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가족여행은 어떻게 표현할까? 근력운동은?

등록 2015-07-08 20:42수정 2015-07-09 10:16

비주얼 싱킹은 집중력을 높이고 기억을 쉽게 해준다는 점 때문에 직장인과 학생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다. 사진은 정진호 제이비주얼스쿨 대표가 지난 6일 저녁 서울 동교동에서 비주얼 싱킹 워크숍을 열고 있는 모습.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비주얼 싱킹은 집중력을 높이고 기억을 쉽게 해준다는 점 때문에 직장인과 학생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다. 사진은 정진호 제이비주얼스쿨 대표가 지난 6일 저녁 서울 동교동에서 비주얼 싱킹 워크숍을 열고 있는 모습.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비주얼 싱킹 배워보기
조혜정 기자의 비주얼 싱킹 체험기… 잘 그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잘 전달되는 것
중학교 1학년 봄 사생대회를 갔을 때 처음 알았다. 나만 빼고 전부, 나무 몸통은 노란색, 갈색, 고동색 수채물감을 각각 물에 엷게 푼 뒤 겹쳐 발랐고, 잎은 연두색, 초록색, 붉은색 물감을 겹쳐 발라 투명한 느낌이 나면서도 입체감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몸통은 갈색, 잎은 초록색, 하늘은 하늘색으로 ‘단색 잔치’를 벌인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미술학원 현관문도 한번 밀어보지 못한 신세임을 고려해도, 유치원생 수준의 내 그림과 ‘어엿한 중학생’ 수준의 친구들 그림 사이에서 확인된 간극은 너무도 창피했다. 중3 때 단순한 직선 사이를 단색으로 정직하게 메우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따라 그린 시간을 제외하면, 학창 시절 내내 미술 시간과 사생대회는 자존감이 무너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사람 그리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정진호 대표.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사람 그리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정진호 대표.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고통의 시간 따위 잊어버리고도 남을 사반세기가 흐른 지난 6일 저녁,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비주얼 싱킹(visual thinking) 워크숍’에 참여했다. 정진호 ‘제이(J)비주얼스쿨’ 대표의 <비주얼 씽킹> 출간을 기념한 행사였는데, 주축인 20~40대 직장인·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 13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비주얼 싱킹은 글과 그림을 동시에 이용해 생각과 정보를 빠르고 간단하게 표현하는 겁니다. 생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거죠. 그림을 그리되 생각 없이 그리는 건 ‘낙서’예요. 그림을 잘 그리겠다는 욕심을 버리세요.” 정 대표는 비주얼 싱킹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인 그림이 중요하다면서도,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단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을 쓸 때 흔히 ‘글발’이라고 하는 유려한 문체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우선이듯, 사진을 찍을 때 빛의 양이나 구도보다 그 사진을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가 우선이듯, 비주얼 싱킹도 ‘메시지 전달’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단어를 모아 문장 만들듯
비주얼 유닛 모아 만든
‘비주얼 믹스’로 스토리텔링
표현하기 어려울 땐
아이콘 제공 사이트 도움얻기도

비주얼 싱킹 워크숍에 참여한 조혜정 기자.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비주얼 싱킹 워크숍에 참여한 조혜정 기자.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마음을 가다듬고 첫번째 과제를 받아들었다. 2분 동안 스케치북에 수저, 양말, 아이디어 등의 명사 10개를 적고, 각각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비주얼 싱킹에서 ‘비주얼 유닛’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글자로 치면 단어에 해당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네번째 단어인 스마트폰에서 막혔다.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 건데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했다. 시간이 없으니 대강 네모를 그린 뒤 안쪽 아랫부분에 타원형의 홈 버튼을 그린 뒤 다음으로 넘어갔다. 9번째인 비행기에서 또 난감해졌다. 유선형의 몸체와 출입구, 창문까지는 어떻게 그렸는데 옆 날개와 뒤 꼬리 부분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머리칼을 쥐어뜯다 비행기 꼬리인지, 물고기 꼬리인지 모를 그림을 그린 채 마지막 단어로 넘어갔다. 마지막은 화장실. 양변기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고 동그라미 하나를 그린 순간, 정 대표가 “화장실 표시 많이들 보셨죠?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는 거. 누가 봐도 여기가 화장실임을 알려주는 표시 말이에요” 한다. 앗!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실 표시 그림이 떠오르질 않는다. 머릿속이 눈앞에 놓인 스케치북처럼 하얘졌다. 그렇게 시간이 다 됐다. 글자 5점과 그림 5점으로 나눠 단어 하나당 10점씩, 모두 100점 만점에 93점이 나왔다. 정 대표가 “75점 이하로 받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자 130명 가운데 단 한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정 대표가 큰 소리로 밝게 말했다. “비주얼 싱킹은 여기서 75점 이상만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예요!”

