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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맹 직장인도 그림으로 착착…기획력 높이는 ‘비주얼 싱킹’

등록 2015-07-08 20:32수정 2015-07-09 10:15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비주얼 싱킹’이 직장인과 교사 등에게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직장인 정다정씨가 ‘다시 사는 삶’을 주제로 한 사내 강의를 듣고 비주얼 싱킹으로 정리한 것. 정다정씨 제공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비주얼 싱킹’이 직장인과 교사 등에게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직장인 정다정씨가 ‘다시 사는 삶’을 주제로 한 사내 강의를 듣고 비주얼 싱킹으로 정리한 것. 정다정씨 제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비주얼 싱킹 배워보기
좌우뇌 동시에 활용해 기억력과 집중력 높여… 업무·학습 효율 따지는 직장인·교사들 주목
“지금까지는 우리의 꿈과 하루 일과를 그려봤었죠? 오늘은 그림카드로 이야기를 만들 거예요. 사람이 그려진 카드, 사물이 그려진 카드, 행동이 그려진 카드 중에서 각각 한 장씩 골라서 이야기를 만들면 돼요. 이야기를 먼저 만든 다음에,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겁니다.”(김해동 교사)

“그림카드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해요?”(지은(가명))

“어,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알려줄게.”(김 교사)

지난 3일 오후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선 ‘비주얼 싱킹’(visual thinking) 수업이 한창이었다. 비주얼 싱킹이란 ‘글과 그림을 이용해 생각을 정리하고 정보를 요약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활동’을 이른다. 가령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마주 보는 두 사람 사이에 빨간색 하트를 그려넣은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고, 복잡한 요리법은 각각의 단계와 재료, 조리기구 등을 간단하게 그리고 화살표로 순서를 표시한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문자를 발명하기 전엔 그림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것처럼, 소통에 있어 글보다 원초적이어서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활용하는 게 바로 비주얼 싱킹이다. 어렸을 때 쓰던 그림일기, 메시지를 그림과 약간의 글로 전달하는 신문의 만평을 생각하면 비주얼 싱킹의 개념을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그림과 글 동시에 이용
정보 전달력 극대화
넘쳐나는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직장인들
학습효과 높이고 싶은 교사에 인기

그림과 글은 각각 인간의 우뇌와 좌뇌가 담당하는 활동인데, 이 둘을 동시에 사용하면 두뇌 전체를 자극하게 돼 기억력과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전달력도 높아진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림과 글을 동시에 이용하는 비주얼 싱킹은 넘쳐나는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직장인들, 학습 효과를 높이고 싶어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비주얼 싱킹 수업에서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이는 김해동 교사. 박미향 기자
비주얼 싱킹 수업에서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이는 김해동 교사. 박미향 기자
김해동 교사가 동아리 활동 시간에 진행하는 이 학교의 비주얼 싱킹 수업엔 학생 4명이 참여하고 있다. 그중 셋은 시력이 매우 나빠 그림카드를 눈 바로 앞에 갖다 대야만 형체를 구별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비주얼 싱킹은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김 교사는 이날 수업에서 그림으로 표현하기 전에 ‘그림카드 보고 이야기 만들기’라는 창작 과정을 한 단계 더 넣었다.

그림카드가 안 보인다고 걱정한 지은이는 얼마 전 아예 시력을 잃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비주얼 싱킹을 시력이 약한 아이들이 한다는 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아이들은 능숙하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사람과 킥보드, 빨랫줄에 널린 빨래 카드를 집어든 지은이는 김 교사의 설명을 들은 뒤 “엄마 일을 도와 빨래를 널고, 밖에 나가서 킥보드를 탔어요”라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빨래가 널린 그림, 대문, 사람과 킥보드를 터치펜을 들고 순서대로 태블릿피시 위에 그렸다. “대문은 왜 그렸니?” 김 교사가 묻자 지은이는 “밖으로 나가는 거니까 문을 그려야죠” 한다.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깨미동)에서 활동하는 김 교사는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일에도 비주얼 싱킹을 활용한다.

