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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의 고향 시칠리아, 대자연을 말하다

등록 2017-07-12 20:40수정 2017-07-13 14:01

[ESC] 라이프 레시피

영화 <대부>이 촬영지 마시모 극장
트라파니 염전은 플라밍고도 찾아
누구나 시인이 되는 살리나섬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인 체팔루는 팔레르모에서 기차나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시칠리아 최대 휴양 도시인 이 곳에는 매년 여름마다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유럽 전역, 미국 등지에서도 이 곳을 찾는 이들로 북적인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인 체팔루는 팔레르모에서 기차나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시칠리아 최대 휴양 도시인 이 곳에는 매년 여름마다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유럽 전역, 미국 등지에서도 이 곳을 찾는 이들로 북적인다.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서 이탈리아를 말하지 마라.” 세계적 문학가 괴테는 죽기 3년 전 펴낸 <이탈리아 기행기>에 이렇게 썼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온갖 풍파를 헤쳐 온 시인이 시칠리아에 이토록 감탄한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지난 4월6일부터 8일간 시칠리아를 여행했다. 꼬깃꼬깃 구겨 감춰뒀던 감정들이 마구 터져 나오는 신기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나비 모양처럼 생긴 시칠리아는 누구라도 감성을 키울 수 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도시 어딜 가나 독특한 시칠리아만의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쉬었다. 시칠리아에 간다고 하니 지인들이 “마피아 조심해.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고”라고 겁을 줬다. 영화 <대부>의 영향으로 ‘시칠리아는 마피아의 도시’라는 인상이 강한 탓이다.

인천공항에서 13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시칠리아 팔레르모. 늦은 밤 도시는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으로 첫 인사를 했다. 마피아에 대한 걱정은 뒤로한 채, 시내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콰트로 칸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1층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여신이, 2층에는 시칠리아를 지배한 왕들이, 3층엔 산타 크리스티나 등 4명의 성녀 조각상이 있는 이 건축물이 팔레르모의 랜드마크다.

콰트로 칸티를 지나니 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 작은 상점이 양쪽으로 즐비하게 서 있는 마퀘다 거리가 나왔다. 연어 떼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피아가 걱정된다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야심한 시각에 거리를 활보할 수 없었을 테다.

지중해 최대의 섬인 시칠리아에서는 어디를 가나 에메랄드 빛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지중해 최대의 섬인 시칠리아에서는 어디를 가나 에메랄드 빛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거리 끝에는 영화 <대부3>에서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의 딸이 숨지는 비극적 장면이 나오는 마시모 극장이 우뚝 서 있었다. 1897년 완공한 마시모 극장은 오페라와 발레 전용 극장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유럽 전체에서도 세번째 규모다. 낮에 보는 마시모 극장도 웅대하지만, <대부3>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밤의 마시모 극장은 더 애틋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절절한 슬픔이 아른거리며 가슴이 아릿하다. 대형 돔 아래 6층 규모의 관람석이 원형으로 배치된 극장의 입장료는 단돈 8유로(한화 1만원).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콰트로 칸디. 이탈리어로 네 개의 모서리라는 의미다. 팔레르모 중심 사거리의 건물 모서리를 곡선 형태로 제작한 뒤 1층 계절의 여신을, 2층은 왕, 3층은 성녀의 조각상들을 만들어 넣었다.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콰트로 칸디. 이탈리어로 네 개의 모서리라는 의미다. 팔레르모 중심 사거리의 건물 모서리를 곡선 형태로 제작한 뒤 1층 계절의 여신을, 2층은 왕, 3층은 성녀의 조각상들을 만들어 넣었다.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고 그렇다고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닌데 이 많은 사람들은 이 시간에 왜 거리를 걸어 다니죠?” 현지 여행 가이드인 로베르토 에카르도에게 물었다. 마시모 극장 앞에는 늦은 밤에도 청년들이 계단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냥 어슬렁거리는 거죠. 우리는 이 거리를 ‘카사노 거리’라고 불러요. 팔레르모 사람들은 이 거리에 나와 걷는 걸 좋아해요.”

시칠리아인들의 식사 시간은 거의 2시간에 가까웠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흔히 이탈리아의 대표 음식으로 파스타를 꼽는다. 그러나 외식을 나와 파스타 하나만 달랑 먹는 이탈리아인은 없다. 코스 요리로 주로 즐기는데 양이 만만찮았다. 신선한 해물이나 채소로 이뤄진 전채요리를 먹고 나면 파스타나 리소토가 나온다. 그다음에는 본식인 육류나 생선 요리를 즐긴다. 당시는 참치가 많이 잡히는 철이라 참치 요리가 넘쳤다. 선홍색 치마저고리 같은 참치 스테이크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화룡점정은 디저트로 나오는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다. 리몬첼로나 아마로와 같은 알코올 음료도 미식의 즐거움을 더했다.

이탈리아 현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용주 코오페라 여행사 대표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후 4시면 퇴근하니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이루는 편”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이탈리아 공무원의 근무시간은 주 36시간이다.

16세기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분수를 볼 수 있는 시칠리아 프레토리아 광장.
16세기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분수를 볼 수 있는 시칠리아 프레토리아 광장.

눈이 반짝거렸다. 열정이 가득했다. 세계적 관광지의 가이드들은 기계적이고 감흥 없는 설명으로 여행을 지루하게 만들기 일쑤다. 시칠리아는 달랐다. 천일염으로 유명한 트라파니 소금박물관이나 시칠리아 와인의 대명사인 마르살라 지역의 플로리오 와이너리, 영화 <일 포스티노>의 촬영지인 살리나섬에서 만난 가이드들은 여행지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일 포스티노>는 칠레의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가난한 시칠리아 청년이 시를 통해 우정을 쌓는 영화다.

