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사랑의 다른 출발점이다. 인생사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이별의 고통에 허우적댄다. 하지만 이별에 대처하는 법을 곧 터득해 자기만의 갑옷을 입고 스스로 보호한다. 재밌는 사실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있을 정도로 남녀가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현실 연애를 잘 녹여낸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 여자 주인공 장영(김민희)은 겉으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별하는 게 낫다고 위안하면서 실상은 혼술로 밤을 지새우는 등 심리적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달콤한 사랑의 여운보다 더 길고 긴 고통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 자책도 한다. 반면 남자 주인공인 이동희(이민기)는 ‘해방, 자유’ 등을 외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다른 여자와 미팅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서서히 이별의 아픔을 느끼고 지질한 짓을 한다. 장영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남자를 구타하거나 늦은 밤 전화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 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장영은 다른 이성을 만나면서 동희를 서서히 지워간다.
이런 차이는 이별 노래에서도 잘 나타난다. 노래방 기기 업체인 태진미디어 누리집에는 2016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노래방 인기 순위에 오른 곡이 공개돼 있다. 15위까지 오른 노래 중에 눈에 띄는 곡은 2003년 발표된 임창정의 ‘소주 한잔’과 빅마마의 ‘체념’이다. 순위에 오른 노래 대부분이 최신 히트곡인데 반해서 이 두 곡은 15년 전 유행한 곡이다. ‘소주 한잔’은 뒤늦은 후회로 지질한 짓을 하는 남자의 심정을, ‘체념’은 이별하자마자 하는 여자의 후회를 담았다. 이 두 노래에 감정이입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소리다. 남녀는 왜 이별에 대처하는 법이 다를까?
화성에서 온 남자의 이별하는 법
대학생 정찬혁(25?가명)씨는 새내기 캠퍼스 커플이었다. 그는 처음 하는 연애였기에 매우 서툴렀다. 여자에게 상처만 준 꼴이 되면서 헤어졌다. 이별 후 그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단톡방에 메시지를 날리는 것. ‘술 마실 사람? 나 헤어졌다. 시간 많다.’ ‘왜 헤어졌어? 마음 많이 아프겠다’는 식의 공감 문자는 없었다. 그는 친구들과 매일 술잔을 기울이며 진한 우정을 다졌다. 친구들 앞에서 절대로 이별했다고 아파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게임도 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책도 몰아봤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지나자 빈자리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그녀의 에스엔에스 계정에 들어가 훔쳐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허전한 마음이 극에 달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말았다. ‘잘 지내니’란 카톡을 보낸 것이다. 그녀는 메시지를 봤지만 영원히 답은 오지 않았다.
금성에서 온 여자의 이별하는 법
직장인 박선영(26·가명)씨는 현재 이별 1년 차다. 선박기관사였던 남자친구의 잦은 출항은 ‘연애는 기본적으로 자주 봐야 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무너뜨렸다. 서로에 대한 마음도 크지 않다는 판단이 들자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뜻밖에 고통이 밀려왔다. 그에게 계속 전화하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연락을 기다렸다. 넉 달 동안 심장병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고 울면서 잠들곤 했다. 노래 ‘체념’을 부르며 자책했다. 심지어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을 검은색으로 바꿔보라고 했던 그의 말이 생각나 색도 바꿨다. 하지만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뿐이라는 말처럼 박씨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헤어진 지 일곱 달째 되던 때부터 서서히 고통이 사라졌다. 친구들과 이별의 고통을 나눈 것이 도움이 됐다. ‘왜 헤어졌어?’라는 친구의 질문에 박씨는 차근차근 설명했고, 마음의 상태를 숨기지 않았다.
남녀의 다른 이별법···이유는?
‘연애학개론’ 강의로 20대들에게 인기가 높은 동국대 다르마칼리지(교양교육대) 장재숙 교수는 “남자는 연애 자체가 자신을 구속하고 속박한다고 느끼는 경우 여성보다 많다. 그래서 이별한 초창기엔 별로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친구들과 헤어진 이유 등을 공유하지 않는다. 이유나 문제점 등은 조용히 (심리적인)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거의 잊혀진다. 결국 연애의 좋았던 잔상들만 문득문득 떠올라 (감정적으로 그리워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여자는 남자보다 연애 상대를 심사숙고해서 고른다고 한다. “임신에 대한 부담 등으로, 상대가 믿을 만한 대상이라는 확신을 들 때까지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이라며 말한다. “어렵게 고민해 선택한 상대와 이별하니 상대적 허탈감이 빨리 찾아온다”고 한다.
장 교수는 현명하게 이별하기 위해서는 “이별에 대해 이분법적 사고를 하지 않는 것”을 핵심으로 꼽았다. “이별을 경험하면 ‘내가 뭘 잘할 수 있겠어’, ‘난 뭘 해도 문제야’라며 부정적인 사고에 빠지기 쉬운데, 사랑도 이별도 삶의 일부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면서 “자학하거나 자책하는 생각만 안 해도 이별이 그토록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별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민석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