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온라인 중고장터
세일 기간 집안 정리 맞물리는 12~2월 중고 거래 급증
재능 교환·판매 등 거래분야도 확장
세일 기간 집안 정리 맞물리는 12~2월 중고 거래 급증
재능 교환·판매 등 거래분야도 확장
빨라야 살 수 있다.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세일이 지나간 자리, 온라인 중고 장터에서는 클릭하는 손들이 바빠졌다. 싼값으로 사들였지만 막상 받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일 상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중고 거래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번개장터의 이용 현황을 보니 매년 12월부터 2월은 신규 가입자와 거래 물품이 평소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나는 중고 시장의 성수기였다. 번개장터 장영석 이사는 “1월은 유통에선 소비의 비수기로 치지만 중고 시장에서는 본래 집집마다 물품을 정리하는 시기인데다가 해외 구매가 늘면서 중고 장터도 덩달아 성장하는 추세”라고 풀이했다.
몇해 전부터 미국 온라인 쇼핑의 중심이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종합쇼핑몰 아마존으로 옮겨가면서 온라인 중고 시장은 사양길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비 확대는 중고 시장을 함께 부풀렸다. 2012년 2월, 한국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는 중고상품 전문관인 ‘중고스트리트’를 열었는데 2014년 말 기준으로 판매자 수는 3만명을 넘었고 판매물품 개수는 100만개 가까이 된다. 2013년과 비교하면 50%가 늘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라인 중고거래 장터인 옥션도 2014년 7월 중고 장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전격 개편하고 서비스를 강화한 뒤 300% 가까운 성장을 기록했다. 옥션 쪽은 “신규 모델이 나오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비자들이 상품을 사용하는 시기가 점점 짧아진 것이 중고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중고를 남이 사용하던 물건이 아니라 흠 있는 새 상품이나 전시 상품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11번가 정건길 중고 담당 엠디는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생활물품 대부분을 중고로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며 “전통적으로 중고 상품은 노트북, 휴대폰, 생활가전 등을 중심으로 거래됐지만 최근 서적, 의류, 가전제품, 유아용품 등 다뤄지는 상품 영역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했다. 번개장터 장영석 이사는 “불황의 코드와 맞물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판매 행태를 보면 무언가를 팔아서 생활비를 보탠다는 것보다는 주부가 막 회사에 들어간 신입사원에게 자신이 회사 다닐 때 입던 옷을 팔고, 회사원은 대학생에게 교재나 가방을 파는 등 서로 쓰지 않는 물건을 물려주는 순환경제에 가깝다”고 했다.
무언가 팔아서
생활비를 보탠다기보다
저렴하게 물려주고 양도하는
순환경제에 가까워 번개장터, 중고옥션, 헬로마켓 등 스마트폰 앱으로 하는 중고 거래 서비스가 늘면서 중고 거래에 속도가 붙은 것도 한몫했다. 이 중 모바일 사용자가 가장 많은 번개장터를 모바일 앱으로 내려받은 사람이 2014년까지 550만명이다. 회원 1300만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는 운영자가 별도의 모바일 앱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에선 중고품 판매자와 바로바로 문자 채팅을 할 수 있고 전화번호로 판매자의 이력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량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중고 시장은 취미를 위한 시장이다. 지난해 9월, 옥션에서 회원 1330명을 대상으로 왜 중고를 사는지 물어보니 75.8%가 “저렴한 가격 때문”이고, 15.2%는 ‘소모품으로 새것을 구매하기 아까워서’라고 답했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상품이라 중고를 구매한다”는 응답자도 7.8%였다. 옥션 중고 장터에서는 자전거, 피규어, 악기, 레저용품 등이 많이 검색되는 ‘핫이슈’로 올라 있다. 100만원 넘게 중고물품을 사고팔았다는 장성희(가명·37·간호사)씨는 번개장터에서 주로 화장품을 거래해왔다. 장씨는 “화장품 회사들이 계절마다 립스틱이며 아이섀도 색상을 달리해서 한정 상품으로 내는데, 혼자서 다 쓰기가 쉽지 않고 내게 어울리지 않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중고로 팔게 된다”고 했다. “요즘엔 아예 이렇게 출시되는 한정 립스틱이나 아이섀도를 잘라서 작은 케이스에 담아 중고 시장에서 나누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화장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할 화장품이라 부른다”고도 귀띔했다. 잘게 자른 몇천원짜리 화장품부터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골프채까지 중고 세상은 넓고 물건은 많다. 2014년 9월 중고옥션에는 한 판매자가 할아버지의 유품이라는 분청사기를 올렸고, 이 도자기는 2000만원에 팔렸다. 미국에서는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사이트 크레이그스리스트(www.craigslist.org)가 온라인 구인·구직이나 부동산 중개 등 생활정보 사이트로 발전했듯이 중고 시장 커뮤니티에는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판매물품도 많다. 