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관계’를 꺼린다고 불감증일까요?

등록 2019-03-13 20:13수정 2019-03-13 21:47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성격은 잘 맞지만, 섹스 꺼리는 여자친구
싫어하느냐 물어봤지만 아니라고 답해
결혼까지 생각하지만, 확신이 없어
A. 당신과의 섹스가 그리 즐겁지 않을 수도
불감증을 의심하는 건 가장 큰 실수
취조하듯 묻지 말고 편안하게 대화해보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Q 저는 28살 국가고시를 준비 중인 학생입니다. 연애와 섹스 때문에 너무 고민이 돼서 사연을 보냅니다. 여자친구는 1살 연상인 회사원입니다. 항상 절 아껴주고 응원해주는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입니다. 여자친구와 성격 궁합은 정말 좋습니다. 그냥 가만히 걷고만 있어도 편하고, 가치관도 비슷해서 너무나 잘 맞습니다.

하지만, 속궁합이 너무 안 맞네요. 여자친구가 불감증인 거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여자친구와의 첫 경험을 여행을 가서 했는데, 딱히 좋아하지 않더군요.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어요. 그 후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만나는데, 대략 1달에 1번씩 했네요.

지금 만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초반 4~5달 빼고는 지금까지 ‘관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통금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딱히 여자친구의 통금 시간이 신경 쓰이진 않아요. 저도 공부해야 하고요. 하지만 밥을 먹고 우리가 사랑을 나눌 시간이 충분히 있는데도,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카페 가자!”라고 합니다.

연애한 지 3개월 될 때 일입니다. 여자친구가 “오늘 같이 있자”라고 해서 아늑한 곳에 갔지요. 그런데 제가 거의 졸라서 사랑을 나눴어요. 그래 봤자 1년 사귀는 중에 5번 남짓했네요. 그 이후로도 여자친구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관계’를 피하기 시작했고, 이젠 저도 더는 말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진지하게 불감증이냐, 아니면 섹스하는 걸 싫어하냐고 물어봤는데 전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여자친구는 성격상 섹스가 싫어도, 저와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좋다고 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물어도 의미가 없을 거 같더라고요. 그게 아니라면 좋아하는데 안 할 이유가 없죠. 전 정말 고민이거든요. 여자친구는 모르겠지만, 저는 섹스를 좋아합니다. 속궁합이 안 맞더라도 서로 맞춰가면서 노력하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합니다. 관계를 맺으려고 했지만, 제가 너무 피곤했는지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고, 그냥 잠만 자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여자친구가 더 그런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심인성 관련 처방 약도 갖고 있습니다.

여자친구가 이런 일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섹스를 싫어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친구는 여자친구가 나를 정말 좋아하면 그런 일이 있더라도 먼저 그런 부분에 관해서 얘기를 꺼낼 거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굳이 중요할까 싶었는데요, 요즘은 연애에서 점점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친구와는 연애 상대 이상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까지도 말이죠. 하지만 지속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실 확신이 없어질 거 같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속궁합이 고민인 남자

A 거두절미하고, 제가 당신의 사연을 이렇게 각색해 보겠습니다. 한번 잘 읽어보세요. ‘여자친구와 성격 궁합은 정말 좋습니다. 그냥 가만히 걷고만 있어도 편하고, 가치관도 비슷해서 너무나 잘 맞습니다. 하지만, 식습관이 너무 안 맞네요. 여자친구가 음식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여자친구에게 요리를 해주었는데, 딱히 좋아하지 않더군요. (중략) 한 번은 진지하게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냐, 먹는 것 자체를 싫어하냐고 물어봤는데 전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여자친구는 모르겠지만, 전 요리해 주는 걸 참 좋아합니다. 내가 해준 음식이 입맛에 안 맞더라도, 서로 맞춰가면서 노력하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저는 여자친구가 정말 음식 먹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친구는 여자친구가 나를 정말 좋아하면 그런 일이 있더라도 먼저 그런 부분에 관해서 얘기를 꺼낼 거라고 하더군요.’

자, 이 글을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육체와 감정이 뒤섞여 있는 섹스가 아니라 그냥 밥 먹는 일에 이 상황을 대입해 보면, 당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하나의 선택지가 나타납니다. 여자친구는 음식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해준 음식이 맛이 너무 없어서 거부할 수도 있겠다는 옵션 말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친구는 섹스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 그저 당신과의 섹스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요리와 섹스는 그 본질이 같다고 할 수 없지요. 요리는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해주는 유형의 무엇일 테고, 섹스는 함께 호흡과 취향을 나누는 경험 그 자체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비유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요리든 섹스든 나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은 싫어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채로 자기가 원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공통점도 있을 겁니다.

여기서 당신의 여자친구가 섹스를 거부하고 피하는 이유를 고민하다, 그녀의 불감증을 의심하는 것으로 건너뛴 건 당신의 가장 큰 실수일 겁니다. 당신이 만든 음식을 거부한 사람을 거식증으로 몰고 가는 일이나 다름없는 억지죠. 여기서 최악의 시나리오란 그런 겁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친구라 조르기에 억지로 했는데, 너무나 별로였던 그런 거요. 만약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였다는 가정을 세우면, ‘불감증이냐, 아니면 섹스 하는 걸 싫어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런 거 아니야’라고 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죠. 이 해석이 너무나 충격적인가요? 충격적이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당신과 섹스를 한 상대방은 시시하고 지루한 시간이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좋으면 너도 좋을 것이 틀림없는데 어떻게 너는 이걸 싫어할 수 있어?’라는 잘못된 가정을 당신이 가진 한, 상대방의 거부 이유를 불감증에서 찾는 일을 반복하겠죠. 당신 말마따나, 섹스가 싫어도 좋다고 말할 사람이라면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거부하고 있는 건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셔야 하지 않겠어요?

네, 물론 당신은 썩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에겐 전혀 문제가 없는데, 그녀는 그저 섹스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누군가는 당신만큼 섹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쯤은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기본 욕구에는 성욕이 포함되지만, 당신만큼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성욕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인가요? 조르기에 하긴 했지만, 그래서 계속 그걸 좋아해야 하나요? 그녀에겐 싫을 자유가 있답니다.

진심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여자친구와 대화를 나눠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당신이 정말 별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말이에요. 너무 심각하게 굴거나 취조하듯이 묻는다면, 그녀는 절대로 진실을 말하지 않겠죠. ‘솔직히 너랑 별로 좋은 줄 모르겠어’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도 그것 또한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당신의 의문이 풀릴 가능성이 열리지 않겠어요? 제가 노파심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알려드릴까요? 너무 피곤했는지 한두 번 관계 맺기가 힘들었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와의 섹스를 거부하는 여자는 세상에 아마 없을 거예요.

곽정은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무협소설 10선 1.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무협소설 10선

[ESC] 사랑·섹스…‘초딩’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2.

[ESC] 사랑·섹스…‘초딩’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타는 듯한 가슴 통증...과도한 음주, 바로 취침 피해야 [ESC] 3.

타는 듯한 가슴 통증...과도한 음주, 바로 취침 피해야 [ESC]

그의 체육관엔 샌드백이 열네개 4.

그의 체육관엔 샌드백이 열네개

[ESC] 향, 향, 향, 인공지능이 만든 향 5.

[ESC] 향, 향, 향, 인공지능이 만든 향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