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권용득씨는 ‘권용득의 살림’을 ESC에 연재했을 정도로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다.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그에게 최근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부모로서 함께 생각해보자고 독자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다. 아들 친구 개똥이(가명)는 벌써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다기에 “너도 혹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느냐”고 무심코 물었을 뿐이다. 아들은 빨개진 얼굴을 끝내 감추지 못했고, 지난봄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여자아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 이름을 알려주면서 “절대 비밀”이라며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제 아들의 비밀을 꼭 지켜주시기 바란다.
아들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제 마음을 아직 고백하지 않았고, 고백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몇 주 전에는 그 여자아이와 짝꿍이 됐는데, 자기는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개똥이 녀석이 아들의 비밀을 폭로하는 바람에 아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적잖이 놀림을 받았던 모양이다. 개똥이랑 당장 절교하겠다나 뭐라나. 아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말순이(가명) 좋아하는 건 내 마음이잖아! 그건 자유잖아!”
아들은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급기야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아내와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흥분한 아들을 달래야만 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닥칠 줄 알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칠 줄 몰랐다. 한 번도 가르쳐준 적 없는 걸 스스로 배우고 있는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아들이 혹시 주변 친구들의 놀림으로 엉뚱하게 말순이를 괴롭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까. 나눗셈도 잘 안 되는 아들에게 차라리 미적분을 가르치는 일이 쉬울 것 같았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고, 그래서일까. 과거 어른들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짓궂게 괴롭히면 여자아이에게 “걔가 너 좋아서 그러는 거야”라며 웃어넘겼다. 대부분 남자아이들은 좋아하면 그래도 되는 줄 알았고, 그 남자아이들이 자라서 여자 친구가 제 마음을 몰라준다며 여자 친구를 때리고 목숨까지 빼앗는 일도 있다. 안타깝게도 그와 같은 데이트 폭력 사건은 더 이상 놀라운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여성은 상대적 약자이므로 무조건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가르쳐야 할까. 사실 그 불문율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여성을 통제하거나 억압하기 일쑤였다. 다시 말해 그 불문율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 남성이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무엇보다 성별을 선택한 적 없는 아이들에게 성별의 차이부터 가르치는 일은 차별로 이어지기에 십상이다. 가령 요즘 아이들이 형편의 차이로 친구를 구분하고 판단하듯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생각보다 쉽게 물든다.
게다가 최근에는 역차별을 호소하며 여성 혐오 콘텐츠를 즐기는 남자아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학교마다 그 어느 때보다 성 평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아이들을 가르칠 텐데, 아이러니한 일이다. 일면 이해도 간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무리 훌륭한 성 평등 교육을 받더라도 학교 밖 현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뭇 다르다. 평일 오후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는 쪽은 주로 엄마들 아니면 할머니들이고, 티브이(TV)만 켜도 성 역할 고정관념이 안일하게 반영된 애니메이션투성이다. 적어도 10년 동안 학부모로서 내가 보고 겪은 우리 사회는 그랬다.
물론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나도 아들만 했을 때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었고, 그 여자아이가 행여 내게 말이라도 걸면 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힘들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자연스러움을 거부하지 않는 아들을 있는 힘껏 축복해주고 싶다. 다만 아들이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갈등이 생겼을 때 “내 아이는 그럴 리 없다”며 펄쩍 뛰는 부모가 되고 싶진 않았다. 이왕이면 아들에게 성별의 차이나 형편의 차이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부터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준비돼 있어야 한다. 말했다시피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생각보다 쉽게 물들고, 부모는 그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어른이다. 부모가 먼저 서로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성 역할로부터 자유롭다면, 아이들에게 굳이 성 평등 교육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성 평등 교육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계적으로 하지 말자는 얘기다. 부모가 먼저 바뀌자는 얘기다.
말순이는 지난주에 다시 전학 갔다고 한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은 졸지에 이별까지 속성으로 경험한 셈인데, 다행히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말순이랑 유튜브 계정을 같이 구독 중이라나 뭐라나, 댓글로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내가 아들만 했을 때는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전학 가면 그 길로 끝이었는데,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소영아, 잘 사냐?) 또 아들은 제 비밀을 폭로했던 개똥이랑 절교하지 않았고, 개똥이는 사귀던 여자 친구와 “깨졌다”고 했다. 왜 깨졌냐고 물었더니 개똥이는 “귀찮아서”라고 짧게 대답했다. 나는 개똥이 말이 대번에 이해가 갔다. 포켓몬 카드 모으고 게임을 할 시간도 모자랄 텐데, 연애라니. 여유롭지 못하면 어떤 연애든 힘들 수밖에 없다. 연애의 기본인 존중은 마음의 여유로부터 출발하니까.
권용득(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