전문판매자가 아닌 개인들만 가입, 판매할 수 있도록 한 모바일 중고거래 앱 헬로마켓에는 중고물품 못지않게 도움 거래도 활발하다. 이 앱의 ‘해드립니다’ 코너를 보면 “500원을 내면 아침마다 전화해서 깨워주는 모닝콜을 해주겠다”거나 “파워포인트 문서를 만들어주겠다”는 가벼운 심부름부터 “취미로 그림을 배웠는데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무료 재능 나눔이나 “영어를 가르쳐줄 테니 중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재능 교환 제안까지 있다. 헬로마켓 한상협 이사는 “2011년 9월 헬로마켓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땐 중고 장터로만 이용됐지만 중고 거래가 반복되면서 사용자들이 나름의 문화를 만들었다. 미국에선 개인간 거래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공유경제나 중개업자를 대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중고 시장이 발전하는데 한국도 그 시장을 따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중고 시장을 통해 재능을 공유하거나 물건을 판다고 해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중고 장터가 발전해 갈 것”이라고 했다. 쓰던 물건에서 쓰던 사람의 이야기로, 중고 시장이 커진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생활비를 보탠다기보다
저렴하게 물려주고 양도하는
순환경제에 가까워 번개장터, 중고옥션, 헬로마켓 등 스마트폰 앱으로 하는 중고 거래 서비스가 늘면서 중고 거래에 속도가 붙은 것도 한몫했다. 이 중 모바일 사용자가 가장 많은 번개장터를 모바일 앱으로 내려받은 사람이 2014년까지 550만명이다. 회원 1300만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는 운영자가 별도의 모바일 앱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에선 중고품 판매자와 바로바로 문자 채팅을 할 수 있고 전화번호로 판매자의 이력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량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중고 시장은 취미를 위한 시장이다. 지난해 9월, 옥션에서 회원 1330명을 대상으로 왜 중고를 사는지 물어보니 75.8%가 “저렴한 가격 때문”이고, 15.2%는 ‘소모품으로 새것을 구매하기 아까워서’라고 답했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상품이라 중고를 구매한다”는 응답자도 7.8%였다. 옥션 중고 장터에서는 자전거, 피규어, 악기, 레저용품 등이 많이 검색되는 ‘핫이슈’로 올라 있다. 100만원 넘게 중고물품을 사고팔았다는 장성희(가명·37·간호사)씨는 번개장터에서 주로 화장품을 거래해왔다. 장씨는 “화장품 회사들이 계절마다 립스틱이며 아이섀도 색상을 달리해서 한정 상품으로 내는데, 혼자서 다 쓰기가 쉽지 않고 내게 어울리지 않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중고로 팔게 된다”고 했다. “요즘엔 아예 이렇게 출시되는 한정 립스틱이나 아이섀도를 잘라서 작은 케이스에 담아 중고 시장에서 나누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화장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할 화장품이라 부른다”고도 귀띔했다. 잘게 자른 몇천원짜리 화장품부터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골프채까지 중고 세상은 넓고 물건은 많다. 2014년 9월 중고옥션에는 한 판매자가 할아버지의 유품이라는 분청사기를 올렸고, 이 도자기는 2000만원에 팔렸다. 미국에서는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사이트 크레이그스리스트(www.craigslist.org)가 온라인 구인·구직이나 부동산 중개 등 생활정보 사이트로 발전했듯이 중고 시장 커뮤니티에는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판매물품도 많다. 전문판매자가 아닌 개인들만 가입, 판매할 수 있도록 한 모바일 중고거래 앱 헬로마켓에는 중고물품 못지않게 도움 거래도 활발하다. 이 앱의 ‘해드립니다’ 코너를 보면 “500원을 내면 아침마다 전화해서 깨워주는 모닝콜을 해주겠다”거나 “파워포인트 문서를 만들어주겠다”는 가벼운 심부름부터 “취미로 그림을 배웠는데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무료 재능 나눔이나 “영어를 가르쳐줄 테니 중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재능 교환 제안까지 있다. 헬로마켓 한상협 이사는 “2011년 9월 헬로마켓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땐 중고 장터로만 이용됐지만 중고 거래가 반복되면서 사용자들이 나름의 문화를 만들었다. 미국에선 개인간 거래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공유경제나 중개업자를 대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중고 시장이 발전하는데 한국도 그 시장을 따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중고 시장을 통해 재능을 공유하거나 물건을 판다고 해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중고 장터가 발전해 갈 것”이라고 했다. 쓰던 물건에서 쓰던 사람의 이야기로, 중고 시장이 커진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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