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디(D)타워에서 1~17일 열리는 루이뷔통 ‘시리즈 2’ 전시회.
루이뷔통, 서울서 대중에게 다가가가는 전시에 샤넬은 소수 초청자 대상 크루즈쇼…명품 브랜드의 영토확장 전략
#1. 4일 오후 6시40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아트홀 주변을 수백명이 둘러쌌다. 신원 확인이 돼야만 들어갈 수 있는 그곳 주변은 ‘초대받은 자’들을 동경하는 시선들로 가득 찼다. 종종걸음으로 출입구를 향해 가는 기자를 누군가 붙잡았다. “패션 사진 찍는 사람인데요, 인비테이션(초대장)을 (주는 기준을) 너무 세게 해서 제가 못 받았거든요. 그거 저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손에 들고 있던 초대장을 본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답하고 돌아서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빨강, 노랑, 꽃분홍, 초록, 파랑 등 알록달록한 색깔의 원형 의자 1000여개 위에 1000여개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놓여 있다. 기자라서 차지할 수 있었던 내 자리 하나를 찾아 앉았다. 배우 틸다 스윈턴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가스파르 윌리엘, 모델 지젤 번천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과 지드래곤, 최시원, 윤아, 고아성 등 국내 유명 연예인들이 들어오는 걸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빅앤트 대표 같은 재계 인사, 한 해에 이 브랜드에서만 구입하는 금액이 억대라고 알려진 중국 브이아이피(VIP) 고객 등도 제 의자를 찾아 앉았다. 다들 트위드 재킷이나 퀼팅백 하나씩은 걸치고 있어 이곳이 어떤 행사장인지를 실감케 했다. 예정된 시작 시간보다 50분 늦어진 7시50분. “왓 아이 민”(내가 뜻하는 것은)으로 시작되는 노래가 흐르고, 한복과 색동, 자개장식, 조각보, 누빔 등 한국의 전통 의상과 장식을 재해석한 옷들이 20분 가까이 런웨이를 누볐다. 마침내 전세계를 겨냥해 1년 딱 한번 열리는 ‘크루즈 컬렉션’을 끝낸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를 라거펠트가 등장하자 1000여명의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2. 서울 광화문의 거대한 건물 디(D)타워 벽면을 ‘LOUIS VUITTON’(루이뷔통)이라고 적힌 커다란 펼침막이 뒤덮었다. 루이뷔통에 ‘젊음’을 불어넣었던 마크 제이컵스에 이어 지난해부터 루이뷔통 여성복의 아티스틱 디렉터(수석 디자이너)를 맡은 니콜라 게스키에르가 루이뷔통에서 두번째로 선보인 컬렉션(2015 봄/여름 컬렉션)을 비롯해 앞으로 선보일 ‘니콜라 게스키에르의 루이뷔통’을 가늠케 하는 ‘시리즈 2’ 전시회를 알리는 펼침막이다. 지난 1일 시작해 17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무료 전시회다. 1854년 귀족들의 트렁크를 만드는 프랑스 파리의 조그마한 가게에서 시작해 오늘날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그룹이라는 ‘패션 제국’에 이르기까지 루이뷔통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여행’이다. 지난해 10월1일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에서 열린 2015 봄/여름 컬렉션에서 니콜라 게스키에르는 모델들이 “루이뷔통은 이동하지 않고도 우주의 어느 곳으로든 여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고 말하는 동영상으로 쇼를 시작했다. 광화문 전시회장에서도 이 동영상은 여러 겹의 조명판이 겹쳐 반짝이는 ‘LV’ 로고와 함께 관람객에게 “루이뷔통을 여행하라”고 유혹한다. 컬렉션에 쓰인 드레스와 구두, 가방을 각각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한 동영상, 관람객들 앞에서 직접 가방을 만들어 보이려고 루이뷔통 공방에서 광화문까지 날아온 장인들의 정교한 손놀림을 보면 ‘이래서 명품이라고 하는 건가’ 싶다. ‘장인 정신’이라고 이름 붙은 이 공간에는 “진정한 럭셔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광화문서 루이뷔통
장인정신 강조한 무료전시회 열어
지난해 DDP서 문화샤넬전 했던 샤넬
세계적 유명인 참석한 크루즈쇼 개최
전시회로 소비자의 외연 확장
쇼를 통해 특별한 계층 의미 부여
