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결혼한 여자입니다. 24개월이 막 지난 딸도 있습니다. 남편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아내와 아기가 없는 듯싶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여자도 저처럼 ‘남편’이란 사람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제 남편이 저에게 헤어짐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한 달 전 집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이혼해주지 않으면 나가겠다고 하니 “그러면 나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기의 생일에 전화가 왔습니다. 자신을 놓아달라며 이 생활이 너무 편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요. 저희는 7년 전에 만나 사랑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오랜만의 사랑이라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고 그 또한 저와 같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기가 생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와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는 ‘걱정’이라는 단어로만 먼저 다가와, 생긴 아기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에 결혼했습니다. 그동안 전 점차 외로움이란 게 생겼습니다. 그가 예전 같지 않았고, 결혼 며칠 전 다른 여자와 밤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마 말을 못했습니다. 그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말을 못했습니다. 결혼 뒤 6개월쯤 지나 아기가 생기고 지독한 입덧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게 정말 잘해주는 남편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입덧이 끝날 때쯤 우연히 남편에게 ‘ㄴㄴ’라는 여자의 문자가 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이끌림에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적 끝에 한 기혼자 매칭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알게 된 사실을 말했습니다. 결론이 나기 전까지 저는 계속 추측하고, 그는 ‘ㄴㄴ’을 계속 만났죠. 그에게 확실한 증거를 대며 말하니 맞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는 안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한 달 정도 뒤에 끝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진짜 저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채 아기를 낳아야 했고, 임신 중 죽고 싶었습니다.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 ‘그녀’라는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만난 지 5~6개월로 추정하지만 더 길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듭니다.
이번엔 회사 사람이니 말입니다. 남편은 현장을 다녀야 해서, 그곳에 가면 평일에 2, 3번 집에 왔고 저는 혼자 육아를 담당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그 외로움이 그에게도 생겼을 것 같지만, 그는 외로움을 다른 사람과 만나 해결하려 했으며, 전 그럴수록 더 외로워졌던 거 같습니다.
그는 지금 저와 헤어지려는 게 그녀와 상관없다고 합니다. 제가 싫어졌다 말합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이제 제가 다 싫다고 합니다. 행복했던 때는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잊고 싶은 건지 말이죠.
그가 만났던 ‘그녀들’은 다 예쁘네요. 저는 살도 찌고, 못생긴 것만 같고 위축이 됩니다. 저를 보고 웃지 않는 남편을 보며 자살 충동이 오고, 힘들어 상담도 받고 있지만 차선책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의 마음이 아직까진 확고한 상태라.
주변 사람들은 다들 저에게 헤어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 헤어짐을 겪고 싶지 않은 아기의 엄마, 여자입니다. 아직 그를 사랑해서 놓지 못하고 있고, 이혼 자체의 두려움도 큽니다. 세상의 눈이, 아기가 맞을 미래의 모습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텁텁한 마음에 글을 씁니다. 이혼이 저의 미래일까요. 제가 정하게 될 미래이지만 묻게 되는 저의 마음을 이해하실까요.
헤어짐을 겪고 싶지 않은 여자
A 불행해지기 위해서 하는 선택 같은 건 세상에 없습니다. 아주 작은 선택이라 해도,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자신에게 더 좋은 결과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런 결정을 하죠. 하지만 의도가 그랬다고 해서, 결과가 언제나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그가 결혼 며칠 전에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와 결혼하기로 한 어려운 선택을 했을 때조차, 당신에게는 이 선택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커다란 의지와 의도가 있었을 거란 말입니다.
하지만 어쩌죠. 그 선택은 당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행으로 향하는 선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그의 부정을 눈감아 주면, ‘그래도 결혼 후에는 괜찮겠지', ‘결혼하면 변화하겠지'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결혼 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이었으니까요.
만약 당신과 사업을 함께하고 있는 누군가가 당신과의 기본적인 계약 조건을 지키지 않고 당신에게 커다란 손실을 끼치고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으세요? 당연히 그 계약을 파기하고 혼자서라도 잘 지내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결혼이란 한 사람과 인생을 걸고 가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기에 하다가 수틀리면 말 수도 있는 사업보다 훨씬 묵직한 무엇인데, 어째서 당신은 인생에 큰 괴로움을 일으키는 이 관계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우리가 ‘감정'을 갖기 때문입니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상대방에 대한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지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에게 더 많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정작 나는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상처는 깊어지고 곪아 터질 지경인데, 그에 대한 ‘감정'이 나의 상처를 외면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합니다. 애초에 처음 깊은 칼자국을 남긴 것은 그 사람일지 모르지만, 상처를 방치하고 곪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지 말이죠. 그게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결혼 전에 이미 신뢰를 깨는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고도 묵인하고 결혼을 감행한 당신에게는 책임이 없을까요? 깊은 슬픔이 있었을 텐데도 그 슬픔을 외면하고 그저 그와 파트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당신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선택이 처음의 칼자국을 곪게 만들었지요. 그를 너무 사랑해서 내린 선택이었겠지만, 적어도 그 선택은 당신에게 옳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신 마음속의 ‘손실 혐오' 때문입니다. 10만큼의 행복을 얻을 때보다, 10만큼의 행복을 잃을 때 우리는 그 손실을 더 아프게 인식합니다. 즉, 그를 이렇게 보내주면 지금까지 당신이 투자했던 인생, 앞으로 기대했던 시간을 모두 잃게 될 거라는 계산이 당신에게 너무 큰 것이지요. 그에 대한 애증과 ‘언젠가는 돌아오겠지'라는 일말의 기대감, 그리고 홀로서기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존재라는 생각이 복잡하게 엉켜 스스로 아무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가고 있네요.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습니까. 이렇게도 살 수 없고, 저렇게도 살 수 없다는 느낌이 드시나요? 하지만 저는 해결책도 지침 같은 것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몇 가지 생각할 주제만 드리고 싶습니다. 생각 속에서 맴맴 돌 때,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 때론 모든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 언제까지 나의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을, 함께 공유할 가치가 없는 사람과 함께할 작정인가요.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배우자로서 아이를 함께 돌보지도 않고, 이젠 대화도 안 통하고 ‘당신이 싫어졌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곁에 두어서 당신이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요? 이미 구멍이 나버린 물병을 온몸으로 막고 사는 것이 당신의 존재 가치가 되는 것이 당신에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너무도 불행하지만 ‘아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것이 당신의 행복에 기여하나요? 이렇게 사는 엄마를 곁에서 지켜볼 아이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당장 네다섯 살쯤만 되어도, 아이들은 그 불편하고 불행한 공기를 전부 알아챕니다. 당신이 견디듯 살겠다고 결정하면, 아이도 견뎌내듯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이런 식으로 살다 마지막 날이 오는 것이,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이와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너를 싫다고 하는 남자지만 그래도 같이 살라고 말할 건가요, 너 자신의 힘을 믿고 이 관계로부터 독립하라고 힘을 줄 겁니까. 기억하세요. 곪은 상처를 도려내면, 내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무조건 새 살이 돋겠죠. 방치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잠식합니다.
곽정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