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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좋았어?’가 아니라 ‘지금 어때?’라고 물어보세요

등록 2019-09-18 20:14수정 2019-09-18 20:28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1 섹스 공포증 때문에 연애도 두려워
‘잘 하고 있나’하는 생각 떠나지 않아
A1 상대방은 면접관, 객체가 아니야
교감, 배려 없이 영원히 잘 할 수 없어
Q2 3년 간 사귄 상대방의 배신과 거짓말
그의 정체를 폭로하면 후련할까?
A2 그에게 아무 영향 없다면 더 비참할 것
분노가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길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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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저는 서른살 남성입니다. 저에게는 연애 공포증이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섹스 공포증(?)이 있는 거죠.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는 게 너무 두렵습니다. 두려움이 커서 연애도 못 하겠어요. 사귀면 섹스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잖아요. 남들은 당연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당연하지가 않네요. 저는 항상 섹스를 할 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를 않아요. 내내 어떻게 해야 하나 잡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섹스를 즐기지 못합니다. 연애도 3년째 못하고 있어요.

마음에 들고, 좋은 사람이 다가와도 마음이 무거워요. 마냥 좋지가 않습니다. ‘아, 저 사람과의 잠자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처음 만난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 서로 끌려서 숙소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속으로 또 생각해요. ‘지금 이 사람과 정말 자도 될까?’ ‘내가 너무 고지식한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냥 잠만 자고 나옵니다. 친구들은 저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해요. 저는 왜 이러는 걸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자리가 두려운 남자

A1 그동안 누군가를 만나는 게 많이 버겁고 힘드셨겠네요. 상대방과 가까워질수록 부담이 커졌을 테고, 실제로 이 과정에서 당신의 두려움과 걱정을 털어놓기조차 쉽지 않았을 테니 관계에도 악영향이 있었겠죠.

그런데 좀 답답한 것은 바로 두 지점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저 사람과의 잠자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는 것, 그리고 섹스를 할 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부분 말이죠. 당신은 섹스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공포의 발원지는 바로 당신이 섹스에 대해 가진 기본적인 태도에요. 내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요. 당신과 마음을 나누고 몸을 나눌 사람은 당신을 평가하고 채점하는 면접관도 아니고, 당신의 섹스 테크닉으로 제압해야 하는 객체도 아닙니다. 당신과 똑같이 감각이 있고 생각을 하며 누군가를 깊이 있게 만나고 깊은 감정을 교류하기 원하는 ‘사람’이죠.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니, 상대방과의 교감이 아니라 나의 테크닉에만 집중할 수밖에요. 섹스는 장기자랑이 아니에요, 상대방과 함께하는 교감과 배려에 대한 생각 없이는 영원히 섹스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없죠.

한국의 많은 남성은 어렸을 때부터 갖가지 불법 포르노그래피에 노출됩니다. 불법 포르노그래피들은 지극히 폭력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인데요, 포르노 속에서 남자들은 지나치게 완벽하고 강하며, 여자들은 지나치게 의지가 없고 복종적인 존재로 비칩니다. 남성이 원하는 판타지 속 섹스를 구현한 상품에 불과한 허상을 보고, ‘아 섹스는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라고 배우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남성들은 현실에서 섹스를 하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나는 그 남자만큼 못하지?’ ‘왜 이 여자는 화면 속 여자만큼 좋아하지 않지?’ 섹스에 대한 공포, 불안, 왜곡된 태도가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이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만족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섹스는 혼자만의 장기자랑이 아니라 둘이 함께하는 합주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상대방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파악해 나가세요. 침대 위에서 해야 하는 질문은 모든 게 종료된 채 과시하고 싶어 묻는 ‘좋았어?’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교감을 위한 ‘지금 어때?’입니다. 교감은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며,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섹스는 그저 공허하고 슬픈 몸놀림일 뿐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곽정은 작가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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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저는 39살 여자입니다. 최근 ‘양다리+환승 이별’을 겪었어요. 3년 전 저와 6살 차이가 나는, 이혼 경력이 있는 남자친구를 만났어요. 만난 지 8개월쯤 되었을 때 그와 동거를 시작했고, 그는 제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1년쯤 지나 그는 자전거 동호회에 들었고, 거기서 14살 어린 여자와 교류하는 걸 알았습니다. 느낌이 안 좋았지만, 제가 예민한 걸까 싶어 지켜봤어요. 예민한 게 아니었어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수차례 거짓말을 했습니다. 지난 5월에 알게 됐는데 자전거 전국 일주도 했더라고요. 그에게 당장 나가라고 했지요. 남자친구는 실수라며 울고 빌었어요. 사과는 받아줬지만, 따로 살게 됐어요. 그는 저의 집 근처에 방을 얻어 삽니다. 그러다 그 여자와 마트를 다녀오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이성을 잃었어요. 제가 겪은 모든 것을 그 여자에게 말했죠. 그 와중에도 그는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싶다며 또 잘해 주더군요. 그 뒤로도 배신을 밥 먹듯 합니다. 같이 학원을 운영하니 매일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요. 처음엔 떠나려고 했지만, 제가 운영하는 학원을 넘겨주기 싫었어요. 분노에 제가 괴롭습니다. 이 화를 어떻게 가라앉힐 수 있을까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그의 정체를 주변에 다 폭로하면 속이 후련할까요?

배신에 분노한 여자

A2 배신감과 분노에 어찌할 줄 몰라 하고 계시네요. 3년 동안의 시간이 물거품이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자책감도 심할 것이고요. 많이 사랑했으니 함께 살고 함께 일도 하고, 삶의 대부분을 공유했지만 지금 남은 건 배신감과 분노라니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요.

하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분노한다는 것은 맨손으로 석탄을 집어 상대방에게 뿌리는 일이라는 말이요. 뜨거운 석탄을 맞은 상대방도 다치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손에 화상을 입습니다. 진심으로 대했던 관계에서 배신당한 상처를 그 누구도 당신만큼 알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당신이 분노에 가득 차서 어떤 짓을 저질러 버린다고 한들 그것이 결국 당신에게도 뼈아픈 상처로 남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의 정체를 폭로하신다고요. 네,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폭로를 하는 과정에서 당신이 더 다칠 수도 있어요. 당신의 내면이든 당신이 일궈놓은 사업이든 타격을 받을 수 있죠. 맨손에 심한 화상을 입고 당신이 힘들어하는데, 그의 새 여자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그 남자와 잘 지내기로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저 후련함을 느끼려고 한 파괴적인 선택이, 상대방에게는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면 그때 당신의 비참함은 지금보다 커질 것입니다.

수백명 앞에서 영원을 약속해도 몇 년 만에 갈라서는 것이, 수십년 함께했던 사람에게조차 어느 순간 배신당하고, 버림받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관계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 시간에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습니다. 저 역시 아직도 완벽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는 걸요. ‘나는 그런 일 절대 없을 거야’ ‘나는 배신당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은 위기와 절망 앞에서 우리의 ‘회복 탄력성’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기능합니다. 모든 이에게 일어나듯, 당신에게도 이 일이 생겼을 따름입니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그 사람은 그저 그렇게 배신을 하는 부류의 사람이었고, 때가 되자 그 성향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그런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고른 당신 스스로에게는 정말 아무 과오가 없나요? 이별이 당신을 힘들게 할 수는 있지만, 고작 쓰레기와 한 이별 때문에 당신의 모든 것을 위태롭게 하지는 말아야죠.

곽정은 작가

※ 사랑, 섹스, 연애 등 상담이 필요한 분은 사연을 보내주세요. 곽 작가가 직접 상담해 드립니다. 보낼 곳 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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