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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믿기 어려운 사람이랍니다”

등록 2015-02-25 20:35수정 2015-02-26 15:08

한의사 정연호.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한의사 정연호.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아는데 안되는 습관 고치기
심리적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병 고치는 <아는데 안돼요> 저자 한의사 정연호씨 인터뷰
<아는데 안돼요>(지상사 펴냄)는 신문사 문화부 사무실로 배달된 수십권의 신간 더미 속에 있었다.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푹, 하고 웃어버렸다. 매일 화내고 후회하고, 술 마시고 후회하고, 많이 먹고 후회하는 나를 너무도 정직하게 표현한 문장이니 말이다. 검정 정자체로 쓰인 여섯 글자에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표지 하단의 문구를 보고 웃음을 멈췄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믿기 어렵다.” 책날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시야가 좁아지면 자신이 하는 노력만 볼 수 있을 뿐 과거부터 지속해온 고집은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나오는 말이 ‘아는데 안돼요’다.” 아무래도 이 책을 쓴 사람을 만나봐야겠군, 생각했다. 그리하여 부산에서 ‘마음편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정연호(41·사진)씨를 2월9일 서울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처음 만나 인사를 하는 순간 후회했다. 하얀 얼굴, 안경 너머 선한 눈매는 평온하기 그지없어 마치 “나는 아는데 안된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국선도로 오래 단련했다는 몸은 ‘몸매 변화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듯 날씬했다. 과연 그가 매일같이 노력해도 안되는 일상에 머리를 쥐어뜯는 ‘갑남을녀’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정신과 상담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아는데 안돼요’예요. 특히 강박증이나 불안증이 있는 사람들은 ‘아는데 안되는’ 상황에 더 많이 우울해하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글을 썼어요.” 허리가 아파 한의원을 찾는 사람도, 자궁에 문제가 있는 여성 환자도 상담을 하다보면 마음의 문제에 가닿았다고 한다. 한의사가 마음 치료에 작정하고 나선 까닭이다.

그에게 질문의 선수를 뺏겼다. “평온할 때와 감정이 흔들렸을 때의 내 모습 중, 어떤 게 내 수준일까요?” 뜨끔한 표정을 읽었다는 듯 그는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생각을 속이기는 상당히 쉬워요. 나는 안다, 나는 노력한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감정은 속일 수가 없어요. 좋아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잖아요? 내가 못난 행동을 했으면 내가 못난 거다, 그걸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속이기는 쉬워요
나는 안다, 나는 노력한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감정은 속일 수 없죠

질문의 주도권을 되찾아와 묻기 시작했다. 아는데 안되는 일이 ‘체중 감량(다이어트)’이라면? “다이어트야말로 심리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음식에 대한 욕구는 두 가지가 있어요. 정상적인 식욕과 식탐이죠. 요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로워서 먹고, 우울해서 먹고, 기뻐서 또 먹어요. 음식을 먹는 날 가만히 들여다보며 ‘내가 음식을 본래 목적 이외로 많이 썼구나, 당장 내 괴로움을 해소하려 먹은 음식이 내 몸을 안 좋게 하는구나’를 깨달아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늘 분노를 폭발시키는 자신이 싫다면? “평상심일 때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리 대비를 해두면 분노의 감정이 일었을 때 스스로 기분전환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잠시 그 장소를 벗어난다든지, 심호흡이나 숫자 세기 등을 한다든지 말이죠. 한발 물러난 다음 자기 수준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분노가 사그라들고 나면 또 자신을 성찰하고 공부하면 조금씩 나아집니다.”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과도하게 신경쓰는 자신 때문에 괴롭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운 걸까요?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짓을 해서 괴로운 거라면 이미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그 대가를 달게 받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요행히 지나가려는 심리는 오히려 나를 어렵게 만듭니다. 나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오해한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문제입니다. 현실에서 오해 없이 살아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힘을 길러나가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인식하고 끌어안는 일은 명상과 성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자꾸 술 먹고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 치욕을 기억해야 합니다. 술 취해 한 행동, 그게 내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충분히 부끄러워해야 변할 수 있습니다. ‘나도 다 안다, 다만 잘 안될 뿐이다, 나는 괜찮다’고 여기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가 제시하는 “아는데 안돼요” 처방은 간단하고 어떻게 보면 진부하기까지 하다. 첫번째, 명상.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생각을 초기화하는 거죠.” 다음으로 ‘공부’다. “지혜는 가만히 있는다고 키워지지 않아요. 지혜를 넓히기 위해 <논어>, <채근담> 등 동양 고전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이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한 약 처방이다.

최근에는 병원을 찾는 젊은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명확한 답을 적어내는 것만을 ‘선’이라 배우다 보니 애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대인기피증, 강박증 등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옆자리 친구가 따돌림에 힘들어하거나 세월호 사건 같은 큰 아픔을 목격해도 ‘넌 공부나 하라’고 등 떠미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 인간 본성인 측은지심이 억눌려 상처받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에 마음이 바빠졌다.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부부싸움 안 하시나요?” 반가운 답변이 들렸다. “저도 부부싸움 많이 해요.(웃음) 실전에 나가면 늘 흔들리는 게 사람이죠. 그래서 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를 계기로 성찰하며 발전하는 거죠.” 매일 아침 한 시간 명상을 하고 끊임없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도, 싸운다니. 이 사실에 기뻐하는 것 또한 ‘내 수준’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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