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끝장 볼 것처럼 싸우는 것이 걸려요, 결혼해도 될까요?

등록 2018-12-19 19:37수정 2018-12-19 19:43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6년 연애했지만 지금도 즐겁고 재밌어
막상 결혼 이야기에 불같이 싸우는 게 걸려
싸우고 난 뒤 웃어버리지만 괜찮은 걸까?

A. 커플, 부정적인 감정 느낄 때 대화법이 중요
웃으며 풀리던 게 결혼 뒤에는 달라질 수 있어
전문가의 도움 받아 대화 방식에 변화를 주길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Q 저는 한 대도시에서 사는 24살 여자입니다. 남자친구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소개로 만나 지금까지 연애하고 있습니다. 남자친구는 저보다 한 살 어립니다. 처음 같은 설레는 감정은 이젠 없지만, 6년째 되는 지금도 항상 만나면 정말 좋고 즐겁고 재밌습니다. 서로 얼굴만 보면 웃음이 나와요. 주변 사람들이 너네는 6년 만난 것 같지 않게 아직도 달콤하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남자친구는 저를 만날 때부터 저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것이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는 ‘결혼 빨리하자, 꼭 결혼하자, 언제쯤 하자’라고 서로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더 부쩍 남자친구가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보라고 말을 꺼냅니다. 남자친구가 다니는 직장에서 그가 하는 일은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작업하는 것인데요, 이번에는 더 멀리 가요.

그는 거기서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곳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같이 결혼해서 가자고 합니다. 6년 동안 만나면서 서로 나쁜 일, 좋은 일, 슬픈 일 등 정말 수많은 일을 같이 겪고 또 겪었습니다. 서로 싸우다가 화가 나서 헤어지기도 무수히 많이 했어요. 그랬지만 ‘이 남자와 결혼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은 예전엔 명확했습니다. 늘 만나면 즐겁고 이 사람만큼 저를 이해해주고 잘 아는 이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요. 늘 하는 “결혼하자”는 말에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했죠. 의심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진지하게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 하니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어요. 그의 말을 듣고 저도 진지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신나게 “예스”라는 답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러는 저 자신에게 제가 놀랐어요. 왜 그런지 찬찬히 생각해보니 제가 제일 고민이 되는 건, 우리는 너무 불같이 싸운다는 점입니다. 불같이 서로 화내고 막 끝장을 볼 것처럼 싸웁니다. 정말 끝까지 가버리는 식으로 싸웁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매번 싸울 때마다 그러지는 않지만, 한 번씩 크게 싸울 때면 서로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막 해버려요. 욕도 해요. 결혼은 연애와 다르잖아요. 결혼하고도 그럴까 봐 걱정됩니다. 그런데 싸우고 난 후 서로 얼굴만 보면 무의식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 웃어 버립니다. 서로 한없이 좋아하게 됩니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한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그 사람 따라 다른 지역, 낯선 지역에서 이 남자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지금 연애할 때도 이런 식으로 싸우는데, 결혼하면 혹시 지금보다 더 심해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관계에서 다른 것은 문제가 전혀 없답니다. 다만 싸울 때 저도, 남자친구도 너무 불같이 화내고 싸운다는 것. 우리는 둘 다 성질이 너무 불같아요. 그것 이외에는 우리 사이에는 별문제는 없습니다.

저와 이 남자는 성격 차이가 너무 큰 걸까요? 너무 안 맞는 걸까요? 저, 이 남자 믿고 평생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결혼이라는 것을 해도 될까요?

결혼이 망설여지는 여자

A 6년간 곁에서 가장 친밀한 사이로 지내온 사람과의 결혼이 망설여지시는군요. ‘다른 건 다 마음에 드는데, 불같이 싸우는 것’ 때문에 말이죠. 다른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당신의 말은 당신이 이 사람과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보여줍니다만, 마지막의 ‘이 남자 믿고 평생을 함께해도 될까요?’라는 말은 적잖이 흔들리는 마음을 보여주네요. 네, 잘 생각해야죠.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고 결정할 일이 아니며, 신중할 만큼 신중해서 나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 가지 실험이 있습니다. 존 가트맨 박사의 ‘러브 랩’이라는 실험인데요. 실제 커플들이 대화하는 장면을 녹화해 분석하고, 해당 커플들이 보여준 대화 속의 어떤 요소들과 그 커플이 다음에 계속 잘 지낼지 혹은 결국 헤어질지 말지를 예측했던 실험이지요. 어떤 커플이 결국 헤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서로 의견 차이가 있거나,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어떤 식으로 대화하는지가 관건이었다고 합니다. 비난, 방어, 경멸, 무시를 대화 속에서 드러냈던 사람들은 80% 이상이라는 높은 확률로 헤어졌다고 해요.

