 예상외의 가뿐함, 급격한 기력 달림의 3단계를 지나니 3박4일의 단식이 끝났다. 몸무게는 4㎏이나 빠졌고 피부가 맑아졌다. 마음의 변화는 더 크다.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한발짝 물러설 여유가 생겼다. 해독 단식 캠프는 다음달 20일 다시 열린다.
그리고 연줄 타래. 한참을 엉킨 줄과 씨름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그럴 땐 그냥 끊어버려.” 라이터를 꺼내 줄을 불로 지져 끊어내버렸다. “연줄이 200m도 넘어. 엉킨 부분은 고작 10m도 안 된다고.” 못되게 엉켜 있던 줄뭉치는 순식간에 사르륵,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게 사는 법, 멀리 있지 않았다.
공주/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단식 중 헛헛함을 달랠 겸 몸도 정화할 겸 마시는 둥굴레차.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숲 속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모습. 각자 자신의 몸에게 “고맙다,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예상외의 가뿐함
급격한 기력 달림의
3단계를 지나니
3박4일의 프로그램이 끝났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의 건강을 결정해요. 우린 음식을 먹고 물도 먹죠. 그런데 가장 많이 먹는 것, 또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을 먹는 것이에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도 달라집니다.” 편안한 인상의 이종대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명상을 하는 시간. 목소리가 나긋하고 말이 부드러워 너무 편안했던 나머지 명상을 위해 눕자마자 코를 고는 참가자도 있었다. “생각을 내려놓고 머리를 쉬게 합시다. 단식을 통해서 위장과 비장을 쉬게 하고요. 나를 위해 행복하게 쉽시다.” 캠프의 숙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시켜줬다. 1인1실로 배정받은 숙소에 들어서니 방과 나, 둘뿐이다. 방 한쪽 구석에 깨끗한 이불이 접혀 있었고, 그뿐이었다. 텔레비전도, 서랍장도, 거울 하나도 없었다. 나무로 지은 건물은 벽이 얇아 방음이 잘 안됐다. 이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도움을 줬다.
바닥에 누워 명상을 하는 모습.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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