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도 몇 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몇 년 전부터 홈 파티가 유행이다. 부어라 마셔라, 떠들썩하게 마시는 송년회는 철 지난 패션이다. 홈 파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거리. 아무리 낭만적인 분위기가 흘러도 맛없는 음식만 즐비하다면 팥소 없는 단팥빵처럼 허무한 파티가 되기에 십상이다. ESC가 준비했다. ‘바다의 우유’, 굴로 만드는 파티 음식! 굴은 지금이 제철이다. 신선한 제철 식품으로 만든 파티 음식은 더 정성스럽고 특별해 보인다.
■ 폭신한 굴 위에 신나는 춤사위
화려하다. 빛난다. 비단결 같다. 영롱하다. 소박하다. 레스토랑 ‘미누씨’의 이민우(34) 주인 겸 요리사가 만든 두 가지 굴 파티 음식엔 수식어가 다채롭다. ‘오이스터 샷’(oyster shot)과 ‘굴찜과 살사’. 레스토랑에서 팔기도 하는 ‘오이스터 샷’은 산타의 붉은 겉옷을 빨아 쭉 짠 물을 강물처럼 깔고, 승전고를 울린 전사가 당당히 서 있는 꼴이다. 토마토 등을 갈아 만든 가스파초에 손바닥만 한 굴을 올린 것이다. 면도날처럼 차고 레닌광장 깃발처럼 붉다. 이씨는 “카스파초는 식초가 많이 들어간 퓌레인 셈인데, 굴 위에 캐비아(철갑상어 알), 연어 알만 올려도 더 고급스럽게 보여 파티 음식으로 그만이다”고 말한다.
가스파초 위에 굴은 자유분방하다. 차가운 가스파초와 굴이 묘하게 서로를 격려하고 질투한다. 입이 탐험에 나선 듯 즐겁다. “가스파초는 3~4일 보관이 가능해 급하게 여는 파티에도 유용하다”며 “굴 위에 후추와 올리브유를 살짝 뿌리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소금은 이미 굴 자체에 충분히 배여 있기에 뿌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오이스터 샷’이 가스파초 위에 생굴을 올렸다면 ‘굴찜과 살사’는 찐 굴 위에 살사를 뿌렸다. 살사는 토마토, 각종 허브 등을 손톱 반만 하게 잘게 잘라 만든 멕시코 소스다. 그는 “쪄도 굴 특유의 비릿한 향이 날 수 있다. 그런 향을 싫어하는 이가 좋아할 만한 음식”이라며 “생굴을 쪘기에 임산부나 노인, 아이들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손바닥만 한 큰 굴은 10분 이상 찌면 안 된다고 말한다. 너무 찌면 식감이 딱딱해지고 수분이 지나치게 빠져나가 맛이 반감된다고 한다. 작은 굴은 3~5분 찌는 것을 추천한다. 한 입 먹는 순간, 새콤한 살사를 얹은 굴은 야구장 담을 넘은 홈런 볼을 잡은 것처럼 행복감을 선사한다.
레스토랑 미누씨의 이민우 셰프. 사진 박미향 기자
이 요리사는 18살 프랑스로 건너가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뢰’에 입학해 ‘퀴진’(요리)과 디저트 파트까지 다 섭렵한 실력파다.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인턴을 하고 귀국해 군대를 마친 후, 미국에 건너가 요리학교 ‘시아이에이’(CIA)에서도 수학했다. 세계적 식당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 별 두 개를 받은 뉴욕의 레스토랑 ‘더 모던’에서 일하다가 3년 전 귀국해 ‘미누씨’를 지난 8월에 열었다. “주방의 스릴, 제시간에 음식을 손님에게 내야 하는 역동성이 좋아 요리사가 됐다”는 그는 “음식으로 손님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암 투병을 하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그는 건강 음식에 관심이 많다. 그의 음식엔 소금과 설탕이 일반 서양식보다 적게 들어간다. 양파 등의 채소로 단맛을 우려내 간을 한다. 굴은 거제 참굴을 매일 직송 받고, 채소는 강원도, 제주 등에서 조달받는다. “수산물, 농산물을 생산하는 이들이 잘 되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레스토랑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레시피
● 오이스터 샷
재료 : 굴 5개, 토마토 3개, 다진 파슬리 1rs, 소금 1g, 부추 1g, 다진 마늘 1ts. 타임 1/2ts, 설탕 0.5g, 후추 살짝. 올리브유 1TS, 파프리카 2개, 와인식초 1TS
만들기
1 토마토를 얇게 자른다. 파프리카를 뺀 나머지 재료를 버무린다. 80도 오븐에 2시간 익힌다. 식힌 후 파프리카, 올리브유와 같이 간다. 갈 때 와인식초 넣는다.
