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라거나 ‘뽀뽀하자’는 표현은 충격이랄 것도 없었다. 채팅창에서 주고받은 알몸과 속옷 차림의 사진이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딸의 휴대폰을 열었다가 미처 삭제되지 못한 ‘연애의 흔적’을 발견하기 전까지 이지희(가명·42)씨는 딸이 이런 식으로 ‘속을 썩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은 학교에서건 학원에서건 똑똑하고 모범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아이였다. “발육도 빠른 편이 아니었어요. 친구들은 대부분 브래지어를 하는데, 이제 막 브라캡이 내장된 러닝셔츠를 입기 시작했으니까요.”
이씨는 밤새 뒤척였다. 딸이 ‘남치니’(남친)라고 부르는 상대는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당장이라도 자초지종을 캐묻고 싶었지만, 기분대로 행동할 순 없는 일이었다. 알고 있는 티를 내자니 딸이 앞으로는 더 꽁꽁 숨기려 들 것 같았고, 그대로 두자니 충동적인 성관계 끝에 임신이라도 할까 싶어 두려웠다. 연락부터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용량이 지나치다는 핑계를 대며 휴대폰을 ‘압수’했다. “다음날 애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팔다리에 힘이 빠지더라고요. 감당이 안 되고,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자’를 제외하면 인간은 거의가 성적인 동물이다. 대체로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성욕을 가진 채 태어난다. 당연히 영유아나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성욕이나 성 기능이 없는 존재가 아닌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한다. 석달 전 초등학교 여성 교사와 6학년 남학생이 성관계를 가진 사건이 알려졌을 때 초등학생이 정말 발기와 삽입이 가능하냐며 놀라워하는 사람이 수두룩했으나, 영유아조차 자위와 발기를 하게 마련이며 하물며 초등학생이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통계를 한번 찾아볼까. 2016년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성관계를 경험한 십대들이 첫 관계를 한 나이는 13.1세였다. 2015년 ‘푸른아우성’에서는 십대 상담이 전체의 48%를 차지했으며, 1위가 ‘자녀의 성’, 2위가 자위, 3위가 성관계였다. ‘푸른아우성’은 성교육 강사로 유명한 구성애씨가 운영하는 성 포털사이트다.
더욱이 요즘은 ‘야동’(야한 동영상)으로 불리는 음란물을 접하는 것쯤은 일도 아닌 세상이다. 유튜브에만 접속해도 섹스 동영상이 차고 넘치다 보니 조금도 어려울 게 없다. 유치원생이건 초등학생이건 간단한 검색어를 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성인인증 절차가 있지 않으냐고? 로그인된 스마트기기로 접속하면 그만이다. 스마트폰이나 패드를 쓸 때마다 로그아웃하는 부모는 드물다. 설령 로그아웃했더라도 방심하기엔 이르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펼쳐지다가도 난데없이 음란물에 가까운 영상이 뜨기 일쑤인 곳이 바로 유튜브다.
부모들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만, 섹스가 그 누구에게도 미지의 영역이 아닌 것만큼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은 이미 손쓸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으며, 막고 싶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들의 인기검색어가 ‘수학 1단원 정답’과 ‘메이플스토리’(초등학생들의 인기 게임)로 시작해 ‘섹스 뜻’과 ‘컴퓨터 기록 지우는 법’으로 끝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들릴까. 박윤영(39·서초구)씨는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한 아들이 ‘야동’을 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제 핸드폰으로 섹스, 자위, 야동, 콘돔 같은 단어를 검색해봤더라고요. 유튜브 검색어였어요. 심지어 갤러리에는 ‘엄빠주의’라는 파일까지 있어서 기절할 지경이었는데, 그렇게라도 발각됐다는 사실이 지금은 다행스럽게 느껴져요. 아이가 그때 검색기록을 삭제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끝까지 안 걸렸을 테니까요.” 박씨는 그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성교육에 신경을 쓰게 됐고,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성교육 캠프에 아들과 함께 참가했다. “이제는 야동이 현실과는 다른 ‘가짜 성’이라는 것 정도는 분명히 알 거예요.”
남학생들 사이에서 성적인 콘텐츠를 공유하며 이따금 ‘영웅심리’를 뽐내는 문화는 여전히 보편적이다.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연령대는 어려졌고, 방식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성인용 영상물을 본 적 있는 초등학생은 2년 전보다 두 배가 넘게 늘었으며, 경로는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인터넷 실시간 방송, 에스엔에스(SNS)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을 둔 최현정(가명·40)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제 자식이라지만, 카카오톡이랑 페이스북 메신저로까지 파일을 뿌렸다는 걸 듣고 나니 한때의 치기나 장난이라기엔 도가 지나친 것 같아 이성을 잃어버렸어요.” 최씨가 담임교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하마터면 쓰러질 만큼 놀랐던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담임교사에 따르면 최씨의 아들은 그야말로 ‘성문화의 전도사’였다. 아들은 성관계를 어떻게 하는지 행동으로 묘사하고 다녔을 뿐 아니라 친구들을 모아놓고 직접 자위행위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언젠가부터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 하더니 성인물 보느라 그런 거였더라고요. 볼일 보는 척하면서 이어폰까지 챙겨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어요. 어떤 수위의 콘텐츠를, 얼마나 봤는지도 모르겠고, 혹시나 음란물 중독인가 싶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물론 최씨의 아들에게도 최초의 ‘계승자’는 있었다. 지난해 수학학원을 같이 다니던 ‘6학년 형’이었다. “형이 ‘너 섹스가 뭔지 아냐?’고 묻더니 음란물을 보여줬다더군요. 처음 볼 땐 무섭고 징그러웠는데 그 뒤론 자꾸만 찾아보고 싶어졌대요.”
성적 호기심을 느끼거나 음란물에 노출되는 나이가 갈수록 어려지는 현실에서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어떻게 이뤄질까? 아직도 알려주는 내용이라고는 추상적이면서도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는, 정자와 난자와 수정란 운운하는 게 전부일까? 요즘은 초등학교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해야 하지만, 학교 분위기나 교사의 역량에 따라 가르치는 내용은 천양지차였다. 솔직한 방식의 성교육을 꺼리는 부모들이 있는 탓에 교사가 움츠러드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정말로 일부 부모들은 솔직하면서도 이른 성교육이 괜한 호기심만 부추긴다고 우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만에! 빠르면 빠를수록,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효과적인 것이 바로 성교육이다.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유민식(39)씨는 말했다. “노르웨이는 초등학생에게 포르노에 가까운 직설적인 영상을 틀어주고, 독일은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고, 스웨덴은 스킨십을 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지 제대로 말하라고 가르쳐요. 괜한 호기심요? 성폭력과 십대 임신율이 제일 낮은 국가들이에요.”
지난 19일 ‘학원의 메카’인 서울 대치동 편의점에서 만난 5명의 남자 초등학생에게 교제하는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다들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에 멋을 낸 구석이라고는 없는 학생들이었다. 한참을 쭈뼛거리던 그들 중 한 명이 마침내 이렇게 답했다. “‘아다’에 ‘모쏠’(모태솔로)은 굴욕이죠. 그래서 전 굴욕 ‘찌질이’지만요.” ‘아다’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자, 안경을 쓴 다른 학생이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눈을 깜빡이면서 말했다. “섹스 못 해본 애요, 섹스, 모르세요? 영어로 에스 이 엑스!” 아이고, 깜짝이야. 도대체 섹스가 뭐길래?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