어떤 관계든 좋을 땐 모든 게 좋아 보이지만, 부정적인 상황으로 흘러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감춰져 있던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이죠. 그 무언가라는 건 ‘같이 가면 안 되겠구나’라는 깨달음일 겁니다. 달콤한 로맨스의 기억은, 서로에게 막말을 주고받는 순간 그 의미가 퇴색되지요.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더는 예전과 같은 마음일 순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서로 안 좋을 때 어떻게 대화하는지의 문제는, ‘그것만 빼면’ 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대부분의 이별과 고통은 결국 ‘서로 주고받는 말’ 때문에 일어나는데요. 이토록 중요한 것이 말인데, ‘다른 것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요? 다른 것을 볼 것도 없이, 이것 자체로 관계의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두 사람은 불행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는 겁니다.

이런 식의 폭발적인 감정표현과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러운 화해 방식은 아마도 두 사람의 습관이자 패턴으로 굳어져 버리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욕을 하며 싸우는 와중에도, 서로 이미 짐작하고 있는 거죠. ‘어차피 이따가 화해할 텐데 뭐’라면서요. 한 번 굳어진 패턴을 바꾸는 데에는 두 사람 모두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만, 아마 둘은 딱히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그래도 서로를 강렬하게 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얼굴만 봐도 스르륵 화해되는 일이 가능했으니까요. 둘을 계속 함께하도록 만들었던 접착제는, ‘그래도 난 이 사람이 좋아’라는 오랜 커플 특유의 친밀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바로 그게 당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에요. 사람은 변하는 존재이고, 관계도 변합니다.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어요. 처음엔 서로 욕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싸울 때 험한 말을 주고받게 되어 버린 이 관계처럼요. 저는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 분명히 지금의 이 대화 패턴은 지속할 것이고, 그것이 연인일 때보다는 더 큰 파급력을 가질 거라 생각해요. 예전엔 얼굴 보면 웃으면서 풀리던 것이, 결혼 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니, 늘 하던 말로 주던 상처가 결혼 후엔 훨씬 커질 수 있거든요. 지난 6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친밀감도 커졌겠지만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생긴 상처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을 테죠. 내가 준 상처를 인정하기 싫으니, 내가 받은 상처도 말할 자격이 없게 되는 겁니다.

지금 중요한 건 결혼을 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싸우는 일에 대해 그동안 미뤄왔던 중요한 숙제를 먼저 해야 해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두 사람이 어째서 대화 중에 이렇게까지 폭발하는지, 그 원인을 분석해보고 서로 더 이해하며 이런 식의 대화가 사라질 수 있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변화를 꾀하세요. 관계를 좀 더 좋은 쪽으로 돌려보려는 노력을 충분히 한 후에 결정해도 전혀 늦지 않으며, 그가 진심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지켜보세요. 그가 다른 지역에 가서 일하게 됐든 말든, 그가 결혼하고 싶어하든 말든 이건 당신 관계이고 당신 인생이잖아요. 그는 이 정도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은 '이대로는 곤란해'라고 느끼고 있잖아요. 나의 확신이 아니라, 남의 확신에 기대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마세요. 혼란스럽지 않을 때, 정말 명료한 확신이 들었을 때 확신에 차서 결정해도 수많은 예측 불허의 파도를 맞닥뜨리고 그것을 두 사람이 함께 넘는 일이 결혼입니다. 파도가 올 때마다 서로에게 끝장을 볼 것처럼 싸우는 삶을 살고 싶으세요? 6년도 쉽지 않았을 텐데, 이대로 앞으로의 60년을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당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보세요.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진다는 건, 바로 그런 거니까요.

곽정은(작가)

※ 사랑, 섹스, 연애 등 상담이 필요한 분은 사연을 보내주세요. 곽 작가가 직접 상담해 드립니다. 보낼 곳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1.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2.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때 밀며 힐링한다…코로나가 낳은 1인 목욕탕 [ESC] 3.

때 밀며 힐링한다…코로나가 낳은 1인 목욕탕 [ESC]

[ESC] 사랑·섹스…‘초딩’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4.

[ESC] 사랑·섹스…‘초딩’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ESC] 토마토홀과 토마토 페이스트의 차이 5.

[ESC] 토마토홀과 토마토 페이스트의 차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