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마니아 김성래씨가 만든 나무 키보드.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언젠가 사무실에서 밤샘 마감을 하다가 파티션 건너편 동료의 요란한 키보드 소리에 성질이 난 적이 있다. ‘일은 저 혼자 하나!’ 코로나19로 자택근무가 일상화된 시대. 일을 나 혼자 해야 하는 사람도 늘었다. 잠옷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자꾸만 느슨해지는 긴장을 추스르며 그때 일을 떠올렸다. ‘그 인간이 신나게 타이핑하던 키보드. 분명 내가 쓰던 것과 달랐는데 말이지.’
손가락과 키보드 사이의 불화를 처음 느낀 것은 두 달쯤 전이었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노트북 자판을 치다 보니 손끝이 저릿했다. 납작한 자판이 시멘트 바닥처럼 거슬려서 여러 번 멈칫거렸다. 비슷한 상황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기계식 키보드의 세계를 접했다. 키를 바닥까지 누르지 않아도 입력을 인식해서 손이 편안하다는 후기가 솔깃했다. ‘과연 나는 십만원이 훌쩍 넘는 키보드를 쓸 만큼 생산성이 있는 사람인가!’ 치열하게 자아비판을 하느라 일을 못 하게 되자 하는 수 없이(!) 키보드를 주문했다.
도착한 기계식 키보드는 묵직했다. 두께는 또 얼마나 두꺼운지 자판에 손을 올릴 때면 ‘실례합니다. 올라타겠습니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기계식 키보드라고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키 하나하나를 누를 때의 촉감과 손을 떼기 전에 손끝에 착 달라붙어 올라오는 탄성이 기가 막혔다. 내 의지를 전달하는 손끝이 키보드와 접촉해 컴퓨터에 내 의도를 입력한다는 느낌이 확실했다. 그래서 일의 능률이 올랐는가? 손끝의 쾌감을 즐기느라 의식의 흐름대로 쳐대는 ‘아무 말’ 타자만 늘었다.
이 재미난 세계를 먼저 즐기던 이들이 궁금해졌다. 키보드라고 하면 당연히 플라스틱을 떠올리는데 키캡(표면에 문자를 인쇄해 컴퓨터 자판의 각 키에 씌운 플라스틱 조각)과 하우징(키보드의 틀)까지 나무로 제작한 이가 있다. 지난 22일 인천 계양구 카페에서 만난 김성래씨는 “키보드가 인생 첫 취미가 되었다”고 말했다.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는 엔지니어였던 그는 하루 열두시간 넘게 타이핑하면서 키보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민감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손에 닿는 플라스틱의 감촉이 성에 차지 않았다. 내 손에 최적화된 키보드를 궁리하다가 나무로 14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목공도 키보드 때문에 배웠단다. 그의 키보드는 하우징을 편하게 분리할 수 있는 고안이 담겨있다. 강력자석을 심은 상판을 하판에 가져다 대면 오차 없이 딱 맞게 철썩 붙는다. 이미 디자인 특허를 등록하고 실용신안도 준비 중이다.
나무 키보드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김성래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장소 협찬 카페 브라운 띠어리
키보드 마니아들이 모인 ‘한국 표준입력장치 협회’ 회원들에게 키보드의 세계에 입문한 계기도 들었다. 닉네임 ‘알파카’는 “첫 기계식 키보드가 ‘주옥션’이었다”고 했다. 키보드 회사 이름으로 오해할 법하지만 ‘주식회사 옥션’의 줄임말이다. 금융기관 등에서 시스템을 교체하면서 대량으로 중고시장에 풀렸던 키보드를 일컫는단다. 닉네임 ‘호란’과 ‘카라소’는 키보드 오른쪽 숫자판이 없는 텐키리스 키보드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도 전했다. “키보드를 통째로 썰어서 개조하던 분들도 많았다.”
모임을 만든 김재근씨는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뇌파로 바로 입력되는 장치가 나오지 않는 한 키보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 말이 인상 깊어서 키보드에 양손을 가만히 올려본다. 타자기의 형태를 이어받은 키보드 덕분에 생각의 속도에 맞춰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틀린 글자를 ‘오타’라고 부른다. ‘오나전(완전)’이나 ‘고나리(관리)’처럼 타자를 빨리 치다 손가락이 꼬여서 생긴 유행어도 있다. 손가락과 키보드의 조응이 엇나가는 순간, 익숙하던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이번 주 ESC는 ‘오나전’ 소중한 키보드 이야기를 담았다.
유선주 객원기자oozwish@gmail.com