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2016년 6월께 영국인들은 42년 전에 가입한 유럽연합(EU)을 탈퇴할까 말까를 결정하는 바보 같은 국민투표를 했다. 영국인들에게 득이 되면 됐지 실이 될 리 없었던 인접 27개국과의 경제 연합을 말이다.
투표 실시 그 자체가 이미 놀라운 일이었건만, 국민투표 결과 52% 대 48%로 탈퇴파가 이겨서 영국에서 정말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상황이 벌어졌으니 황당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영국이 자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사태를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영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짧게 설명하자면 여당인 보수당의 돈깨나 있는 극단주의 한 무리가 갑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정치 어젠다를 납치해버린 후 심약하기 그지없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압박해 국민투표를 하게 만든 것이다. 캐머런은 아마 투표를 해봤자 당연히 유럽연합 잔류 지지자들이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 탈퇴 지지자들(Leavers)’이 승리했다. 이제 잘 쓰지도 않고 아무 의미도 없던 ‘리버’(leaver·탈퇴자)라는 단어는 당당히 대문자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주도권을 되찾자’ 같은 밑도 끝도 없고, 논리도 근거도 없으며, 아무 의미 없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평상시였으면 절대 투표하지 않았을 사람들을 목표로 삼았고, 그들은 마침내 성공했다.
늘 하던 대로 난 브렉시트를 먹거리 프리즘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브렉시트와 관련된 논의가 한창일 때 먹거리는 어떤 역할을 했고 앞으로 새로 진행할 유럽연합과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유럽연합 탈퇴파(Leavers)들이 유럽연합에 대해 했던 거짓말 중 제대로 먹힌 것은 영국 먹거리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유럽연합은 영국의 생선을 이미 훔쳤고, 몸통이 휜(bendy) 바나나를 불법으로 규정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유럽연합이 시중에 판매하는 바나나의 굴곡 각도를 규제하자고 해서 논란이 일었던 일을 가리킨다.) 그렇지 않으면 휘지 않은 바나나도 불법 바나나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 불법 바나나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뭣이 중헌디!’ 다 웃긴 짓거리다. 심지어 이런 웃긴 이야깃거리 중 몇몇은 현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이 신문사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브뤼셀 특파원이었던 시절에 유럽연합 심층 기사를 쓰다가 고안해 만든 것이다.
존슨은 총리 선거운동 과정에서 본인이 제일 잘 알던 먹거리를 선거 테마로 선택하고, 의회 연설 중 훈제 청어를 꺼내 들기도 했다. 연단 밑에서 비닐 팩에 밀봉한 채 팔리는 훈제 청어 한 봉지를 꺼내 들어 카메라 앞에 대고 흔들어댔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존슨은 굴하지 않고 “아무 의미도 없고 비싸기만 하고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며 유럽연합의 규제를 비난했다. 그 연설에서 존슨은 유럽연합의 규제가 수산물 무역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실은 정반대다. 그가 주장했던 유럽연합의 규제법은 사실 영국 정부가 초안을 작성하고 제안해서 입법화한 것이다. 뭐,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니다. 존슨은 유럽연합 위정자들에게 ‘선출직도 아닌 주제에 온갖 규제로부터는 자유로운 행복한 관료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우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을 말하고 과장했다.
어이없게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지지자들은 지난날 영국 국민이 전쟁 때 보여줬던 애국심을 고취하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다. 음식과 관련해선, 영국은 앞으로 충분히 자급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 영국은 우리의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하지만 영국은 식량 자급률이 꽤 낮은 나라다. 앞으로도 식량 자급률이 높아질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미국과 먹거리 무역협상을 새로 맺기 위한 목적이라면 영국은 아마도 후회할지 모른다. 그동안 유럽연합의 규제로 유지되고 있던 기준보다 훨씬 낮은 조건의 협상 결과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염소계 물질로 살균 소독하는 생닭(고기)이다. 미국인들이 지금 영국에 팔고 싶어서 안달 난 그 닭고기는 유럽연합의 현행 기준법을 결코 통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먹을 닭고기를 배수구나 수영장 소독할 때 쓰는 그런 약품들에 푹 담가서 씻는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미국산 가금류 산업체가 만들어 내는 닭들은 애초 기르는 방식 때문에 각종 박테리아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는 닭들이기 때문에 독한 배수구 세정제를 써서 소독할 수밖에 없다. 각종 호르몬제와 스테로이드제, 항생제를 닭에게 먹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영국 요리와 영국산 먹거리를 얕잡아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점은 이해한다. 사실 영국 요리는 평판이 썩 좋지 않다.(세상에서 제일 얇은 책은 독일 유머책과 영국 요리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을 정도니 말해 무엇하랴. 인정한다. 그간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아마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영국이 대체 뭘 잃는다는 건데? (애당초 잃을 게 있기나 했니?) 하지만 사실 지난 20년간 내 고향, 영국의 요식업계는 지각변동이 있었고 영국 요리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우리 영국의 전통적인 농경 목축업계는 전후 과격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산업화했고 우리의 많은 음식 문화 전통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사라져버렸다.(물론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우리 고유의 먹거리 문화와 양질의 생산 과정에 대한 관심이 물밀듯 쏟아지는 참이었다.
브렉시트가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니 그 이상일 것이다. 브렉시트는 농부들과 레스토랑을 위협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먹거리 분야를 유럽연합 탈퇴 지지자들이 겁박하고 있는 것이다. 브렉시트는 수백만명의 복지와 건강을 위협하고, 우리가 우리 이웃과 맺고 있는 관계를 협박하고 있다.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 난 정말로 듣고 싶다. 브렉시트의 장점이 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난 여태까지 이 소동이 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설명을 들은 게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마이클 부스 (푸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