샤넬과 루이뷔통은 명품계의 대표선수라고 할 만한 양대 브랜드다. 같은 시기에 서울에서 열린 패션쇼와 전시회를 두고 그저 ‘전세계의 패션계가 서울을 주목하고 있다’고만 말하기에는 머리 한구석이 뻑적지근하다. 도대체 왜 그냥 쇼가 아니라 전시회인가? 샤넬은 지난해 9~10월 서울에서 ‘문화샤넬전’을 열었고, 디오르도 새달 20일부터 두달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전시회를 연다. 명품 브랜드가 일제히 서울에서 전시회를 하기로 도원결의를 한 게 아니라면 이런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시회라는 건 브랜드를 고상하게 알리는 대안적인 플랫폼이다. 브랜드가 판매하는 것은 그냥 비싼 상품이 아니라, 전시회를 할 수 있는 성격과 깊이를 가진 문화적인 상품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미술관, 박물관이 원래 전시를 통해 대중들의 감성과 감식안을 교육시키는 공간인데, 패션 브랜드는 이런 전시회를 열면서 ‘우리는 그런 교육을 시킬 수준의 문화가 있다’며 브랜드에 문화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서양에선 ‘사치품’(luxury·럭셔리)으로 부르지만 한국에선 ‘명품’으로 부르는 이런 브랜드는 가혹한 가격과 치열한 판매 경쟁으로 ‘공예’였던 패션을 상품화하고, ‘생필품’이었던 옷의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이 때문에 명품 브랜드들은 갈수록 자신들의 오랜 역사와 전통, 예술성을 강조하면서 ‘예술로서의 패션’을 부각시키려 하는데, 전시회는 이런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싸서 좋은 게 아니라 문화적인 가치가 있어서 좋은 것이라는 의미를 브랜드에 부여함으로써, 단지 비싼 옷을 사는 게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는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전략인 셈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멈추지 않는 것, 에르메스가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만들고 아틀리에를 만들어 다양한 미술 전시회를 여는 것도 같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시회는 명품 소비에 진입하는 나이를 낮추는 효과, 즉 명품 브랜드 소비자의 외연을 확대하는 효과도 있다. 루이뷔통은 전시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루이비통시리즈2’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3명을 추첨해 ‘시리즈3’의 전시회가 열릴 도시의 여행권을 주는 이벤트도 벌이고 있다. 인문학자인 이동섭 성신여대 강사는 “백화점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사야 되는 명품이, 전시회장이라는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으로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명품을 손쉽고 가깝게 생각하게 된다는 얘기다. 백화점이 아니라 전시회장을 찾는 건 대개 명품 주소비층이 아닌 20~30대인데 브랜드로선 자신들의 상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불황 탓에 명품 브랜드의 매출이 옛날 같지 않다는 현실적인 배경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옷을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겐 가방을, 가방을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겐 향수를 팔아온 것처럼 새로운 고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외연 확장의 대상으로 포섭됐다고 모두가 같은 계층으로 통합되는 건 물론 아니다. 선택받은 1000여명만 들어갈 수 있었던 샤넬의 쇼가 다시 확인시켜주는 건 명품 브랜드가 자본과 문화가 결합한 권력이 됐다는 사실이다. 명품 권력은 선택받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분명하게 구별짓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통찰처럼, 명품이라는 문화를 누리고 이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취향을 가진 이들은 ‘특별한 계층’으로 여겨지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이런 계층에 속하려고 끊임없이 욕망한다. 친구들과 계를 들고,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명품 가방을 사 드는 이들은 그렇게 탄생한다. ‘초대받지 못한 자’의 욕망은 힘이 세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루이뷔통·샤넬 제공
지난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샤넬의 ‘2015 크루즈 컬렉션’을 끝낸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사진 오른쪽)
장인정신 강조한 무료전시회 열어
지난해 DDP서 문화샤넬전 했던 샤넬
세계적 유명인 참석한 크루즈쇼 개최
전시회로 소비자의 외연 확장
쇼를 통해 특별한 계층 의미 부여
샤넬 크루즈 컬렉션에 참석한 가수 태양(왼쪽부터)과 지드래곤, 배우 틸다 스윈턴, 크리스틴 스튜어트.
서울 광화문 디(D)타워에서 1~17일 열리는 루이뷔통 ‘시리즈 2’ 전시회.
2015 샤넬 크루즈 컬렉션 의상들. 샤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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