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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작은 일에도 솟구치는 화를 참기 어려워요

등록 2020-03-26 09:24수정 2020-03-26 09:51

Q1 예민하고 불안했지만 사랑하는 전 여자친구
내가 바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A1 미안해하는 것 같지만 ‘배신감’ 느끼고 있어
선택 존중하며 진심으로 떠나보내길
Q2 규칙을 어기는 행동에 심하게 화가 나
가까운 사람에게 더 스스럼없이 표현
A2 ‘저럴 수 있지’의 원칙 적용해 보길
엄격한 태도 갖게 된 이유의 탐색 필요해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곽정은 작가가 이성 관계, 사랑, 연애 고민 상담에서 벗어나 상담 분야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Q1 37살 무던한 스타일의 남자입니다. 동갑인 전 여자친구는 ‘외강내유’형인데 예민한 편입니다. 호불호가 확실하고 한 번 화나면 끝장을 보죠. 4년 전 만나 사귀게 되었어요. 결혼하려고 신혼집도 구했는데 그녀가 준비가 너무 힘들다면서 파혼하자고 해서 결국 파혼했지요.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 만났습니다. 여행도 자주 다녔어요. 그녀가 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정말 결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제가 장기출장 간 한 달 동안 전 여친은 제집(신혼집으로 구했던 집)에서 고양이와 지냈지요. 지난해 10월 말쯤 전 여친이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걸 알면서도 마음을 달래주진 못할망정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보냈어요. 그날 이후 계속 “바쁘다”면서 그만 보자는 겁니다. 그녀를 잡고 싶은 마음에 그러면 안 되지만 계속 찾아갔어요. 그녀로부터 경고 메시지를 받고, 저 또한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 가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9월 그녀는 8살 어린 연하남을 알게 됐어요. 그 연하남의 카톡을 보여주면서 만나고 오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금 현재 그녀가 만나는 연인이 그 연하의 남자입니다. 이별하니 그녀의 예민하고 불안한 마음을 왜 품어주지 못했을까 후회합니다. 그녀의 성격상 돌아올 거 같진 않지만, 제가 정말 다른 사람이 된다는 전제하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그녀는 불장난하는 거로 보여요. 제게 기회가 또 오지 않을까요? 떠난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

A1 4년 가까이 사귀었던 한 사람과의 이별을 감당하고 계시군요. 여전히 마음이 괴롭고 허탈하지만 한편으로는 헤어진 그 사람과의 재회를 꿈꾸며 이 시간을 버티듯 살고 있으시네요. 관계란 언제나 그렇듯, 사귀는 데에는 두 사람의 마음이 필요했지만 그것이 끝나는 데에는 한 사람의 마음만 필요하지요. 이 간단한 진실을,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당신은, 헤어지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신 것처럼 보이고 저는 이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관계는 상호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당신도, 그 사람도 모두 자유의지를 가지고 이 관계를 선택했어요. 내가 정성을 다한 만큼 관계도 풍요로워진다면 좋겠지만, 아주 많은 관계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잘해줬어도’ 끝이 납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도, 상대방은 더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이니까요. 이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별 후 몇 년이 지나도, 마음의 분이 풀리지 않지요. 일견 전 여자친구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과 후회가 있는 것 같지만, 당신의 글에는 ‘이렇게까지 해주었는데 배신을 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진하게 묻어나고 있죠. ‘무던한 나’에 대비되는, ‘한 번 화나면 끝장을 보는 예민한 타입’이란 설명은, 당신이 헤어짐의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다고 느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분노는 이별 후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것이 사그라지는 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분노와 배신감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데, 어떻게 ‘정말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요? 그리고 그게 어떤 식의 변화인지 당신은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는 존재도 아니지만,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 사람은 당신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설사 돌아온들, 당신 뜻대로 그녀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내가 이렇게 변했는데!’라며 또 분노가 찾아오지 않겠어요? 인연은 끝났지만, 이를 통해 인생의 귀한 능력을 터득하기 바랍니다. 내가 내 마음을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방법 말입니다.