시칠리아 여행 박람회에서 만난 또띠 피스꼬보 박람회 조직위원장은 ‘시칠리아는 □다’의 빈 칸을 채워보라는 기자의 요청에 “시칠리아인이 있는 곳”이라고 채웠다. “기후가 완벽하다” “모든 세계가 있는 작은 세상이다”라는 시칠리아 관광청 국장 등의 답변과 달리 그는 유독 시칠리아 사람들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그가 말하는 시칠리아인의 특징은 창조적이고, 자존감이 높으며, 친화력이 높다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상점에서 만난 사람도, 관광지에서 “함께 셀카 찍자”고 제안하던 현지인도 한없이 친절했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종류는 다양하며 풍미가 좋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종류는 다양하며 풍미가 좋다.

팔레르모에서 서쪽 방향에 있는 트라파니 염전은 기원전 8세기 페니키아인들이 만들었다. 드넓은 염전에서 4단계로 나눠 소금을 생산하는데, 소금박물관에서는 염도가 다른 소금을 맛볼 수 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풍차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유럽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을 만들어낸다는 이곳에는 플라밍고도 찾아온다. 오렌지 향이 가미된 천일염 등 다양한 맛의 천일염을 살 수 있다.

트라파니 염전에서 나와 서쪽 해안을 따라 밑으로 더 내려가면 와인의 도시 마르살라가 있다. 마르살라 와인은 당도가 뛰어난 포도로 만들어 단맛이 강하고 알코올 도수도 15~20도로 높다. 세계적 색채연구소인 팬톤이 2015년 트렌드 컬러로 ‘마르살라’를 지정할 만큼 이곳 와인의 색깔은 독특하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플로리오 와이너리에 들러 거대한 오크통이 줄서 있는 와인저장고를 둘러봤다. 서늘한 와인저장고는 와인의 그윽한 향과 나무 향이 섞여 향기로웠다. 네가지 와인을 맛보았다.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어느새 와인 잔 바닥이 보였다. 이날은 하루종일 와인에 취해 다녔다.

이탈리아 콰트로 칸티의 아이스크림 가게.
이탈리아 콰트로 칸티의 아이스크림 가게.

<일 포스티노>의 촬영지 폴라라 마을이 있는 살리나섬은 시칠리아 북부에 있는 에올리에 제도에서 두번째로 큰 화산섬이다. 살리나섬에 가려면 시칠리아 동북부에 있는 밀라초에서 1시간 정도 쾌속선을 타고 리파리섬에 간 뒤, 또 배를 타고 40분 남짓 더 가야 한다. 폴라라 마을은 선착장의 반대편에 있어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어가는 수고를 거쳐야만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인 살리나섬의 가이드 리버 러시는 <일 포스티노>를 감동 깊게 봐 이 섬에 여행을 왔다가 시칠리아인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낭만이 가득한 살리나섬은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많았다. 화산섬에서만 볼 수 있는 거뭇거뭇한 돌과 야생성이 느껴지는 식물이 많았다. 비옥한 토양을 자랑하는 살리나섬에는 잘 정비된 포도밭도 펼쳐졌다. 한참을 올랐을까. 고갯마루에서 차가 멈췄다. 밑을 내려다보니 감탄사가 쏟아진다.

항아리 모양으로 움푹 파인 화산 분화구 가운데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었다. 마을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와 거대한 화산이 포근하게 안고 있는 마을에 산다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화 속 네루다 시인은 “시를 쓰고 싶어요.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라고 묻는 어부의 아들 마리오에게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해보게”라고 권했다. 햇볕에 반짝거리는 지중해 해변을 걸으며 자연이 주는 사랑을 온몸으로 받다 보면 사랑의 시를 저절로 읊게 되지 않을까.

사랑과 낭만이 느껴지는 도시라면 체팔루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인 체팔루는 반드시 다시 찾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팔레르모에서 기차나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체팔루는 시칠리아 최대 휴양도시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유럽 전역과 미국 등지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로 북적인다. 코발트색의 바다와 하얀 모래의 백사장 그리고 해변 끝자락에 위치한 빈티지 느낌의 마을은 조화롭다. 마을과 연결된 긴 방파제 끝까지 걷다 보면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낡은 건물조차도 영화 장면과 겹쳐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체팔루에서는 아랍과 노르만, 비잔틴 양식이 뒤섞인 두오모 성당과 한 폭의 그림 같은 라로카 바위 절벽도 인기 명소다.

시칠리아 와인의 대명사인 마르살라 지역의 플로리오 와이너리.
시칠리아 와인의 대명사인 마르살라 지역의 플로리오 와이너리.

시칠리아 여행의 마지막은 시칠리아 동부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타오르미나였다.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그리스 원형극장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호령하는 곳이었다. 보전 상태가 뛰어나 매년 여름, 오페라와 그리스 고전극, 콘서트, 영화 축제가 열린다.

소설가 김영하씨는 시칠리아 여행 뒤 쓴 기행 에세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언급한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삶과 정면으로 맞짱뜨는 야성을 잊어버렸고”,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고 고백했다.

소설가의 글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야말로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 돌아봤다. 떠오른 건 겸손의 미덕이었다. 거대한 거인이 엎드려 있는 듯한 바위산, 한 점 티 없이 맑은 파란 하늘,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빛 평야 등.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결국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시칠리아의 대자연 속에서 깨달았다.

시칠리아/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여행문의 시칠리아 관광청 누리집(www.visitasicilia.com), 여행사 코오페라(admin@cooper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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