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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안겼다, 숨이 쉬어진다

등록 2016-06-30 13:49수정 2016-06-30 17:27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스쿠버다이빙에 빠진 조혜정 기자의 서귀포 바닷속 여행
18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문섬과 새끼섬 사이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있는 조혜정 기자.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8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문섬과 새끼섬 사이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있는 조혜정 기자.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스으읍, 후우우우우우. 스으읍, 후우우우우우….”

숨쉬는 소리만 들린다. 폐를 돌아 입 밖으로 나온 공기가 방울방울 수면으로 떠올라간다. 나, 살아 있구나.

전두엽의 회로가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해, 온천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마냥 정수리에서 열기가 뿜어져나오는 날들이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누구 좋자고 이렇게 입에서 단내가 나야 하나, 속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이었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압박감은 내가 내뱉은 바닷속 공기방울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너무나 신비롭게.

17일 오전 제주 서귀포 문섬 앞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버가 유영하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7일 오전 제주 서귀포 문섬 앞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버가 유영하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18일 제주 서귀포 문섬과 새끼섬 사이 바닷속. 수십 차례 들어간 곳이지만 언제나 다른 느낌을 주는 그 바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겨우내 무성하던 갈조류가 녹는 시기, 물에 된장을 엷게 풀어 놓은 듯 시야가 좋지 않다. 스쿠버다이빙 업체가 가시거리를 최대치로 부풀려 말하는 ‘업자 시야’로도 10미터가 안 된다. 수온이 올랐다고는 해도, 수심을 타면 16도라 웨트슈트로는 조금 춥다. 제법 조류가 세기로 유명한 곳답게, 이날도 조류는 어김없다. 그것도 가는 방향의 반대인 역조류다. 다리를 아무리 세게 차도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강한 조류를 거슬러 가자니 헉헉, 금세 숨이 찬다. “아오, 힘들어!” 호흡기를 입에 문 채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물 밖에선 못할 일이다. 웃음이 난다. 머리가 비어간다.

시야 나빠도 수온 낮아도
연산호밭 물고기떼와 있으면
비어가는 머리 강해지는 마음
공기처럼 가벼워지는 일상

바위를 배경 삼아 전갱이떼가 은빛으로 반짝이며 군무를 춘다. 주걱치·용치놀래기 치어떼도 이에 질세라 감태밭 위에서 ‘댄스 배틀’을 벌인다. 유유자적 헤엄치며 놀고 있는 볼락, 쥐치, 달고기, 가시복, 거북복, 호박돔, 돌돔, 어랭놀래기에 아쉬울 만하면 등장하는 쏠배감펭과 능성어 구경까지, 바닷속을 온전히 즐기기도 바쁘다. 잡생각을 할 틈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노랑, 분홍, 하양, 보라, 말 그대로 형형색색 수지 맨드라미 산호와 흰색·초록색 해송, 주황색 가지에 흰 꽃이 핀 담홍말미잘이 화려한 색과 우아한 자태로 혼을 빼놓는다. 아직 채 녹지 않은 모자반은 그 긴 몸을 조류의 흐름에 맡기고 평화롭게 흔들린다.

16일 오후 제주 서귀포 문섬 앞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버가 유영하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6일 오후 제주 서귀포 문섬 앞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버가 유영하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문섬과 새끼섬 사이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있는 조혜정 기자.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문섬과 새끼섬 사이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있는 조혜정 기자.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마음이 편안해지니 돌 틈에 숨은 게, 손톱만한 갯민숭달팽이, 보호색을 띤 점감펭도 보이기 시작한다. 노란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갯민숭달팽이 두 마리가 마치 한 마리처럼 합체해 있기에 오른쪽으로 눈을 돌렸더니, 거기도 같은 녀석들 두 마리가 꼭 붙어 있다. 뭘 하는 중인진 몰라도 꽤나 다정해 보인다. ‘훗, 니들 지금 나 혼자 다닌다고 염장 지르는 거냐. 그래도 괜찮다, 뭐.’ 어라, 어느새 정신승리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마음에 힘이 붙는다.

다리가 네 개인 주황색 불가사리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나머지 하나가 잘려나간 게 아니라 원래 네 개짜리, 남과 조금 다른 모양으로 생긴 것 같다. 그래도 내 손바닥만한 크기까지 잘 자랐다. 돌 위에 뿌리를 박은 감태도 보인다. 2~3㎜나 될까 싶은 가느다란 뿌리로 억세게 돌에 붙박여 물고기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고, 조류에 밀리는 다이버의 밧줄이 되어준다. 맞다. 삶은 질기다. 스스로를 돕고 남을 돌보려면 질기게 살아야 한다.

18일 오후 제주 서귀포 문섬 앞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조혜정 기자(왼쪽)를 김원국 스쿠버라이프 대표가 프리다이빙을 하며 사진찍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8일 오후 제주 서귀포 문섬 앞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조혜정 기자(왼쪽)를 김원국 스쿠버라이프 대표가 프리다이빙을 하며 사진찍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입수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길, 아까 가는 길에 훼방을 놓던 역조류는 자연히 순조류가 됐다. 조류가 밀어주는 대로 슝슝, 몸이 난다. 출수 전 수심 5미터에서 3분 동안, 다이빙을 하는 동안 몸속에 쌓인 질소를 빼내려고 가만히 기다리는 안전정지 시간. 수면 쪽을 바라보니 빗방울이 떨어지며 셀 수 없이 많은 동심원을 그렸다 지운다. 온몸이 바닷물에 젖어 있으니, 물 밖으로 나가서도 마음껏 비를 맞을 수 있다. 장마 지나 여름 한가운데로 들어서면 바닷속 수온은 크게 오를 거고 시야도 좋아질 거다. 다시, 내 몸을 돌아 나온 공기방울이 보인다. 공기만큼 가볍게 수면으로 떠올라간다. 내가 뛰쳐나온 곳, 내가 올라가야 할 곳이다. 지겹고 소중해서 벗어나고 지켜야 할 일상, 다시 바다로 돌아오기 위해 그 일상에 공기처럼 스며들 시간이다.

서귀포/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18일 오후 제주 서귀포 앞 문섬 새끼섬에서  스쿠버다이버들이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8일 오후 제주 서귀포 앞 문섬 새끼섬에서 스쿠버다이버들이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6일 오후 제주 서귀포 문섬 앞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버가 유영하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6일 오후 제주 서귀포 문섬 앞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버가 유영하고 있다. 서귀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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