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세계 명작으로 꼽히는 ‘고전’ 소설 중 남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과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같은 소설들이 떠오른다. 우연이겠으나, 남성이 여성을 내세운 작품들에서는 유난히 여자들이 많이 죽는다. 불륜을 저질러서 죽는다는 인과응보식 서사의 경우도 불륜 상대인 남자는 안 죽어도 여자는 죽는다. 소설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던 19세기에 여자가 죽지 않는 이야기는 많지도 않았던 여자 작가들이 주로 썼고, 그들의 여주인공은 가부장제 안에서이긴 해도 행복에 가까운 무언가를 성취하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리고 2018년. 상업영화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를 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200년 전 문학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영화계는 지독할 정도로 ‘남초’ 사회다. 여자 주인공은 주로 남자 주인공의 사랑의 대상 혹은 섹스의 상대로 등장한다. 여자가 알아서 뭐든 해나가는 이야기는 지독할 정도로 적은데 2010년대가 되어 남성 주인공의 시리즈를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로 다시 쓰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남성이 주인공인 시리즈를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시 만든다. 11년 만에 시리즈 네 번째 영화로 만들어진 <오션스8>이다. 큰돈이나 거액의 물건을 강탈하는 모의와 실행 과정을 보여주는 범죄영화의 하위 장르인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도둑질 영화) 시리즈인 <오션스> 3부작 이후 만들어진 <오션스8>은 일당의 중심이었던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의 자리에 그의 여동생 데비 오션(샌드라 불럭)을 놓았다. 5년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데비는 여성 8인조를 구성해 1억5천만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투생’을 손에 넣을 계획을 세운다.
아, 이것은 정말이지 뻔한 이야기다. 근심 걱정 없이 극장에 들어가 한탕 하는 이야기 관람하기. 원래 <오션스> 시리즈는 그런 맛으로 유명했다. 남성 11인조로 시작했던 시리즈가 여성 8인조 이야기로 바뀐 뒤, 어느 게시판에서는 ‘여자들끼리 저런 큰 규모의 범죄를 저지른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최순실 사태’를 겪은 나라에서 하기엔 부적절한 비판이다. 또한 ‘영화에 깊이가 없어졌다’라는 지적도 있는데, 오리지널 시리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성찰, 캐릭터의 성장,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오션스> 시리즈의 힘이었던 적이 없다. 여성이 주인공이 되면 갑자기 작품에 깊이가 없다며 투덜거리는 남성 관객들의 아우성은 ‘젠더 스와프’(주인공의 성별 바꾸기)의 시대에 고찰해볼 만한 일이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로 다시 시작된 <스타워즈> 시리즈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경우도, 은하계를 무대로 한 남성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여성 주인공으로 바꾸면서 기존 팬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비판 중 다수는 ‘어딘가 이상하다’로 요약되는데, 여성이 중심에 선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가 아닌 성장과 액션을 중심에 둔 서사라는 데 낯설어하는 듯 보인다.
폴 페이그 감독이 연출하고 멜리사 매카시, 케이트 매키넌, 크리스틴 위그가 출연한 <고스트버스터즈>(2016)는 1984년작 <고스트버스터즈> 팬들의 비난(비판이 아니다)과 여성 팬들의 지지를 동시에 받았던 영화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성장하는 주인공의 자리에 여성이 자리했다면, 새로 만들어진 <고스트버스터즈>는 여타 코미디 영화의 남성 주인공처럼 ‘한심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의 눈요깃감으로 근육질 미남이 등장해 접수원으로 일한다. ‘글래머 여비서’의 클리셰(상투적인 장치)가 성별만 바뀌어 제시되는 셈이다.
어머니 혹은 창녀 역할의 변주에 머물렀던 영화 속 여성들이 남성 못지않은 범죄자로, 악당으로, 영웅으로, 동네 바보들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남성의 자리를 여성으로 대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새롭게 여성의 자리를 창조해야 한다.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상상하기 위해 남성을 여성으로 바꿔 상상해보는 작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다혜(작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