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를 수확하는 농기구 셰이커 아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아몬드 열매. 사진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제공
견과류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고소함 때문만은 아니다. 질 좋은 불포화지방과 비타민, 단백질과 식이섬유까지 풍부한 견과류는 이른바 ‘슈퍼 푸드’로 꼽혀 그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견과류 중 아몬드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먹을거리 중 하나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연간 소비량은 2017년 기준 2만5천톤에 이른다. 한국인이 먹는 수만톤의 아몬드 대부분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다. 아몬드의 세계 최대 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를 추수기인 지난 8월 말 찾았다. 미국의 아몬드가 한국의 우리네 식탁에 오르는 여정을 쫓았다.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정말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몇 년 전 식이조절 중에 간식으로 좋다기에 고소한 ‘아몬드’를 한 줌씩 챙겨 먹기 시작했을 때도 그런 순간이었다. ‘아몬드 부스러기에도 입맛을 다시던 내가 아몬드를 통째로 먹을 수 있다니!’ 내심 뿌듯했다.
아몬드를 처음 먹어본 기억을 더듬어 본다. 시리얼 중에 얇게 잘린 아몬드가 들어있는 제품이 있다. 거기에 든 아몬드는 너무 달콤하고 고소했다. 시리얼 한 줌을 그릇에 담을 때면 아몬드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으려고 봉투 안을 뒤적였다.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더 지나 그 아몬드의 고향에 섰다. 여름 끝자락인 8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의 센트럴밸리 지역. 아침 햇볕이 따가운 가운데 건조하고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샌프란시스코 만을 옆에 둔 센트럴밸리는 여름에는 건조하고 겨울에는 습한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띤다. 이곳은 ‘세계의 과일 바구니’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이 생산된다.
대규모 아몬드 농장과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데이브 피픈씨. 사진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아몬드 나무가 끝없이 이어진다.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농장은 6800여 곳. 이 가운데 센트럴밸리의 만테카에서 3대째 아몬드 농장인 트라밸리앤드피픈(Travaille&Phippen)을 운영하는 데이브 피픈(68)을 만났다. 그는 1600에이커(6.5㎢) 규모의 농장과 함께 아몬드 후처리 가공공장까지 운영해 생산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아버지 때는 1에이커(4046㎡)당 1200파운드(544kg)의 아몬드를 수확했다. 그런데 이제는 2000파운드(907kg)의 아몬드를 생산한다. 반면 아몬드 농사에 쓰이는 물의 양은 3분의 1로 줄였다.” 푸근하게만 보였던 피픈의 얼굴에 치열함과 자부심이 읽혔다. 아무리 좋은 토양과 기후라고 해도, 과실이 저절로 얻어질 리 없다. 그는 이어 “목표는 에이커 당 생산량을 3000파운드(1360kg)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아몬드 농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아마 그 목표는 4세대인 딸과 사위 대에서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안내로 트라밸리앤드피픈 아몬드 농장에 내렸을 때 18만여 그루의 아몬드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이따금 들릴 뿐 고요했다. 그러다 피픈이 가리키는 쪽을 봤더니 작은 모래 폭풍이 이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몬드 폭풍’이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아몬드 나무 밑동을 흔들어 열매를 떨어트리는 농기계 셰이커(Shaker)가 큰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후두두, 후두두” 굵은 소나기가 내리는 소리를 내며 아몬드 열매가 나무 아래 가득 떨어졌다. 아몬드 폭풍의 정체는 건조한 땅에 아몬드가 떨어지며 인 흙먼지였다. 흙먼지가 조금 가라앉자 살짝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떨어진 아몬드 열매를 주워 딱딱한 껍질의 냄새를 맡아보니 복숭아 향기가 났다. 과육에서도 고소함보다는 상큼함이 먼저 느껴졌다. 피픈은 “아몬드 나무는 복숭아나무와 접붙여 재배하기 때문이다. 복숭아나무를 (뿌리 나무로) 쓰면 적당히 높이 그리고 빨리 자란다.”고 설명했다.