2 망에 거른 후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힌다. 체에 거를 때 숟가락 등으로 누르면서 내린다.
3 2에 생굴을 얹은 후 올리브유와 후추 뿌린다.
● 굴찜과 살사
재료: 굴 5개, 토마토 2개, 다진 샬롯 1ts, 다진 고수 1ts,, 라임 즙 조금, 소금과 후추 조금
만들기
1 토마토 안에 씨 빼내고 과육만 손톱 반만 한 사이즈로 자른다. 나머지 재료를 섞는다. 올리브유 살짝 뿌린다.
2 찜 기구에 넣은 굴을 센 불에 익힌다. 큰 것은 물이 끓어오른 지 30초에서 1분 뒤 불을 끈다. 5분 정도 더 둔다. 잔열에 더 익혀야 부드럽다.
굴 그라탱과 굴 전채 요리. 사진 이정연 기자
■ 유자 만난 굴, 파티 음식으로 굿!
지난 6일 오후 통영의 한적한 골목, 한 주택의 2층에 들어서자 향긋한 향이 먼저 코끝을 스친다. 주방에 있던 김현정(43) 셰프는 허리를 굽힌 채 기자를 맞았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굴 전채 요리를 준비했다.”연말 홈 파티에 내놓기 좋을 굴 요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 터였다. “요즘 통영은 유자가 제철이다. 서울에서는 구하기 쉬울지 모르겠는데, 어렵다면 레몬을 써도 된다.” 김 셰프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와 통영의 인연은 통영국제음악당 안 이탈리안 레스토랑 ‘뜨라토리아 델 아르테’ 셰프로 일하면서 시작됐다. 1년 가량 머물다, 그곳도 떠났다. 그러다 올해 3월 통영시 도남동에 레스토랑 ‘통영 오월(O’Wall)’을 열었다. 그의 두 번째 ‘오월’이다. 첫 ‘오월’은 김 셰프가 2008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연 오월이다. 그의 정성스러운 오월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서울에는 아직 여럿이다.
유자폰스소스를 곁들인 굴 전채 요리. 사진 이정연 기자
그가 희고 굵은 소금 위에 살포시 얹어 내어 온 굴 전채 요리는 말끔하다. 먼저 눈에 띄는 건 탐스러운 굴이다. 그냥 참굴이 아니다. 그가 전채 요리 등에 애용하는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라는 참굴 브랜드다. 김현정 셰프는 “스텔라 마리스는 관자가 가리비처럼 쫄깃하고 크다. 비만도(알맹이에 살이 오른 정도)가 좋다”고 설명했다. 스텔라 마리스 중 큰 것은 성인의 손바닥만 하다. 그러나 이날 전채 요리에는 그보다 작은, 길이가 10㎝ 안쪽인 굴이 올라갔다. 아주 간단한 요리에 속한다. 김 셰프는 “무 간 것을 얹고, 유자 폰스 소스를 찍어 먹도록 만들었다. 유자 폰스 소스를 만들고 난 껍질은 색을 낼 겸 채 썰어 무 위에 얹었다”고 말했다.
다음 요리는 통영 참굴을 넣은 그라탱이다. 이번엔 고소한 치즈 냄새가 통영 오월을 감싼다. 그가 요리를 마치고 선보인 굴 그라탱은 과연 연말 파티 음식답다.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 파티에 제격이다. 초록색 시금치가 듬뿍 들어갔고, 붉은 토마토가 군데군데 흩뿌려져 있다. 빨간색과 초록색, 크리스마스에 꼭 맞는 색이다. 김현정 셰프는 그라탱이나 면이 길이가 짧은 파스타를 파티 음식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한국 사람들은 면이 긴 파스타를 보통 좋아한다. 그런데 대화가 많이 오가는 파티에서 포크를 돌려가며 긴 파스타를 먹기가 쉽지 않다. 이런 그라탱이나 쇼트 파스타는 포크로 찍어 먹거나, 숟가락으로 떠먹기 좋다. 파티 음식으로도 적합하지만,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자리인 소개팅 때도 추천한다.” 그는 굴도 굴이지만, 통영의 시금치가 제철로 제맛이 든 점을 강조한다. “통영에서 나는 시금치도 딱 이맘때 맛이 좋다. 뿌리도 같이 넣어 요리한다. 통영 시금치는 자잘하고 짧은데, 단맛이 강한 게 특징이다.”
