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르트’ 김영민·강윤주 디자이너
‘유르트’(YURT)를 만든 김영민(37)·강윤주(32) 디자이너를 만난 곳은 서울 홍은동 한 골목 끝의 작은 건물이었다. 3층짜리 건물을 작업실 겸 쇼룸 겸 숙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진한 가죽 냄새. 재봉틀 옆에 접혀 있는 자전거 두 대를 지나 쌓여 있는 가죽 원단 사이를 지나기가 비좁았다. 두 디자이너를 포함해 온 건물이 오직 가방을 위해 존재하는 듯 보였다.
“어려서부터 직접 만든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농담으로 ‘니가 만든 거 누가 들겠니’라고 했어요. 제 스타일대로 만들다 보니 마니아층도 형성이 되고 오히려 ‘더 개성을 살려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더라고요.” 강윤주 디자이너의 말이다. 남편인 김영민씨가 신발을, 아내인 강윤주씨가 가방을 디자인한다.
강 디자이너는 일본에서 가방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에 들어온 2012년 겨울부터 남편과 함께 성수동 공장에 들어가 가방 만들기의 실무를 익혔다. 지난해 3월 서울 가로수길에 매장을 내며 본격적으로 브랜드 운영을 시작했고 지난 4월 홍은동으로 이사를 했다. 매장도 서울 동대문의 두산타워로 옮겼다.
유르트에서 가장 인기있으면서 독특한 디자인은 ‘크루아상 백’이다. 말 그대로 크루아상처럼 생긴 이 가방은 똑딱단추로 세 개 면이 열리는 구조다. 인공적인 가공을 최소화한 ‘베지터블 가죽’을 잘게 쪼개 자르지 않고 통으로 사용한다. 100% 수작업으로 강 디자이너가 한땀 한땀 정성 들여 만들고 있다.
또 하나 유르트가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yurt38)이다. “가죽이나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며 고객들과 꾸준히 소통할 수 있어 좋다”고 김 디자이너는 말했다. 얼마 전에는 명품 가방 편집매장에서 일한다는 미국인이 “크루아상 가방을 멘 사람을 봤는데 어느 명품 브랜드의 가방보다 유니크하고 예뻤다”며 페이스북 메시지로 가방을 주문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디자인으로 승부하며 제품군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뽐므델리’ 정희윤 디자이너
‘뽐므델리’는 장어가죽으로 가방을 만든다. “이태원에 장어가죽 동전지갑을 팔던 아주 작은 가게가 있었어요. 그렇게 가볍고 색상 예쁜 가죽은 처음이었죠. 알고 보니 장어가죽은 한국에만 있어 해외 명품 브랜드들도 모두 우리나라에서 수입한다더라고요. 다시 이 소재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전문 브랜드를 만들게 됐습니다.” 정희윤(41) 디자이너의 말이다.
2009년에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국내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가방을 유통할 방법이 없었다. 유럽 수출을 먼저 시작한 이유다. 장어가죽이 버려지는 껍질을 업사이클링한 소재라는 점과 소재 자체의 매력 등을 이유로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년 전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명품 가방만 좋아하는 한국 시장에서 디자이너 브랜드가 통할까” 우려했는데 그사이 시장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2012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처음으로 팝업(임시매장) 행사를 했어요. 브랜드 인지도가 전혀 없는 제품을 과연 사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한 사람이 가방을 여러 개 구입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백화점도 놀랐죠. 직전에 행사를 한 유명 브랜드보다 매출이 3배 더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3, 40만원대의 ‘로고리스 가방’에도 반응하는 시장을 보며 국내 진출을 서둘렀다.
손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이제 명품의 로고가 반복된 제품은 너무 식상하다”, “명품백들은 가끔 들고, 로고 없는 예쁜 가방을 찾고 있었다”, “나만 들고 다니는 독특한 가방이 필요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엄마와 이모가 모두 단골인 7살짜리 아이가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다”며 자신이 모은 돈으로 가방을 사갔다고 한다.
가벼운 만큼 다루기 까다로운 장어가죽을 소재로 디자인하다 보니 기술적인 노하우도 쌓았다. 디자이너 가방 브랜드로는 드물게 벤처기술 인증을 받았다. 올해 매출 30억원. “시대의 흐름을 탔다”고 평가받는 ‘운 좋은’ 브랜드이니만큼 앞으로도 토종 브랜드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폴렌’ 함윤경 디자이너
폴렌의 대표 디자인인 ‘길리 백팩’은 ‘이미연 백팩’으로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티브이엔의 여행 예능 프로그램인 <꽃보다 누나>에 출연한 배우 이미연이 여행 내내 메고 다녔던 파란색 가방이 바로 지난해 11월 문을 연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방이었다. 함윤경(36) 대표는 “이미연씨가 <꽃보다 누나> 촬영 전 여행용 백팩이 필요하다며 직접 청담동 매장에 와서 ‘길리 백팩’을 사갔는데 이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길리 백팩’은 함 대표가 소재부터 정성을 들인 제품이다. 주요 소재인 ‘오플 소가죽’은 독일 페를링거사에서 명품 가방 브랜드인 ‘에르메스’에 납품하는 가죽이다. 부드럽고 촉촉하면서도 견고해 백팩용으로 좋다. 여기에 들기 편한 손잡이와 넓은 수납 공간의 깔끔한 디자인이 만났다. “외국 명품 브랜드 가방에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는 품질과 디자인이 저만의 자존심”이라 한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폴렌은 홍보와 매장 확장 등에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쟁이 치열해 ‘간접광고(PPL)의 전쟁터’ 격인 한국방송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휘재가 ‘길리 백팩’을 멨다. ‘기저귀 등 쌍둥이의 짐을 넣고 다닐 가방’으로 낙점된 덕분이다. 이후 ‘엄마’들의 구매가 이어지기도 했다.
문을 연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효자 상품 ‘길리 백팩’ 덕분에 폴렌은 크게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월 매출이 5억원을 넘어섰다. 49만8000원이었던 ‘길리 백팩 3.4’에 이어 55만8000원짜리 ‘4.0’ 버전도 출시했다. 현재 롯데백화점 본점·잠실점·부산본점, 현대백화점 본점·무역센터점에 입점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2배 넘게 성장하리라 예측한다고 한다.
“디자인이 참신하고 소량생산으로 제품이 희소하니 나만의 개성을 연출하려는 안목 높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량생산으로 보편화된 디자인이 대부분인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만의 독창성을 무기로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계획입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