아몬드 열매의 딱딱한 겉껍질에서는 복숭아향이 풍긴다. 사진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트라밸리앤드피픈을 비롯한 107만에이커(4330㎢) 면적의 미국 전체 아몬드 농장에서는 전 세계 아몬드 생산량(140만톤)의 80%가 생산된다. 하빈더 만 캘리포니아 아몬드협회 트레이드 마케팅 지원·관리 부문 부소장은 “이 가운데 70%를 수출하는데, 한국은 세계 9위 규모의 미국 아몬드 수입국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자료를 봐도 국내 소비량 증가세는 아주 가파르다. 슈퍼 푸드로 알려지면서 아몬드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때가 2008년, 당시 아몬드 수입량은 7490톤이었는데 2017년 수입량은 2만5171톤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김민정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한국 담당 이사(미국 국가 공인 영양사)는 “1일 섭취 권장량인 아몬드 한 줌(약 30g·23알)에는 6g의 단백질과 함께 4g의 식이섬유가 함유돼 섭취 시 포만감을 주면서도 불포화지방 함유가 높아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한 점이 알려지면서 소비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몬드는 칼로리가 높은 간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2012년 미국 농무부(USDA) 조사에서 아몬드가 신체에 흡수되는 칼로리는 영양정보 표시분보다 20%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로다이의 와인앤로지스호텔의 브래들리 오덴 주방장이 아몬드 음료 만드는 법을 쿠킹 클래스에서 알려주고 있다. 사진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갓 수확한 아몬드에는 건조함보다는 생기가 느껴진다. 이 신선함을 가장 온전히 즐기려면 아몬드 음료를 만들어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 센트럴밸리의 로다이에 위치한 와인앤드로지스(Wine&Roses)호텔의 브래들리 오덴 주방장은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쪽에서 마련한 아몬드 쿠킹 클래스에서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직접 만들어 먹는 아몬드 음료 만드는 법을 소개했다. 2컵의 볶지 않은 아몬드를 물에 8시간 이상 불린 뒤 잘 헹구고, 그것을 7컵의 물과 함께 약간의 꿀을 넣어 갈아주고, 그것을 면포에 올려 걸러주면 끝이다. 가공품으로 만들어진 아몬드 음료보다 훨씬 고소하고 꾸덕꾸덕하다. 오덴 주방장은 “아몬드 음료를 만든 뒤 나오는 건더기는 스콘이나 아몬드 케이크를 만드는 데 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몬드 오일과 설탕을 섞어 만드는 보디 스크럽. 사진 캘리포니아아몬드협회
갓 수확해 볶은 아몬드를 옆에 두면 고소함에 자꾸만 손이 간다. 그런데 이 아몬드, 맛있기만 한 게 아니다. 멋있어지는 데 도움을 준다. 21년 경력으로 와인앤드로지스 호텔의 스파 담당자로 5년째 일하고 있는 피부 미용사 에이미 엘리자베스는 “사람들이 좋은 제 피부의 비결을 묻는데 딱 두 가지를 하라고 한다. 유머 감각을 가질 것, 그리고 아몬드 오일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아몬드 오일은 최근 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화제의 원료다. 이 오일은 항산화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비타민E가 풍부해 아로마 오일(향을 더한 오일)의 베이스 오일(향을 담는 오일)로도 많이 쓰인다. 엘리자베스는 “스위트 아몬드 오일을 건조함이 느껴지는 몸의 부위나 머리카락에 발라도 윤기와 생기를 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만테카·로다이(미국)/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TIP/ 아몬드 오일로 촉촉함 더해볼까?
■ 아몬드 오일 보디 스크럽
스위트 아몬드(개량종 가운데 단맛이 있는 아몬드) 오일 1큰술 + 비정제 설탕 : 둘을 잘 섞어 물기를 닦은 피부에 얹어 3분가량 부드럽게 문지른 뒤 물로 헹궈낸다. 자극없이 각질을 제거할 수 있고, 아몬드오일이 남아 촉촉함을 더한다.
■ 아몬드 오일 얼굴 마스크
스위트 아몬드 오일 반 큰술 + 달걀노른자 1개 + 꿀 1큰술 : 재료를 섞은 뒤 얼굴에 펴 바른다. 2분 뒤 팩이 마르면서 얼굴이 팽팽해지면 그 위에 다시 바르기를 두 번 반복한다. 10분 뒤 물로 헹군다. 건조해진 피부에 풍부한 영양과 수분을 더하기에 좋다.
■ 건조한 부위에 아몬드 오일 바르기
스위트 아몬드 오일 : 말린 머리나 손톱 옆 건조한 부위에 아몬드 오일을 바른다. 머리카락이 심하게 갈라진 상태라면, 아몬드 오일을 머리카락이 약간 젖은 상태일 때 바른 뒤 샤워 캡을 쓰고 30분간 기다린다. 그 뒤 씻어내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도움말 에이미 엘리자베스 와인앤로지스호텔 스파 피부 미용사, 정리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