정 대표의 설명에 따라 또다른 비주얼 유닛인 점, 선, 원, 구, 사람 등을 그렸다. 이번엔 정 대표가 미리 나눠준 자료에 그려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거였다. ‘따라 그리기쯤이야, 훗.’ 아니었다. 별도, 번개도, 내 맘대로 안 됐다. 쭉 뻗어야 하는 선은 불안하게 비뚤댔고, 꼭 맞아야 하는 모서리는 자꾸만 한 쪽이 더 길거나 짧았다. 강의 시간이 흐를수록 과제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졌다. 토스트 만드는 과정을 비주얼 싱킹으로 표현하란다. 단어를 모아 문장을 만들듯, 비주얼 유닛을 모아 ‘비주얼 믹스’를 만드는 과정이다. 똑같이 네모인 슬라이스 햄과 슬라이스 치즈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다 각각 ‘햄’과 ‘치즈’라고 단어를 쓰고 치웠다. 프라이팬과 접시는 아무리 그려도 비뚤어진 동그라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식빵 사이에 다른 재료들을 끼워넣는 과정의 그림은 제각각 정면과 옆쪽, 위쪽에서 볼 때의 모양으로 뒤죽박죽돼 피카소의 시선을 방불케 했다. 사반세기 전의 창피함이 배꼽 근처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비주얼 싱킹 워크숍에 참여한 조혜정 기자가 정리한 하반기 할 일.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비주얼 싱킹 워크숍에 참여한 조혜정 기자가 정리한 하반기 할 일.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몇 가지 과제를 더 따라 그려본 뒤, 이날 워크숍의 핵심인 ‘올해 하반기 할 일 7가지’ 그리기 차례가 됐다. 글로 치면 문단에 해당하는 ‘비주얼 메시지’를 표현하는 단계다. 생각해서 그려보고, 안 되면 다양한 아이콘을 제공하는 웹사이트 ‘더 나운 프로젝트’(thenounproject.com)를 참조해 따라 그려도 좋다고 했다. ‘매달 한차례 스쿠버 다이빙’을 간신히 그리고 나니, 두번째인 ‘가족여행’부터 손목을 잡았다. ‘더 나운 프로젝트’에서 ‘여행’(travel)을 검색하니, 공항에 있는 카트에 여행가방을 올려둔 아이콘이 눈에 띄었다. 영어 공부와 근력 운동 등 그다음 할 일들도 ‘더 나운 프로젝트’를 참조했다. 따라 그리기도 벅찼다. 결국 정해진 시간 안에 그린 그림은 4개에 그쳤다.

옆자리,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스케치북을 곁눈질해보니, 다들 나보다 나아 보였다. 그렇지만 내 스케치북을 다시 넘겨보니, 따라 그린 그림은 그렇게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정 대표가 말했다. “사람은 좌뇌형, 우뇌형이 있는데 타고날 때부터 우뇌형인 사람이 그림을 더 잘 그리는 건 맞아요. 하지만 전 손으로 하는 모든 기술은 연습하면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재능이 있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그림은 본능이거든요. 연습을 좀 하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비주얼 싱킹의 규칙을 알게 되면 재미가 붙으면서 더 잘 그리게 됩니다. 일단 그냥 해보고, 따라 그려보고, 매일 꾸준히 계속 그려보는 게 중요합니다.” 독학으로 비주얼 싱킹에 입문했을 때, 관련 책에 나온 그림들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베껴 그린 두꺼운 수첩도 펼쳐 보였다.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1.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ESC] 에로영화, 패러디 제목 총정리 2.

[ESC] 에로영화, 패러디 제목 총정리

우리, 꼰대는 되지 말자 3.

우리, 꼰대는 되지 말자

볼수록 총각은 결혼이 무서워 4.

볼수록 총각은 결혼이 무서워

스코틀랜드의 물과 보리·석탄이 빚은 술 [ESC] 5.

스코틀랜드의 물과 보리·석탄이 빚은 술 [ESC]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