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티비시>(JTBC) <밥 사주는 예쁜 누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가장 좋은 건 ‘연하남’이라는 말, ‘연상연하 커플’이란 말이 사라지는 거야.” 5살 연하의 남자와 연애 중인 37살의 A는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렇다. 저 말들은 이성애 연애 관계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어리거나 적어도 같은 나이인 것이 정상 상태라는 혐의를 가지니까. 그러나 유독 한국 사회에선 ‘연하남’과의 연애가 여전히 특별한 일 취급을 받는다. 왜일까? 주도권을 가진 남성과 ‘오빠’에게 보호받는 여성이라는 보편적 연애 각본의 질서를 어지럽혀서? 그 혼란의 체험이, 누군가로 하여금 언제나 거기에 있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질서에 눈뜨게 할까 봐? 어느 쪽이든 강력한 남성 중심 사회인 한국에서 ‘연하남’과의 연애는 그 자체로 전복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애석하게도 그렇다. A가 요즘 즐겨 보고 있다는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분당 시청률이 높이 올라가는 것은 분명 두 남녀의 설레는 연애 체험일 테지만, 그 바깥을 두텁게 감싸고 있는 드라마의 중요한 다른 한 축은 윤진아(손예진)가 살아온 남성 사회다.
윤진아는 35살의 여성, 커피회사의 가맹운영팀 대리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일상이다.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들은 술을 따르고 탬버린을 쳐야 하며, 상사는 성추행을 일삼는다. 더 이상 특별한 일도 아니어서 여직원들 사이에서 그것은 그저 피하고 싶은 짜증나는 일이 된 지 오래다. 헤어진 남자는 그녀가 이제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곤약’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더니, 데이트 폭력을 저질러놓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제멋대로 확신한다.(“이것도 사랑이야!”) 주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이 든 여성에 대한 혐오를 자유롭게 늘어놓는다.(“5살 연상이라고? 미쳤냐? 나는 취미 없다.”) 가족이라고 다른가? 진아의 엄마는 “남의 집 딸들은 착착 제때 시집도 잘 가는데 너는…” 운운은 기본, 좋은 대학 출신에 좋은 집안이라는 이유로 헤어진 남자친구를 멋대로 집으로 불러들이고 스펙 좋은 사위만 얻을 수 있다면 그가 자기 딸을 두고 한눈을 팔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제이티비시> 드라마 <밥 사주는 예쁜 누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그녀는 그 모든 것이 공기처럼 만연한 세계에 산다. 그런 세계에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사는 것에 익숙한 인물이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듯이. 직장에서는 “윤탬버린”이라고 불리며 위아래로 치이는 신세이고, 옛 남자친구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경찰에 신고까지는 할 생각이 없다. 엄마의 닦달도 참고 들으면 그만이다.
그런 그녀가 가장 친한 친구의 동생인 서준희(정해인)를 만날 때만큼은 숨통이 트인다. 그들이 만나는 장면은 유독 맑은 공기의 필터를 끼운 듯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남성 사회에서 숨 막히고 외롭고 고단하게, 그러나 그것이 숨 막히고 외롭고 고단한 줄도 모르고 살아온 평범한 30대 중반의 여성이 자신도 모르게 뽑아 든 하나의 선택지일 것이다.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남성 사회에 지친 어떤 여성에겐, 단지 그가 연하라는 사실이 무의식중에 붙잡을 수 있는 가장 청량한 선택지일 수 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집어 든 그 선택지는, 그녀가 감당할 만한 규모의 사회적 금기에 부딪혀가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윤진아는 성추행이 일상인 상사와 함께 간 출장에서 회식을 거부하고 “노래방 가서 탬버린 치고 불쾌한 스킨십 참는 그런 거요? 저 이제 그딴 거 안 하려고요”라고 처음으로 선언한다. 밖에는 월차를 내고 출장에 따라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서준희가 있다. 그것은 분명 연애가 만들어낸 힘이고 사랑이 준 자유다. 이제 그녀에게는 이 사회에 그렇게 ‘적당히’ 손 비비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중요치 않아져 버리는 하나의 다른 세계가 막 생겨난 것이다. 그때 그녀의 연애는 외롭고 고단한 삶에 실용적인 에너지를 주며, 동시에 감독의 전작인 <밀회>의 김희애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근데 준희가 계속 진아를 ‘누나’라고 부를까? 얘네들 사이에서도 이제 곧 ‘이제 널 누나라고 안 부를게’라거나 ‘누나라고 그만 불러’ 같은 말이 나올까?”
<제이티비시> 드라마 <밥 사주는 예쁜 누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다시 A에게로 돌아와, 그녀는 드라마를 보며 그런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연하의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자신의 연애 패턴을 돌아보게 됐고,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자신이 보편적 연애 관계의 고정된 성 역할에 생각보다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 자신도 남들처럼 누나라고 불리기 싫었다는 것. 귀염받는 어린 여자이고 싶었다는 것. 누나라는 말을 듣는 것이 자신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일이라고 느꼈다는 것. 그리고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얘가 누나라고 부르는 거 싫어해”라고 말했을 때 뭔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
“연애에서만큼은 나도 모르게 강요된 여성성에 길들여져 있었던 거야. 그 애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깨닫고 난 뒤엔 오히려 커다란 자유를 얻었다. “우리 모두 연하남과 연애를 하자!” A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과연 남성 사회에서 연하남과 연애하는 일에는 다양한 의외의 기능들이 있는 것 같았다.
이로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