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욕의 전략
욕은 더 이상 은밀하지도 비속하지도 않다. 2013년 만우절을 맞아 “우리 욕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로 서울 상수동 그문화갤러리에서 열린 〈상년전〉에 전시된 욕그림 ‘니기미쌍쌍바’(곽사과 그림)와 ‘조카 크레파스’(기린 그림).
하위문화 매체들이 활용하는 욕의 전략, 욕의 진화 “욕이라는 건 말이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죽을 년 같으니 옘병 땀병 속병에 가다 버릴 십장생 시베리아 벌판에서 감귤이나 까라 그래 개나리나 까라 그래 소나리나 까라 그래 니 눈앞의 내 꼴이 천진난만하냐 쌍화차야 욕지거리 토 나오게 들어볼래 (…) 신발샛길 밤식빵에 포도씨유 바른다 호랑말코 볼따구를 허벌나게 쳐분다 (…) 아이고 왜들 이러세요 지지지지 진정들 하세요 왜그러냐 하면 말이다 욕을 잘 만들라고 맛있게”(‘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욕’, 시유 노래) 하늘에서 수억개의 욕이 쏟아지고 있다. 4년 전 한 드라마의 욕쟁이 할머니를 패러디한 노래가 유시시로 만들어졌던 것을 애니메이션 캐릭터 시유가 다시 고쳐 불렀고, 인터넷을 돌고 돌며 여러 재야의 가수들 입으로 재창작되다가 최근엔 ‘하늘에서 내리는 2억개의 욕’까지 나왔다. 번외편까지 모아놓고 보니 공교롭게도 죄다 우리 옛 시조인 3.4조 혹은 4.4조 형식에 가깝다. 욕의 일상화를 이루어낸 일등공신은 아무래도 에스엔에스와 수많은 비(B)급 미디어다. 예전 같으면 화장실 벽이나 독서실 칸막이 같은 곳에 끄적였을 욕들이 개인 미디어들을 타고 공개된 장소로 쏟아져 나왔다. 이박사(이종우)와 이작가(이동형)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는 다음과 같은 경고로 시작한다. “이 방송은 19금으로 과도한 비속어와 욕설이 난무하니 임산부와 노약자, 심신이 미약한 사람은 청취를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사회 및 문화 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에서 두 진행자는 열심히 욕을 하는데, 이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방송심의위원회와 관계없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있고 기존 권위주의와 엄숙주의를 깨기 위해서 일부러 욕을 한다. 특히 방송 초반엔 서울대 종교학과 박사 과정을 마친 이박사에게 더 열심히 욕을 하도록 격려했다. 엘리트들이 뒷구멍에선 욕 나오는 일을 다 하면서 공개 석상에선 점잖게 행세하는 행태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추임새처럼 의도적으로 하지만 ‘이승만 특집’ 같은 방송을 할 땐 우리도 모르는 새 욕이 막 터져 나온다. 개새끼.” 팟캐스트 <철수와 존슨의 취업학 개론>을 진행하다가 지금은 유튜브에서 같은 이름의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는 철수도 ‘욕쟁이’로 인기를 얻었다. “욕은 약자끼리 주고받는 추임새와도 같다. 회사가 취업준비생을 앉혀 놓고 집의 자산상태나 부모님 학력을 물어봤다는 사연을 소개할 때 진행자들이 어떤 시베리아 새끼들이 이딴 걸 요구하냐고 대신 화를 내줘야 한다. 워낙에 술 먹고 울분을 토하듯 하는 방송”이라고 했다. 얼마 전 유튜브로 방송한 ‘칼퇴 특집’에서 최근 취업한 철수와 존슨은 이렇게 부르짖는다. “내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선 수요일을 ‘족데이’라고 불렀어. 회사에서 ‘가족의 날’이라며 붙인 이름인데 이 말 자체가 욕 같지? 수요일만 칼퇴라면 월·화·목·금은 법정 근로시간을 넘어 야근하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냐, 이 주옥같은 새끼들아!” 자기를 욕하는 것
자기 인생의 가치를 욕하는 건
인생의 무거운 짐을 벗고
경쾌하게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힘을 준다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욕〉
김이브씨의 인터넷 방송 장면. 사진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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