어리석은 불장난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입니다. 예민하고 불안한 삶을 살더라도 그것 또한 그녀의 선택이지요. 어떻게 해도 잡을 수 없었던 사람을 마음속으로 용서하고 그 선택을 존중하며 진심으로 떠나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했을 때, 당신의 마음이 비로소 치유될 것이니까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지요. 자신이 도저히 놓을 수 없던 것을 놓고,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 가능해지는 그런 삶 말입니다. 이별 이후, 후회와 분노에 사로잡힌 삶을 살지 아니면 내면의 성장을 경험할지 결정하세요.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작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Q2 삼십대 중반인 저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어요. 어떤 부당하거나 불만인 일을 맞닥뜨렸을 때 아주 심하게 화가 납니다. 운전할 때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차들, 대중교통을 타는데 몸을 확 밀치는 사람들을 맞닥뜨리면 화가 너무 치밀어요. 욕도 나옵니다. 자신에 대한 분노도 큽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계속 미루는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그 화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까지 답답해져요.

혼자 있을 때 화내는 것도 힘들지만, 저의 화 때문에 여러 갈등이 생기는 게 큰 고민입니다. 그 화를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스스럼없이 화를 냅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마음을 터 넣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게 두려워요. 나를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저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화가 치밀어요. 가까운 친구나 동료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대화하다 느끼면 어느새 화를 내며 의견을 내놓는 저를 발견합니다. 참아야 한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일일이 다 화내며 살아서 안 된다는 걸 알아요. 이 화를 제어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화가 많아 답답한 사람

A2 오래전 어느 주말, 제가 좋아하는 한 공원을 걸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우측통행을 하며 산책로를 걸어가는데, 꽤 많은 사람이 반대편에서 좌측통행을 하며 걸어왔죠. 넓은 길을 두고 계속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생기니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공원의 표지판에는 엄연히 ‘우측통행’이라고 쓰여 있는데, 어째서 이런 간단한 규칙조차 지키지 않는 거야’라고 생각하자 더 짜증이 몰려왔지요. 자 그 날, 제 머릿속에서는 아마도 이런 생각의 흐름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원에서는 우측통행을 지켜야 한다’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규칙을 제대로 지켜야 마땅하다’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 이런 세 가지 단계죠. 그런데 심리치료의 한 영역인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자동적이고 부정적인 사고 및 인지체계가 우리의 감정을 좌우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 중에 ‘해야 한다 사고’와 ‘이분법적 사고’ 있습니다. ‘우측통행을 안 하면 안 된다’라고 정해두고, 따르지 않는 사람을 ‘잘못된 사람’으로 생각하니, 앞에서 걸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즉각적으로 짜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규칙을 잘 지키면 참 좋겠죠.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가요? 누군가는 좌측통행이 맞는다며 착각하고 살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냥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엄격한 룰을 만들어놓고 세상을 엄격한 잣대로 바라보니, 공원에서 하는 산책이 더는 산책이 아니라 짜증과 분노로 점철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죠. 예쁜 나무도, 신선한 공기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는 그 순간에 멈추고 저 자신을 보았어요. 소중한 주말에 산책하러 나와서 짜증을 내는 제 모습이 참 불쌍하더라고요. 그리고 찬찬히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 생각이 나에게 이로운가?’라는 것을요. 문득 ‘저 사람들은 우측통행을 모를 수 있겠구나’라는 시각이 제 안에 생겨나자 그 날의 산책은 이내 평온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날의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 ‘어째서 저러지?’라는 생각과 짜증이라는 감정이 들 때마다 ‘저 사람 입장에선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의 원칙을 적용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산책을 망친 것은 좌측통행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엄격한 나 자신이었듯, 내 인생을 망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사실은 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면에 엄격한 룰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람은 이래야 해’, ‘나는 이래야 해’ ‘이럴 땐 이래야 해’라는 룰은 때때로 필요하지만 그것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아주 높은 확률로 우리 자신을 해치고 관계를 해치게 됩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저 사람은 저럴 수 있지’로 바꿔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해요. 사실은 우리가 자신도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으면서, 타인의 생각과 반응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이 욕구의 헛됨을 깨달아야 하지요. 무작정 참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엄격한 태도를 갖게 된, 오래된 나의 내면에 대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지행동치료를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상담자를 만나보시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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