통영 서호시장에 선 레스토랑 ‘통영 오월 김현정 셰프. 사진 이정연 기자
달콤한 시금치와 고소한 크림이 든 굴 그라탱. 매력적이지만 살짝 느끼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 셰프는 본인 입맛에 맞춰 덜 느끼한 그라탱을 선보였다. “내가 느끼한 것을 원래 잘 못 먹는다.” 오랫동안 이탈리안 등 서양식 요리를 주로 해 온 그의 난데없는 고백이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그라탱에 어떤 비법을 버무렸을까? 답은 ‘감자’에 있다. 김현정 셰프는 “보통 우유만으로 그라탱 소스를 만드는데, 나는 감자를 쓴다. 감자를 익혀 우유와 섞어 퓌레를 만든다. 여기에 토마토까지 넣으면 산미가 더해진다”고 말했다.
그의 굴 시금치 그라탱을 맛봤다. 아삭한 시금치도 재미있지만, 겉은 바짝 익고 안은 촉촉하고 생기가 도는 굴의 식감이 이채롭다. 김 셰프는 “한국 사람들은 뭔가 씹히는 맛을 좋아하는데, 굴을 충분히 익히면 그라탱에 잘 어울린다. 그래서 굴을 먼저 센 불에 튀기듯이 한 번 익혀 다시 오븐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그가 한 가지 더 강조하는 것은 그라탱에 들어가는 쇼트 파스타 콘킬리에를 익히는 시간이다. “삶을 때 파스타 포장지에 적혀있는, 삶아야 하는 시간의 절반만 익혀야 한다. 한 번 더 오븐에 넣어 익히는 시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파스타가 퍼질 수 있다.” 파티에 이빨에 들러붙는 파스타 때문에 불편하지 않으려면 귀 기울여야 할 조언이다.
글·사진 이정연 기자 mh@hani.co.kr
레시피
● 유자폰스소스 곁들인 굴 전채요리
재료 : 굴 6개, 무 30g, 유자 폰스 소스 2TS, 유자 껍질과 실파 채 썬 것 약간
만들기
1 무를 갈아서 체에 받혀 물기를 없앤다.
2 유자즙과 해물 육수, 간장을 1 : 1 : 1로 섞어 유자 폰즈 소스를 만든다.
3 유자 껍질은 채썬다.
4 껍데기를 반만 없앤 굴 위에 간 무와 채 썬 유자 껍질과 실파를 얹고, 유자 폰스 소스는 따로 낸다.
● 제철 시금치가 든 굴 그라탱
재료 : 알굴 200g, 콘킬리에 300g, 시금치 100g, 감자 1개, 우유 500㎖, 토마토 1개, 양파 1/2개, 소금과 후추 조금, 올리브 오일 조금
만들기
1 콘킬리에 300g을 소금물에 익힘 시간의 절반만 삶는다. 삶은 뒤 체에 받혀 물기를 없앤다.
2 감자 1개를 완전히 익힌 뒤 우유 500㎖와 함께 갈아 감자 우유 퓌레를 만든다.
3 시금치 100g을 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군다.
4 토마토는 작게 깍둑썬다.
5. 굴은 씻은 뒤 올리브 오일 두른 팬에 센 불로 볶는다.
6. 양파 1/2개를 센 불에 볶는다.
7. 그라탱 그릇에 콘킬리에, 감자 우유 퓌레, 양파, 시금치, 굴, 토마토, 피자 치즈, 치즈가루 순서로 올린다.
8. 180℃의 오븐에서 10~15분 익힌 뒤 노릇해지면 꺼낸다.
9. 먹기 전 올리브 엑스트라 버진 오일과 후추를 살짝 뿌려 낸다.
굴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겨울철 제철 식재료다.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붙은 별명이다.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석화’로 부르기도 한다. 굴 생산지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고르게 분포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굴 종류는 ‘참굴’이다. 9월부터 수확을 시작하지만 보통 11~2월을 굴의 제철로 본다. 김장 속 재료나 국요리, 젓갈 등에 쓰이던 굴은 최근 고급화해 오이스터 바나 유명 레스토랑에 공급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통영/ 이정연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