‘비주얼 씽킹 수업 연구회’는 비주얼 싱킹을 수업에 활용하는 초·중등 교사들의 모임이다. 경기도 성남의 늘푸른중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우치갑 수석교사가 지난해 10월 학교 수업 때 적용했는데 학생들 반응이 좋았고, 이게 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의 교육청을 다니며 비주얼 싱킹 수업 연수도 하게 됐다. 현재 이 연구회에는 다양한 과목을 맡은 600명 가까운 교사들이 가입해 각자의 수업 사례와 학생들의 반응 등을 공유하면서 좀더 나은 비주얼 싱킹 수업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 11월에는 <비주얼 씽킹으로 수업하기>라는 책도 낼 예정이다.

‘비주얼 씽킹 수업 연구회’의 수업 사례집에 실린 학생의 작품. 우치갑 수석교사 제공
‘비주얼 씽킹 수업 연구회’의 수업 사례집에 실린 학생의 작품. 우치갑 수석교사 제공
‘비주얼 씽킹 수업 연구회’의 수업 사례집에 실린 학생의 작품. 우치갑 수석교사 제공
‘비주얼 씽킹 수업 연구회’의 수업 사례집에 실린 학생의 작품. 우치갑 수석교사 제공
사실 비주얼 싱킹을 먼저 도입한 쪽은 학교가 아니라 기업이다. 업무의 효율성과 능률을 중시하는 기업들이, 내부 회의 결과 등을 정확하게 공유하는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컴퓨터를 활용한 인포그래픽도 있지만, 인포그래픽을 만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별도의 프로그램 사용법도 익혀야 한다는 맹점이 있다. 하지만 비주얼 싱킹은 종이와 펜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없다.

한국다케다제약에서 일하는 정다정 홍보부장은 비주얼 싱킹을 업무에 제대로 활용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해 11월, 회사에 다니면서 ‘가볍게’ 들어볼 강좌가 없나 찾아보다 비주얼 싱킹 강좌를 들었는데 무척 재밌었다고 한다. 매달 이춘엽 사장이 사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다듬고, 이를 뉴스레터로 전하는 게 정 부장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인데, 이 메시지를 글과 그림으로 직접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 시간 배웠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림을 너무 잘 그릴 필요도 없었다. 결국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정리하는 게 중요한데, 홍보팀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훈련이 돼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뉴스레터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원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정 부장은 “작년에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안 해봐서 그럴 뿐이지, 우리 모두 글씨를 배우기 전엔 그림으로 뭔가를 표현하지 않았나. 좋은 생각은 반짝이는 전구를, 책은 책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처럼 자신만의 비주얼 단어장이 많으면 된다”고 했다. 정 부장은 뉴스레터뿐만 아니라 사내 강의나 중요한 강의를 들을 때, 책을 읽은 뒤에도 비주얼 싱킹으로 내용을 정리한다. 수업 시간에 강의를 듣고 필기를 하는 것처럼, 들었던 핵심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요약해두는 것이다. 그러면 기억하기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도 이해가 빠르다고 한다.

비주얼 싱킹을 아예 직업으로 삼은 이들도 있다. 최근 <비주얼 씽킹>이라는 책을 낸 정진호 제이(J)비주얼스쿨 대표는, 16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 지난해 4월 회사를 열고 비주얼 싱킹 강의를 시작했다. 기업, 공공기관 등을 상대로 하는 비주얼 싱킹 강좌는 보통 3시간 과정으로 진행된다.

회의 내용을 현장에서 바로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비주얼 퍼실리테이터(촉진자·조력자)’도 있다. 기업의 회의나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해, 핵심 내용을 실시간으로 글과 그림으로 정리하는 ‘그림 기록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1년부터 활동해온 인피플컨설팅의 이은현 수석은 국내 첫 비주얼 퍼실리테이터로 알려져 있다. 이 수석은 “비주얼 싱킹은 조각조각인 생각을 구조적으로 가시화하는 작업”이라며 “퍼실리테이터로서 회의를 기록하면서 소통을 돕다 보면, 말로만 대화할 때 생기는 오해가 사라지고 메시지가 명쾌하게 정리되고 공유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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